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역풍 없다…박근혜와 장기전 각오하자"

[창간 15주년 토크 콘서트] 이상돈-이철희-이정미-이준석이 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점이 있는 뉴스 <프레시안>이 창간 15주년을 맞아 지난 18일 토크콘서트를 열었다. 당초 원내 4당의 대표적인 ''을 초청해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전망해보려던 기획이었으나, 어쨌거나 우리네 꿈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시국이 이러한 터, 토크 콘서트 참석자들은 2017년 대선은커녕 2012년 대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를 다시금 조망하는 데 그네들의 기운을 모았다. 그 끝을 모르겠는 그야말로 우주적 스케일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정의당 이정미 의원, 새누리당 이준석 전 비대위원(노원병 당협위원장)이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해 전한다. 토크콘서트는 이날 저녁 서울 마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전홍기혜 편집국장의 사회로 약 1시간 반에 걸쳐 진행됐다.

"박근혜, 심각한 문제 있는 상태에서 취임"

프레시안 : 일단 이 거대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면 좋을 지부터 이야기하자.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각각 보고 있나.

이정미 :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제일 먼저 주장한 국회의원으로서 첫 타자로 얘기해보겠다. (웃음) (이 의원은 박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 담화를 한 지난달 25일 저녁 청와대 앞을 찾아 "순수한 마음으로 하야를 요구합니다"라는 종이 팻말을 들었다. 편집자)

이 사태 본질은 이미 국민이 다 정의를 하고 있다.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라고 하고 있다. 다수의 시민이 선출된 사람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권력을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사적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유화한 사건이자, 민주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국정 질서 자체가 뒤흔들린 사건이다.

동시에 이번 사건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해 온 정치 경제 기득권 권력이 어떻게 장막 뒤에서 사회를 실제로 지배해 왔는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 대한민국 사회가 이 낡은 기득권 카르텔 질서를 털어내고 새 질서로 나아갈 수 있느냐 기로에 서 있다고 본다.

▲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상돈 : 저는 이번 사건이 과거 있었던 전형적인 정경 유착하고는 차원이 다른,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있기 어려운 아주 특이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가 아는 전형적인 정경유착은 MB(이명박 정부) 때 최고조로 이루어졌다. 물론 이번 사태에서도 몇 기업이 등장하지만 사건의 양상이 좀 다르다. 아주 특이한 상황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박 대통령이 애초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상태에서 취임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도 긴박한 상황에서 후보가 보이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한 번은 안대희 당시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장과 회의를 갔는데 박 당시 후보 얼굴에 다크서클이 심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며칠 잠을 못 잔 것 아닌가 싶더라.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은 깨어있으면 집무 중이시고 주무시면 퇴근한 것'이라고 말한 게 흥미롭지 않나. 최근엔 종교계 인사를 만나 '잠이 보약' 아니, '잠이 최고'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게 지금 사태와 연관이 될지 모르겠다. 좀 특이한 무언가가 사태 한가운데 있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저는 이번 사태를 전형적인 정경유착 사건이 아닌 좀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철희 : 저는 이번 사태를 예고된 실패라고 본다. 우리 사회의 권력이 기형적으로 배분돼 있었던 것이 이런 대참사를 빚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 권력이 지나치게 강하고, 아주 큰 권력을 가진 행정부가 민주화되지 않은 채로 봉건적인 상명하복 질서에 아직 있다. 동시에 언론도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언론이 진작에 제대로 검증했더라면, 여기까지 왔을까. 언론이 너무 우호적으로 지켜주다 보니 박근혜라는 사람의 실체가 잘 안 드러났던 것 같다. 이렇게 권력이 편향적이고 기형적으로 편재돼 있었다가 지금 그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요즘 드라마틱한 뉴스가 매일 생산되는데 그 재미 요소에 너무 빠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점이다.

이준석 :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박근혜 키즈'라고 보시듯, 저 스스로도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참 곤란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 대통령이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튀는 발언을 했을 때, 이를 이해하려고 했던 보수 세력의 노력이 과연 적절했던 것인가 싶다. 예를 들어 인혁당 관련 '2개의 판결' 발언이 나오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큰 이들은 이 발언을 박 대통령의 가정사에 대입해서 이해하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지도자의 소신'이라고 포장했고, 어떤 사람은 '누구나 특정 영역에선 고집이나 똘기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런데 이런 톨레랑스(나와 다른 사상 신념 이념 종교 등을 가진 이들에 대한 관용)가 과연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되려는 자에게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런 걸 요즘 겸허하게 생각해보고 있다. (이상돈 의원도 2개의 발언과 관련해, 김종인 전 비대위원과 홍사덕 전 의원으로 이루어진 "공식 라인에서 올린 얘기와 전혀 다른 얘기를 박 대통령이 해서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고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편집자) 이 사상 초유의 대참사 앞에서 권력에 대한 내부 감시 시스템을 어떻게 다시 확충해야 할지 꼭 토론해야 한다고 본다.

