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에게 수당 주는 영국, 이것이 공정한 분배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영국 가족 수당, 그 100년의 역사

우리나라 국회에서 대통령의 부패로 청문회가 한창이던 지난 12월 6일, 영국 국회에서는 가족 수당 7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 세미나가 열렸다. 1946년 8월 6일, 16세 세 미만 둘째 자녀가 있는 영국의 모든 어머니들은 최초로 주당 5실링(현재 가치 9.95파운드)씩 가족 수당(family allowances)을 받았다.

1946년, 가족 수당 첫 지급 시작

이 세미나에서는 가족 수당 운동을 30년 가까이 이끌어온 여성 참정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인 국회의원 엘리노어 라스본(Eleanor Rathbone, 1872-1946)의 활동이 조명되었다. 그리고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에 아동 수당(child allowances)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고, 현재는 아동 급여(child benefits)라는 이름으로 지급되는, 이 가족 수당의 정신과 현실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베버리지 보고서>는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국가 재건 계획서라고 할 수 있다. 베버리지는 질병, 사고, 실업, 노령이라는 소득 상실의 위험을 근로자 모두가 기여하고 혜택받는 국가 보험을 통해 해결하자는 사회 보험과 관련 서비스(Social Insurance and Allies Services)'라는 계획을 내놓은 정부위원회의 대표였다.

베버리지는 1949년에 쓴 글에서 '인기 없는 자산 조사 방식의 사회 정책이 아니라, 사회 보험이라는 도구로 복지국가를 구축하자는 이 구상이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대부분의 정책은 1911년의 연장선상이고, 기존의 영국 전통과 단절하는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동 수당 하나라는 설명이다. 모든 국민이 형성한 자원을 국가 권력을 이용해 시민에게 직접 현금으로 준다는 이 획기적인 발상은 영국 정부가 해온 어떤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동 수당은 국민 보건 서비스, 완전 고용과 더불어 사회 보험 중심의 사회 보장 시스템을 작동시킬 전제로 등장한다.

시민에게 직접 현금을 지급하는 획기적 발상

▲ 영국 가족 수당 도입의 계기가 된 엘리노어 라스본의 책. ⓒ양난주
1910년 전후, 이미 실업 보험과 노령 연금 정책을 고안한 베버리지는 처음 엘리노어 라스본과 가족 수당 운동을 접하고 "별난 생각에 사로잡힌 피곤한 존재"로 여겼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랬던 베버리지를 완전히 설득하여 아동 수당 설계자로 만든 것은 엘리노어 라스본이 1924년 출판한 <상속받지 못한 가족(The Disinherited Family)>이라는 책이었다.

라스본은 리버풀 지역을 중심으로 1897년 여성 참정권 운동 참여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투표권을 가져 동등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리버풀 부두 노동자의 아내, 저임금 여성 노동자, 저소득층 여성들을 만났다. 이 때 여성의 빈곤하고 고단한 삶을 토대로 여성 노동과 보수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그 결과 1917년에 참정권 운동과 별도로 가족 수당 운동을 전개할 단체를 만들어 대표가 된다. 그 이듬해 30세 이상 영국 여성은 투표권을 얻는다. 물론 21세 이상 남성에겐 투표권이 이미 있을 때다. 영국의 사회학자 마샬은 시민권이 18세기 자유권, 19세기 정치권을 거쳐 20세기에 사회권으로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스본의 활동을 보면 영국 여성들은 20세기에 참정권 운동을 통해 정치적 시민권을, 그리고 가족 수당 운동을 통해 사회권적 시민권을 실현하기 위해 동시적으로 노력한 셈이다.

라스본이 '가족 수당에 대한 청원'이라는 부제를 붙여 쓴 이 책은 '생활 임금론' 비판에서 시작한다. 생활 임금론은 남성 노동자 임금에 아내와 자녀 3명의 부양비가 포함되어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빈곤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 시봄 라운트리가 제창했고 당시 노동조합의 지지를 받았다. 라스본은 부부와 자녀 세 명으로 구성된 5인 가족을 가진 남성 노동자는 20세 이상 남성 노동자 중 12명당 한 명일 따름이라고 밝힌다. 모든 남성노동자에게 4명의 부양 가족이 있다는 전제로 임금이 계산되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단일한 생활 임금 기준으로 임금이 지급되면 더 많은 자녀가 있는 가족은 생활 임금이 필요를 채워주지 못해 궁핍해질 것이고, 가족이 없는 남성 노동자에겐 실제 필요보다 더 많은 몫이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당시 발표된 빈곤 조사를 인용하면서 저임금이 빈곤의 주요 원인으로 드러난 결과를 볼 때, 생활 임금이 가족의 욕구를 반영하는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지도 않다고 비판한다.

단일한 생활 임금론이 공정하고 적절한 임금 이론으로 적용되기 어렵기에 임금은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에 부응하여 지급되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남성 노동자의 임금에 5명의 몫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활 임금론은 여성 노동자를 남성보다 덜 받는 위치로 묶어놓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아이와 여성의 지분은 남성 노동자와 독립적으로 인정받아야

무엇보다 미래 사회의 주역이 될 아동들의 몫이 왜 한 남성 노동자의 노동의 가치로 보장되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아동이 과연 남성 노동자의 소유인지 되묻는다. 가장인 남성 노동자와 세 명의 아이를 돌보는 여성 노동의 가치가 노동 시장에 일한 한 남성 노동자의 "피부양자"로 보장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아동의 존재와 여성의 돌봄 노동은 미래를 위한 동력이자 사회적 기여이기에 그 자체로 지분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스본은 여성 시민과 아동 시민에게 누군가의 임금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로 산정된 "국가의 몫"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가족 수당을 별도로 보장했을 때 노동자들의 임금은 더욱 공정하게 지급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 수당 아이디어는 모두의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가족 수당 아이디어는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가족 내부, 특히 저임금 노동자 가족 안에서 모두 평등한가를 따져 물은 결과로 나온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물을 수 있었던 것은 리버풀에서 1900년대 여성 청원권 운동을 하면서 방문했던 수많은 노동자 가족의 여성의 삶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스본은 가족 수당이 양육자인 여성에게 지급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강조했다.

