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정부는 왜 "김정은한테 물어보라"고 말했나?

유진벨 재단 "북한이 밉다고 결핵 환자 멱살 잡나?"

북한의 다제내성 결핵(MDR-TB·중증결핵) 치료 사업을 지원하는 유진벨재단은 통일부에 약품 반출 신청을 했지만 이를 거부당했다. 물품 반출 거부 사유를 묻는 재단 측에 통일부 당국자는 "그건 김정은한테 물어보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지난 11월 22일부터 이달 13일까지 북한을 방문해 치료 사업을 진행한 유진벨재단은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올해 지원 사업 진행 현황과 내년 계획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발표를 맡은 스티븐 린튼 유진벨재단 회장은 "북한 환자들이 내년에 복용해야 할 약품을 보내기 위해 통일부에 반출 신청을 했으나 통일부 측은 지금은 안된다고, 기다려 보라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8월 통일부 고위 당국자가 자신과 면담 자리에서 "앞으로도 한국을 결핵 퇴치 기지라고 생각하라, 걱정하지 말라"라고 말한 것과 올해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린튼 회장은 최근 면담에서 통일부의 입장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통일부 당국자가 "그건 김정은한테 물어보라"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올해 북한의 두 차례 핵 실험 때문에 인도적 물자 반출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린튼 회장은 "지난해까지는 정부 협조 덕분에 원만히 지원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반출 승인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약품 지원이 굉장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런 자리에서 통일이나 남북 문제 등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기초적인 민간 교류도 유지할 수 없다면 무슨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나"라며 "북한이 하는 짓이 밉다고 해서 결핵 환자의 멱살을 잡나"라고 따져 물었다.

▲ 유진벨재단과 북한 현지 의료진이 주민들을 상대로 다제내성 결핵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유진벨재단

린튼 회장은 결핵이라는 질병이 전염병임을 강조했다. 그는 "옆집이 불이 났을 때 주인이 밉다고 해서 끄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불은 결국 자기 집으로 오게 돼있다. 전염병도 마찬가지"라며 "조치를 빨리 할수록 어두운 미래를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북한 결핵 환자를 지원해야 하는 시급성을 지난 11일 동해상에서 표류하다가 한국 해경에 구조된 어부에 빗대 설명하기도 했다. 린튼 회장은 "결핵 환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바다에 표류한 북한 어부들이 부러울 것이다. 남북관계가 나빠도 한국이 이들을 발견했을 때 구조해주고 집에도 보내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그 어부들보고 상황을 좀 보자, 일단 좀 기다려달라 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우습겠나"라며 "북한의 결핵 환자들은 말기 환자다. 자기 피가 폐에 차서 죽는 익사한 사람들이다. 그 어부와 이 환자들이 무슨 차이가 있나?"라고 일갈했다.

린튼 회장은 "미국에서는 북한에 가는 것을 권하지 않지만 막지는 않는다. 어떤 사회든 성숙한 도덕관이 있다면 정부와 환자를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인도적 지원은 정치와 무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가 약품 반출을 허가하지 않는다면, 지원 약품을 준비하는 지역을 남북한이 아닌 제3국으로 옮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린튼 회장은 "한국에서는 약 표기가 한국말로 나와서 환자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자원봉사자들도 대부분 한국에 있다. 우리 후원자들도 대부분 한국의 교포들"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해외로 옮긴다? 그게 얼마나 비정상적인가"라고 되물었다.

린튼 회장은 "우리는 등록된 환자별로 박스를 준비한다. 거기에는 6개월 분량의 약이 들어 있다. 우리는 정확히 해당되는 사람에게 분배한다"며 "그런데 이것이 한번 끊기면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약을 제 때 먹지 못하면 추가 내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17년에도 불안하다. 과연 현상 유지를 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며 "우리가 지원하는 환자들은 의료 차원에서 사형 선고나 다름 없는 판정을 받은 말기 환자들이다. 이걸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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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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