안종범, 벌떡 일어나 "역사 앞에서 진실 말했다"

미르-K스포츠 재단 줄줄이 증인으로..."청와대 회의도 참석"

미르재단 관계자가 법정에서 최순실 씨가 미르재단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증언했다. 재단 설립과 운영에 직접 참여한 적이 없다며, 미르재단 설립 관련 기업 모금 강요 등 혐의를 부인해오던 최 씨가 점점 '코너'에 몰리는 모양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20일 오전 열린 국정 농단 사건 6차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이한선 전 미르재단 상임이사는 최 씨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단 운영에 관여했는지 진술했다.

그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소개로 처음 미르재단 상임이사로 선임될 당시에는 최 씨가 회장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전 이사는 "차은택이 (최순실에게) '회장님, 회장님' 하며 깍듯하게 대했다"고 했다. 본인이 상임이사가 되는 것 또한 '회장님한테 다 얘기됐다'고 차 전 단장이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최순실 씨. ⓒ공동취재단

이 전 이사는 차 전 단장이 최 씨에 대해 '영향력 있고 센 분'이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고 했다.

최 씨는 공식 직함이 없었음에도 재단 운영과 관련한 회의를 주재했고, 거기서 '큰 방향'을 제시했다고 했다. 그는 "회의할 때는 '재단은 이런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하는 의견도 내고,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하기도 했다"며 "그래서 미르에 영향력을 상당히 갖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자문 역할 정도는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제가 느끼기엔 실질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라고 했다.


이어 "회의 내용을 나중에 청와대에서 알고 연락도 오고 했다"며 최 씨가 청와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짐작했다고 했다. 또 미르재단 사업 가운데 제3세계 아동 영양식을 개발하는 케이밀(K-Meal), 한류 콘텐츠 확산을 위한 케이타워 사업 등이 대통령 해외 순방 프로그램에 포함돼 6~7번 청와대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했다.


"최순실 두 번 만났다"더니...또 밝혀진 최경희 총장의 위증

이 전 이사는 최 씨와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차 전 단장과 김성현 전 미르재단 사무부총장과 한 자리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를 차 전 단장으로부터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미르재단 사업이었던 에콜페랑디 분교인 '페랑디미르'의 유치 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최 총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며 이같이 이야기했다.

그는 최 총장을 방문하기 전 차 전 단장으로부터 '페랑디미르'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된 부분이 있으며, 최순실-최경희-차은택-김성현이 만난 건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넷이 만난 장소는 여의도 소재 63빌딩이라고 했다.

이날 이 전 이사의 증언은 최 총장이 지금까지 한 진술과 배치된다.

최 전 총장은 지난 달 15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최 씨를 두 차례 잠깐 만난 적이 있다며 "입학 전에는 없었고, 2015년 최 씨가 학교를 잠시 방문해 인사를 했다. 이후 올해 봄에 최 씨 모녀가 잠시 와서 열심히 훈련하겠다고 잠시 인사하고 갔다"라고 말했다.

최 총장은 최 씨에 대해 "정유라 학생 어머니로 알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것은 상상도 못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 씨를 두 번, 그것도 대학 관계자-학부모 관계로만 만났다고 한 최 총장의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 6일 박영수 특검팀 역시 최 전 총장이 최 씨와 수십 차례 통화한 사실을 밝히며 국회에 위증 혐의로 고발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진공동취재단

안종범 수첩 증거 채택, 결정적 단서 되나

재판부는 이날 증인 신문에 앞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 수첩 11권을 증거로 채택했다.

안 전 수석의 수첩에는 안 전 수석이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박 대통령 지시 사항이 담겨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관련 대기업 모금을 강제한 정황, 관련 증거 인멸을 지시한 정황 등이 촘촘히 적혀있어 '판도라의 상자'로 여겨지고 있다.

안 전 수석은 수첩을 검찰이 위법적으로 수집했다며 증거로 채택해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수첩을 열람한 후 돌려주겠다고 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았고, 압수수색 장소를 수첩을 보관하고 있던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의 신체라고 했으나, 이미 수첩은 검찰에 제출된 상태였으므로 이 또한 위법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검사가 수첩을 열람한 후 돌려주겠다고 했더라도 수사에서 실체적 진실을 위해 관련 증거를 발견했을 때 이를 확보할 책임이 있다"며 "수첩이 범죄 사실의 중요 증거라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했다면 압수 절차가 위법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압수수색 집행 장소 문제에 대해선 "보좌관이 수첩을 지참하고 검찰에 출석해 제출한 이상 그를 수첩 소지자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검찰 측도 수첩에 적힌 내용의 진실성 부분을 직접 증거로 제출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내용이 기재된 사실 자체를 간접 정황 증거로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안 전 수석은 즉석에서 발언을 요청해 이의 신청을 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 검찰 소환 당시만 해도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출두하면 묵비권을 행사하려 했다"며 "수첩에 국가기밀 사항이 상당히 많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부담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수첩에 대해 추호도 내용을 숨기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변호인들이 절차상 문제 제기를 했을 때 동의하고 이의신청을 한 것"이라고 했다. 안 전 수석은 그러나 "변호인들이 역사 앞에 선 것이고 진실을 말해야 된다고 설득을 해서 제가 고심 끝에 있는 대로 다 이야기하기로 하고 성실하게 진실 되게 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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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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