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민주주의 지켜내시느라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촛불 집회 행진이 한창이던 2016년 12월 31일 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거리 한복판에서 새삼스러운 격려의 말이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자 '그러네' 하며 웃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함께 걷던 옆 사람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래그래. 우리 고생 많았다"고 했고, 한 젊은 여성 참가자는 촛불을 든 오른손을 번쩍 들며 "인제 그만 좀 고생하자!"라고 소리를 질렀다.
최근 한국에 여행을 오는 외국인이라면 주말 촛불 집회를 꼭 찾는다고 할 정도다. 무려 10주째.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도 집회 참가자들은 매주 주말 전국 각지의 광장을 촛불로 수놓고 있다.
이날로써 연인원(누적 인원) 10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은 1차 주말 집회가 열린 지난해 10월 29일부터 이날까지 누적 연인원이 110만40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단일 의제로 1000만이 집결한 집회는 역사상 첫 번째 사례"라고 했다.
이날 집회에선 비교적 추운 날씨 속에서도 주최 측 추산 오후 10시 30분 기준 연인원 100만 명이 서울 광화문 광장 등 세종로 일대를 메웠다. 서울 포함 전국 연인원은 110만4000명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오후 9시45분께 일시점 최다 운집 인원으로 서울 약 6만5000명, 전국 8만3000명 추산을 발표했다.
'송박영신(送朴迎新, 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다) 10차 범국민행동' 서울 지역 본대회는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5시부터 이어진 사전 대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의 각종 자유 발언이 이어진 이후다.
본대회에서는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에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화상 통화가 이루어졌다.
미수습자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어머니 박은미 씨는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이 다가온다.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약속을 부디 지켜달라"며 세월호의 조속한 인양을 촉구했다.
눈물 흘리며 호소하는 박 씨를 지켜 보며 집회 참가자들의 눈가가 젖었고 군데군데에선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집회 중간에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과 미수습자들을 추모하는 8.5미터 높이의 촛불 탑 점등식이 열리기도 했다.
또 민족예술인협회의 준비로 세월호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풍선 304개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같은 시각 동거차도에서도 풍선을 날려 보냈다.
저녁 8시부터는 '송박영신 콘서트'가 이어졌다.
친박 단체들의 노래 '아름다운 강산' 활용에 분노한 기타리스트 신대철 씨의 무대로 광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신 씨는 '아름다운 강산'의 원작자 신중현 씨의 아들이다. 그는 친박 단체는 "아름다운 강산을 부를 자격이 없다"며 촛불집회 주최 측에 공연을 자청했다.
밴드 들국화 출신 전인권 씨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세월호의 마음과 함께하겠습니다"라며 노래 '아름다운 강산'을 불렀다.
그렇게 광장은 또 한 번 한 바탕의 축제 장소가 되었다. 시민들은 공연에 열광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불렀고 곧이어 '송박영신'을 기원하는 폭죽이 하늘을 향해 터졌다.
이날에는 이전보다 다소 늦은 시각인 저녁 9시30분께부터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은 청와대, 총리 공관,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고 명동과 을지로 일대에서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도로를 활보하며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오후 10시 30분부터 서울 종로구 통인동 커피공방 앞 천막에 '심야식당'을 차리고 집회 참가자들에게 '컵밥'을 나눠줬다.
지난 2014년 참사 당시 진도 체육관에서 자원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식사를 해결했던 이들이다.
한 유가족은 "그동안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외쳐주신 시민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라며 따끈한 카레 덮밥과 김치 등이 담긴 컵밥을 손에 들었다.
컵밥은 2014년 4월 16일을 기리는 의미에서 4160그릇이 준비되었으며 30분 만에 배식이 마감됐다.
자정이 가까워지며 참가자들은 제야의 종 행사가 열릴 보신각으로 향했다.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던 집회 참가자 이지원(가명·34) 씨는 2017년 새해 소망으로 "세월호 진상 규명"을 꼽았다.
지난 시간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촛불을 들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지켜 보며 함께 눈물 흘리고 가슴 쳤던 많은 이들이 그렇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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