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나간 박근혜, 트럼프에게 농락당하나?

[정욱식 칼럼] '사드 출구' 없이 '박근혜 이후' 없다

중국의 사드 대응이 본격화되는 분위기이다. 정권 교체에 접어든 미국을 향해선 사드 배치 여부를 미-중 관계의 시금석으로 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려고 하자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11월 17일자 <로이터> 통신은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소식통을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 내 사드 배치를 계속 추진할 것인가의 여부야말로 트럼프가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판단할 핵심 지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청한 중국 측 인사는 "사드 배치 여부는 (미-중 관계의) 정치적 풍향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보도는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간의 신경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곧 대통령으로 취임할 트럼프는 중국이 사드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다른 문제에서 중국을 압박하고 양보를 받아내기 위한 지렛대로 삼을 공산이 크다.

사드를 "핵심 이익"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는 시진핑 정권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결속을 강화해 맞서려고 할 것이다. 특히 시진핑은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유대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점에 주목해 푸틴의 역할을 십분 활용하려고 할 것이다.

이처럼 사드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치열한 신경전이 예고된 가운데, 한국은 '사드 대란'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이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 조치를 강화한다는 소식과 관련 보도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당국이 한국 드라마 방영과 한국 연예인의 광고 출연 등을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 한류 금지령)'을 내렸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도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성 조치는 있었지만 제한적인 성격이 짙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면적인 한류 금지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이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30%에 육박하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경제 보복이 강해질수록 경제 위기도 심화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이에 더해 트럼프의 미국이 보호주의를 강화하면 한국 경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사드 탈출구'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새로운 정부를 상대로 '사드 담판'에 나서고, 한국에 대해서는 경제적 압박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문제는 한국이다. 이미 민심에 의해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가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외교 안보 사안을 농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건 성숙 이후" 추진키로 했다는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고, 사드 부지를 토지 맞교환이라는 '꼼수'로 확보하려는 게 대표적이다.

사드 문제와 관련해 최악의 시나리오는 박근혜와 트럼프가 사드 배치를 계속 추진키로 합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추가적인 경제 보복은 물론이고 사드 기지에 대한 유사시 정밀 타격 능력 확보 등 군사적 대응까지 야기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또한 박근혜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한미 정상 회담과 사드 배치에 매달리려고 할 것이다. 이는 동맹 관계에서 돈을 가장 중시하는 트럼프의 미국에게 한국이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이러한 상황과 전망은 국회가 하루빨리 탄핵 절차에 돌입해 박근혜의 직무부터 정지시켜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시민 사회와 함께 사드 검증 기구를 수립해 사드 배치 추진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 이는 중국의 보복성 조치를 조기에 중단시키고 트럼프 당선자에게도 유의미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동시에 10년 가까이 중단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해야 한다는 국내적,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점차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국가 이익과 국민 경제 전반에 엄청나게 중요한 사안이 비정상적으로 결정되었고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당사자는 국민과 국회이다. 사드 문제를 방치하고선 '박근혜 이후의 대한민국'을 새롭고도 희망차게 건설하는 데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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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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