그들은 정말 최순실을 몰랐는가..."정윤회는 '강남팀 정 실장'"

프레시안 : 검증이 부족했단 점에서, 공교롭게도 여기 박근혜 정권 창출에 일정 정도 역할을 했던 두 분이 앉아 계시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은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 그리고 최순실이라는 비선의 존재 등을 몰랐나.

이상돈 : 많은 사람들이 최순실로 상징되는 비선의 존재를 몰랐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거짓말이다. 이상한 느낌은 있었겠지만 이렇게까지 될지를 몰랐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2012년 대선 본선에 들어오면서부터 뭔가 주변 기운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비선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게 대선 본선부터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JTBC가 입수한 태블릿도 2012년 9월부터 사용됐더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시 (박근혜 또는 비선의) 줄을 잡고 자리를 구걸하고 했겠나. 아마 요즘 등골 뻣뻣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로 상징되는 보수 세력의 민낯이 다 드러났다. 박근혜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덕인데, 이로써 한국 사회는 '미우나 고우나 박정희'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준석 : 저희 같은 아웃사이더는 그 안(비선)을 들여다볼 기회가 별로 없었을 거라는 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변명의 전부다. 물론 여러 정황은 있었다. 이상돈 의원이 최순실의 존재를 알았던 사람이 있을 거라고 말했는데, 저도 공감한다. 저의 경우엔 최순실은 몰랐지만 정윤회 씨에 대한 얘기는 종종 들었다. 2012년 대선 캠프 안에선 '강남팀 정 실장'으로 회자됐었다.

당시 비대위를 할 때도 김종인 비대위원장, 이상돈 비대위원 그리고 제가 박 당시 후보랑 토론을 해서 뭔가를 관철시키더라도 금방 용수철처럼 후보의 입장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들이 잦았다. 그러다 보니 캠프 안에서도 소위 말하는 '문고리 3인방'과 최경환 의원의 2선 후퇴를 주장하며 싸운 인사들이 있었으나 이런 (비선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대선 때는 박 대통령의 옷을 해다 주고 김치를 가져다주는 정도의 측근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랬던 사람이 점차 청와대 안으로 침투하는 동안 이를 걸러내지 못한 것은 여당이 다 같이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결국은 박 대통령을 둘러싼 그 폐쇄적인 시스템을 새누리당이 받아들인 것 자체가 큰 문제였다.

▲ 새누리당 이준석 노원병 당협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이정미 : 그런데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처럼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8년 동안 새누리당 한나라당 당적으로 쭉 정치를 해 온 사람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지금은 박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이는 박근혜란 사람이 이제는 권력 유지에 불필요하다 못해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 아닌가. 친박 비박을 나누어 그 중 누구는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나.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정당의 책임이란 것이 있다.

이준석 : 새누리당에 책임이 없냐고 물으신다면 당내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 전체 차원에서 책임이 져야 할 게 분명히 있다. 단체 체벌을 받아야 한다. 또 개인적 책임을 더 져야 할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더 치열하게 다툴 기회가 있었음에도 여기까지 온 것은 아마 그 박근혜 대통령 특유의 통솔력 때문이었을 거라고 본다. 통솔력은 전시에 발휘되는 리더십이다. 박근혜라는 정치인은 주요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통솔력이 뛰어났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집권 이후 통치력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얘기한 대로 비박계도 책임이 있다. 당선 이후 어느 정도 본인들이 이 정권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만이 있더라도 이 정부 일말에라도 참여할 수 있겠지란 마음으로 처음에는 비판의 날을 못 세웠던 것도 있다. 실제로 대통령 당선 이후 언론사가 발표한 예비 내각 명단을 보면 환경부 장관에는 이상돈 의원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느껴진다. (웃음) 또 산자부 장관에는 이혜훈 의원이 거론됐었고 경제부총리 후보에는 유승민 의원도 있었다. 총리 후보엔 김종인 의원도 거론됐다. 이 멤버로 초기 내각을 짰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언론 비호로 만들어진 YS와 박근혜, 둘다 나라 말아먹어"

이철희 : 저는 이번 사태를 보수, 특히 보수 언론이 벌인 시대적 사기라고도 본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도하게 상징 조작이 된 사람이다. 사실 따져보면 대통령의 딸로서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한 것 외에는 어떤 국정 운용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대통령 적임자가 되기엔 어려운 이상한 지점으로 비치지 않고 외려 '두 부모를 총탄에 잃은 가녀린 딸'로 상징화됐다.

