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매력? 스스로 만드는 정년

[살림이야기] 한살림서울생협강일매장의 일협동조합

한살림서울생협 광나루매장에 이어 강일매장이 '협동조합 위탁운영매장'으로 전환했다. 겉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한살림서울생협에 소속된 활동가가 아니라, '일협동조합' 조합원이 직접 운영·관리한다는 면에서 큰 변화다.

경력 5~12년 조합원 활동가들이 모여

2년 전, 강일매장은 처음부터 활동가들의 '자주관리매장'으로 문을 열었다. 자주관리매장이란 매장의 근무 시간, 조합원 활동과 홍보, 인사권 등을 활동가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관리하는 매장이다. 그 경험 덕분에 일협동조합이 매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2년간 자주관리매장을 잘 이끌어 온 활동가들이 일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참여했기에 쉽게 전환할 수 있었다.

일협동조합 조합원들은 지난 9월 말에 한살림서울생협에서 퇴사해, 10월 1일부터 일협동조합의 구성원으로 매장활동을 시작했다. 일협동조합은 말 그대로 일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직원협동조합'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으로 비치는 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운영자, 노동자 두 가지 속성이 있다. 그동안 고용되어 일하던 모습에서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기에 더욱 노동자보다 운영자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허명옥 이사장은 그동안 한살림 매장을 운영해 온 활동가의 두 가지 속성을 일협동조합 안에서도 그대로 이어 간다고 보았다.

▲ 한살림 강일매장을 이끄는 조합원 7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뒷줄 왼쪽부터 김은숙, 김선희, 유혜정, 김해경, 허명옥 조합원, 앞줄 왼쪽부터 최덕화, 김순옥 조합원. ⓒ살림이야기(우미숙)

일협동조합의 조합원 7명은 5~12년 동안 한살림 매장활동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허명옥 이사장은 올해 2월에 한살림서울생협 동부지부장을 마치고 곧바로 일협동조합에 합류한, 20년 차 '한살림 사람'이다. 이들은 매장 운영·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 마음과 손발을 맞추는 데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입고부터 재고 정리까지 협동의 힘으로

운영자로서 책임감을 모두 함께 갖자는 뜻으로 7명 모두 이사장과 이사를 맡았다. 팀장은 우선 팀장 경험이 있는 3명이 3개월 간격으로 순환하고, 나머지 사람들이 살림살이 담당인 살림이사, 매장사업 담당인 사업이사, 기획이사, 소통이사, 활동이사를 맡는다.

매장활동은 모두 똑같이 참여한다. 개장하기 전 입고 물품 정리를 시간제 활동가에게 맡기는 예가 있지만, 강일매장은 7명이 모두 함께한다. 보통 오전 8시 30분부터 입고 정리가 시작되는데 이들은 8시부터 나와 서로 힘을 보탠다.

ⓒ살림이야기(우미숙)
일협동조합의 매장 운영에서 특별한 점은 이사장과 팀장 이원 체제다. 팀장이 매장물품사업을 총괄하고 책임을 지며, 논의는 이사회에서 한다. 이사장은 매장물품사업을 포함하여 조합원 활동, 활동가 관리 등 전체를 아우르는 역할을 하는데 특히 매장을 이용하는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한다. 역할이 분담되어 있어도 일하다 보면 역할에 따른 갈등이 빚어질 수 있을 텐데, 허명옥 이사장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 논의할 때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 이사장이라고 해서 진두지휘를 하지 않는다"며 수평적 관계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하는 사람들이 자발성과 자주성을 더 발휘하게 해 주는 게 협동조합의 수평적 문화다. 일협동조합 7명은 활동시간이 똑같다. 발주나 소통, 계산 등의 업무를 오전·오후로 역할을 분배해 고르게 한다. 팀장이라고 일을 더 하지 않는다. 이게 가능한 것은 수당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장과 팀장이 위탁수수료에 책정돼 있는 수당을 받지 않고 따로 모아 둔다.

이외에도 일반 매장이나 자주관리매장과 다른 점이 있다. 매장은 한살림서울생협의 사업부에서 하달된 일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자주관리매장이라고 해도 활동가의 자주 운영의 범위에 한계가 있고, 대체로 팀장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일협동조합은 구성원이 자율적으로 결정하여 자주적으로 운영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방식이라 운영·관리가 독립적이다. 매장을 찾는 소비자 조합원과 더 많이 소통하고 활동 기회도 많아지는 장점이 있다.

▲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만나기 위해 생산자들이 매장에 찾아와서 시식 행사를 열었다. ⓒ살림이야기(우미숙)

7명만의 일터가 아닌, 소비자 조합원과 함께하는 일터

일협동조합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소비자 조합원과 함께하는 매장'이다. 일하는 사람 7명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10월 초에 매장 앞에서 열었던 벼룩시장도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과 함께하는 자리였고, 조합원 7명이 기획과 진행에 참여한 행사였다.

"매장활동위원회를 만들어 조합원의 날 행사도 함께 진행하고, 일상적으로 시식 행사나 홍보 활동을 함께하고 싶다." 허명옥 이사장이 구상한 내년 계획이다. 그야말로 소비자 조합원 순수 자원활동을 매장에서 이끌어 내 보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여기에 작은 대책도 있다. "이사장과 팀장 수당을 모아서 매장활동위원회에 참여하는 소비자 조합원들에게 작은 선물을 주거나 조합원 활동과 관련해 활용하려고 한다."

이들은 소비자 조합원 활동이 활발할수록 참여율과 매출이 더 올라간다고 생각한다. 소비자 조합원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게 일협동조합이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긴다.

쌀 4kg 드는 힘 길러 70살까지

일본에서는 나이 든 사람들이 생협 매장이나 활동 공간에서 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꼬부라진 허리에도 빠른 걸음과 손놀림으로 일을 거뜬히 해내는 모습이 신기하다. 한살림 활동가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 모습을 떠올리며 강일매장 일협동조합에서 '쌀 4kg 드는 힘 길러 70살까지'라는 표어를 만들었다. 정년 없는 삶을 실천하는 다짐이다.

"이게 협동조합 매력 아닐까요? 역할 순환이나 정년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협동조합이 뭔지 명확히 알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생협 활동을 하면서 익숙한 것이기에 믿고 나섰다.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 잘 안다. 그것은 "내 것을 조금 더 내놓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 매장은 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용하는 한살림 소비자 조합원 모두의 공간이다. 소비자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많아질수록 매장물품사업도 잘된다. 지난 10월 강일매장 앞에서 연 벼룩시장. ⓒ살림이야기(우미숙)

한살림서울생협과 강일매장 일협동조합의 위탁 내용

- 일협동조합은 한살림서울생협의 매장 업무를 위탁받아 한살림서울생협과 공동운영을 하고 위탁수수료를 받는다.

- 위탁수수료는 활동비(인건비)와 운영·관리비(복리후생비, 회의비, 교육수당, 연수비)로 구성한다.

- 활동비는 규정시간, 표준근무타입을 기준으로 산정하여 지급하고 운영·관리비는 공급액 대비 요율에 따라 지급한다.

- 위탁수수료와 별도로 구분하여 사업비(홍보비, 행사비, 시식비, 특별활동비) 예산을 한살림서울생협에서 편성하고, 집행 권한을 일협동조합에 전면 위임한다.

- 세무·회계 관련 업무는 한살림서울생협에서 대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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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야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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