이 책은 널리 읽혔다. 가족 수당 운동 단체는 정부와 정당,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캠페인을 펼쳤다. 그러나 초기에는 자유당만이 우호적이었고 보수당은 무관심했고, 노동조합 운동 진영은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 남성노동자 계급의 기초"라며 가족 수당의 정신에 대한 불편함을 내비쳤고, 중요하게는 가족 수당 도입으로 인해 임금이 삭감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노동조합에서 더 관심을 가지는 문제는 노령 연금이지 아동 수당은 아니었다.

가족 수당 운동단체는 노조 지도자들에게 편지와 책자를 보내고, 광산 지역 등 노동자 밀집 지역을 방문하여 가족 수당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총회에서 투표로 공식 반대를 결정했던 영국노동조합연합(TUC)은 1942년에 이르러서야 찬성으로 돌아섰다. 1930년대 중반 이후 노동당 내 여성 조직들의 지지 운동과 노동당 국회의원들의 지지 선언도 중요한 변화지만,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노조 대표가 노동당 장관이 되면서 정부 정책에 대한 협력적 태도가 높아졌다고도 해석된다.

1945년 가족 수당법이 통과되고 이듬해 둘째 자녀부터 지급되던 가족 수당은 1977년 첫째를 포함한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아동 급여로 바뀌었다. 현재 영국에서 아이가 있는 모든 가구의 양육자는 매주 아동 급여를 받고 있다. 첫째 아동은 주당 20.70파운드(약 3만 원), 두 번째 아동부터는 13.70파운드(약 2만 원)가 지급된다. 2015년 8월 기준으로 742만 가족, 1290만 명의 아동이 아동 급여를 받고 있다.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영국은 아동과 가족에 지급하는 현금 급여로 2013년 국내총생산(GDP)의 2.4%를 쓴다. 현물로 GDP의 1.35%을 지출하는 것에 비하면 현금 급여 비중이 높아 OECD 중 3위다. 우리나라는 2013년 기준으로 현금 급여에 GDP의 0.18%를 지출해 35개국 가운데 34위다. 우리나라는 현물 급여에 0.95%를 지출하여 OECD 평균 0.9%보다 0.05%포인트 더 쓴다.

▲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라스본에 의해 가족 수당 운동이 시작된 지 100년, 영국의 아동 급여는 적지 않은 변화를 경험해 왔다. 1997년 집권하여 사회 투자 정책을 펼쳤던 신노동당은 아동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부모 고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쳤다. 아동과 가족에 대한 세액 공제 방식을 늘렸다. 현재도 아동 1인당 아동 급여는 연 1000파운드(약 150만 원)가 좀 넘지만, 아동 세액 공제는 1인당 연간 최고 2780파운드(약 400만 원)에 이른다.

긴축 정책을 표방한 보수 연립 정권은 2010년 집권부터 아동 급여를 동결했고 2013년에는 연간 5만 파운드 이상 소득이 있는 가구에 아동 급여를 과세 대상으로 정했다. 고소득자는 아동 급여를 신청하여 받고 추가 세금으로 납부하거나, 아동 급여를 신청하지 않는 방법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아동 수당은 출산율 정책 이상의 가치 지녀

영국 가족 수당의 역사는 '베버리지 보고서'라는 복지국가 설계도 이면에 가려진 평등주의 운동의 한 면을 보여준다. 여성에게 투표권도 없던 시절, 미래 사회의 자산인 아동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고 아동을 키워내는 일은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기에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이 지분을 독립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제도가 되는 데 30년 가까이 걸렸다.

현재의 아동 급여는 가족 수당 운동이 자유주의 정치인에게 수용되어 복지국가의 수평적 재분배 기초가 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수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평등한 시민권의 실현이라는 가족 수당의 정신을 지키는 힘은 당사자들의 삶에 천착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운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백년 전 엘리노어 라스본은 가족 수당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지분"을 미래 사회의 자산인 아동에게 직접 나누자고 주장했다. 최근 한국에서도 아동 수당에 대한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는 듯하다. 아동 수당 정책을 통해 출산율을 높이자는 주장이 가장 도드라진다.

아동 수당은 한 세기 이전에 무엇이 공정한 분배인가를 분석하면서 제안되었다. 아동에 대한 재분배를 사적인 가족의 몫으로 가두지 말고 국가가 사회적으로 책임지자는 의미였다. 우리나라의 아동 수당도 출산율 제고라는 효용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평등한 사회권 실현을 위한 재분배 전략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양난주 내만복 운영위원은 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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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시민들이 복지국가 만들기에 직접 나서는, '아래로부터의 복지 주체 형성'을 목표로 2012년에 발족한 시민단체입니다. 건강보험 하나로, 사회복지세 도입, 기초연금 강화, 부양의무제 폐지, 지역 복지공동체 형성, 복지국가 촛불 등 여러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칼럼은 열린 시각에서 다양하고 생산적인 복지 논의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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