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트럼프보다 한미동맹에 큰 불확실성"

[프레시안-여시재 공동 기획] 조나단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대담

미국 정치계의 '아웃사이더'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향후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트럼프는 정말 고립주의적인 대외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을까?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연구재단 '여시재'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등 동북아 내 정치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는 이 때, 트럼프의 당선이 향후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알아보는 전문가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18일 조정훈 여시재 부원장은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여시재 대화당에서 한국을 방문한 조나단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과 만나 트럼프 당선의 의미와 향후 대외관계를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미 해군대학교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학 교수를 역임하는 등 미중 관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의 전략 및 한반도에서의 정치안보 역학관계 등을 조망해 온 대표적인 미국 내 아시아지역 전문가다.

▲ 조나단 폴락(왼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조정훈 여시재 부원장 ⓒ여시재

이 자리에서 폴락 선임 연구원은 트럼프가 고립주의적인 대외 정책을 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외 관계에서 미국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이른바 '고립주의'적인 성향을 보였고 이에 한국을 비롯한 동맹 국가들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각자 셈법을 계산하느라 분주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는 "미국은 국제 사회에 깊이 관여하는 나라다"라며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과 만났을 때 미국이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됐고 순간적으로 놀랐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장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대해 45%의 관세를 매기겠다고 공언한 것도 쉽게 추진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로 중국에 큰 관세를 부과하면 중국은 보복 조치를 취할 것이고, 미국 소비자들은 어느 날 갑자기 원하는 제품의 가격이 상당히 상승해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을 비롯해 동맹국들에게 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라고 요구하면서, 그렇지 않다면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폴락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단순히 한국에 순수하게 호의적인 이유로 군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미국이 한반도에 미군을 배치시키는 건 미국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며 "비용이 조금 과도해 보인다 해도 동맹의 가치를 순수 경제적인 계산으로만 따질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관점"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당선자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다소 달라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한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등 기존 동맹국들은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폴락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매우 거래적이고 사례 중심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이를 통해 뭘 얻을 수 있을지를 따지고 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트럼프 당선자가 매우 현명하게 외부의 지도자들과 접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트럼프가 접촉한 첫 번째 지도자는 아베 일본 총리다. 다음날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연락했고 시진핑 주석과도 대화를 나눴다"면서 "이러한 방식은 긴밀한 동맹국들은 물론 이해관계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국가들과 대화할 때에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대통령 당선인이 9일(현지 시각) 오전 미국 뉴욕시 힐튼 미드타운 선거본부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한미 동맹과 관련, 폴락 선임연구원은 트럼프의 당선보다는 "박근혜 대통령이 당면한 위기가 가장 큰 불확실성의 요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러한 불확실성과 함께 완전히 다른 기초에서 동맹 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례 없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북한과 관련된 위험과 우려까지 합쳐지면 매우 복잡하고 걱정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국민들에게 해고 통보 받을 수도

트럼프 당선자는 후보 시절 대외 관계뿐만 아니라 국내 문제에서도 일관되지 못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기도 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당선자가 세금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결국 미국 정부로 가는 예산을 줄어들 게 할 것"이라며 "그런데 트럼프 당선자는 정부의 역할이 커져야 하는 정책을 내놨다. 예를 들어 불법 체류 이민자 추방을 실행하려면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이는 정부의 축소가 아니라 정부의 확대"라고 지적했다.

이에 트럼프 당선자가 실제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폴락 선임연구원은 "아이젠하워(미국 34대 대통령) 장군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그를 잘 아는 누군가가 '불쌍한 아이젠하워, 부하를 압박하며 군대 방식으로 하면 될거라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그는 곧 그곳이 군대와 매우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될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며 "트럼프 또한 진짜 통치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이전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당선자가 "후보로서 보여주지 못했던 절제력을 길러야 한다"며 "그런데 70세라는 나이에 성격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다. 그에게 충고해주고 가르침을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트럼프 당선자가 기존 정치인과 다른 모습을 보여서 당선이 됐는데, 취임 이후 기존 정치 구조에 적응하면서 절제하는 모습을 보이겠느냐는 질문에 폴락 선임연구원은 "트럼프는 그의 행동이 불러올 결과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딸인 이방카와 사위인 제럴드 쿠슈너 등과 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의 딸과 사위는 매우 가까운 조언자들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사업 활동을 자녀에게 맡기고 있다. 거기까지는 괜찮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아무런 공식 직책이 없는 자녀들과 국정을 논의하고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트럼프는 아무런 직책이 없는 자녀들이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브리핑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보안등급을 높여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 조나단 폴락(왼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여시재

폴락 선임연구원은 "과거 비즈니스 업무와 앞으로 직책(대통령) 사이에 벽을 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면서 "만약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본인이 TV 쇼에서 외쳤던 "당신은 해고야!"라는 말을 미국인들로부터 듣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이긴 것이 아니라 힐러리가 진 것

조나단 폴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대통령 선거가 트럼프의 승리라기보다는 클린턴의 패배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클린턴이 기존의 결과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1992년 이후 6차례 계속된 대선에서 매번 민주당을 뽑은 인구가 많은 주들이 있다. 힐러리는 소위 말하는 '큰 푸른 벽'이라는 텃밭을 지키고 추가로 경합 주인 플로리다 주에서 승리하면 당선됐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미국 대선은 전체 득표 수가 아닌, 각 주별로 배당된 선거 인단들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동시에 한 표라도 더 많이 받은 후보가 그 주에 배당돼있는 선거인단을 모두 독식하게 되는데 (메인 주, 네브래스카 주 제외) 민주당은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보유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를 비롯해 뉴욕 주 등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또 중부 지역의 소위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지역도 최근에는 민주당이 강세를 보였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그래서 결국 클린턴은 일부 텃밭 주들이 그동안 투표해온 대로 똑같이 투표할 것이라고 가정하고 광범위한 선거 운동을 하지 않았다"며 "그녀는 선거운동 내내 위스콘신에서 한 번도 유세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위스콘신 주는 선거 직전 여론조사까지만 해도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당선자에 앞섰던 지역으로, 클린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곳이다. 하지만 투표 결과 트럼프 당선자가 1% 차이로 클린턴 후보에 승리를 거뒀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클린턴은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주에서 모두 쉽게 이길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며 "선거에서 역사를 분석하는 일이 결과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렇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종적으로 분석해 볼 때 코미 FBI(연방수사국) 국장의 개입 같은 것들이 승패를 가르지 않았을까 한다. 물론 '코미 국장이 개입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면서도 "클린턴이 자신에게 매우 충성스러운 소수 사람들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며 클린턴 후보가 제대로 된 조언을 받지 못했고, 결국 이것이 '이메일 스캔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 조나단 폴락(왼쪽)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조정훈 여시재 부원장 ⓒ여시재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이념이 아닌, 유권자 개인이 느끼는 복지 혹은 안녕을 중시하는 쪽으로 투표 경향이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폴락 선임연구원은 "이번 선거는 인신 공격이 난무한 추악한 선거였다"면서 "유권자, 특히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후보자의) '정치적 입장', '정책' 등이 무엇인지를 따지는 정교한 모델에 근거해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그는 "(유권자) 결정의 상당 부분은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내가 이 사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라는 매우 개인적인 측면에서 이뤄진다"면서 "트럼프는 사람들의 매우 기초적인 본능에 호소했고, 그것은 어떻게든 사람들을 끌어들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선거가 '현재 질서에 대한 완전한 전복'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사실 1976년 이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외부인으로서 출마했다"며 "1976년 이후 당선된 후보자 중 워싱턴 D.C 거주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리노이 주 출신 상원의원이었던 오바마가 유일했다"고 설명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다만 "트럼프가 다른 대통령과 달랐던 점은 그가 정치인조차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 경험이나 행정 경험이 없다. 사업가로서의 경력과 TV 출연 경험이 있을 뿐인데, 이 경력이 그를 매우 인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유권자들로 하여금 현재 상황을 바꿔놓을 인물이라고 믿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전체 대담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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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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