저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 의해 주술적 마법에 걸려 있는 바보라고 간단하게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통령을 할 만큼의 지적 역량이 있는지는 분명히 회의적이다. 많은 이들도 저와 비슷할 텐데, 그럼에도 많은 언론이 검증 없이 그냥 넘어갔다. 언론 비호로 만들어진 대통령이 둘 있다고 보는데, 김영삼과 박근혜다. 그리고 이 두 사람 모두 나라를 말아먹었다. 수호 천사 언론이 결과적으로 시대적 사기극을 벌인 셈이 됐다.

이상돈 : 2012년 당시를 보면 정권을 야권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한국 재계와 주요 언론에 팽배해 있었다. 이런 게 박근혜 정권 창출에 일조했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꼭 보수 진영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기억해 보자. 이명박 정권 들어서서 야당이 너무나 지리멸렬하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같은 매체도 박근혜 당시 대표에 대해 잘 써줬고 의존하기도 했다.

기억나는 게, 박 대통령도 삼성동 집에서는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을 구독해 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향신문을 열독했다. 내가 박 당시 대표에 대해 어떤 논평을 한 기사에는 밑줄까지 쳐서 '제 뜻은 이런 게 아니다'라고 따진 일도 있었다. 여기서 강조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전여옥 전 의원이 얘기하듯 박 대통령이 남이 써준 것만 간신히 읽는 그런 정도의 사람은 아니다.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좋지 않다.

"새누리, 깨져야 산다" vs. "당 안에서 싸워 이겨야"

프레시안 : 새누리당에선 이정현 대표가 비주류의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여기 나와 있는 이준석 당협위원장은 13일부터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단식 중이다. 앞으로 새누리당 또는 보수 진영은 어떻게 재편될 것으로 보나.

이정미 : 단식을 계속하고 있어 건강이 걱정되는데, 더 우려되는 것은 설사 단식 투쟁으로 이정현 사퇴를 관철시키더라도 새누리당이 개혁될까 싶다는 점이다. 자체적인 내부 개혁이라는 게 불가능하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친박이 물러서고 비박이 당권을 잡아 새누리당이 점진적으로 합리적 보수로 개혁된다는 게 가능할까. 이참에 가짜 보수 안에 갇혀 있기 아까운 이준석 위원장 등이 박차고 나와서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진짜 보수 세력으로 결집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철희 : 단식해도 사퇴 안 할 거 같은데…. (웃음)

이준석 :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웃음)

이상돈 : 솔직히 새누리당은 이미 끝난 거다. 진작 망할 거였는데…. 차떼기 이후 다 망해 가는 것을 박근혜가 부활시켰는데 이젠 본인이 막말로 끝장을 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대표가 버티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형편없는 집단인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재창당 같은 거 안 된다고 본다. 역량 있는 의원들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한다. 총선 많이 남았으니 그럴 기회는 충분하다.

이준석 : 고민스러운데, 일단 저희가 싼 똥은 저희가 치우고 새집을 짓든 해야 하지 않을까. 저희 장을 비우는 과정으로서 단식을…. (웃음)

어쩌면 지금 새누리당이 겪는 과정이 정의당이 예전에 통합진보당에서 갈라져 나오던 때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의당이 지금과 같은 가치 중심의 진보 정당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데는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도 영향을 끼쳤다. 상대편이 강제로 해체되었기 때문에 일순간에 진보 정당 으뜸으로 설 수 있었던 면도 있다. 그런데 저희는 탈당한다고 해서 '순실한 사람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지금 잘 설계해서 어떤 절차를 밟지 않으면 저는 고루한 이념 보수가 다시 공격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철희 : 정당이 혼란에 빠져서 망하는 길로 내달리는 그거, 우리 당도 과거에 못지않은 경험이 있다. (웃음) 그래서 좀 노하우가 있는데…. 전 새누리당 내 비주류가 당을 깨고 나가기보다 새누리당 안에서 온전한 보수당을 만드는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 안에서 치열하게 싸워서 낡은 보수, 꼴통 보수를 몰아내고 좋은 정당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길 바란다. 물론 탈당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런데 말한 대로, 나간다고 해서 그 사람들(친박)이 사라지느냐.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 안에서 싸워서 빈틈없이 완벽히 승리해 새누리당이 개혁적 보수 정당으로 가는 게 우리 정치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프레시안(최형락)

불가피한 탄핵 국면…"장기전 각오해야"

프레시안 : 이제 어떻게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해 보자. 오늘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토크콘서트 시작 전에 한 축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스스로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라면서 탄핵이 진행되는 수개월 동안 황교안 총리가 국정을 움직일 수 없도록 거국 중립 내각 총리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 내각이 서 있어야 탄핵 후에 대선이건 개헌이건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다는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 준비 시나리오다.

이상돈 : 일단 저는 특별한 묘책은 없다고 본다. 국회는 국회대로 탄핵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탄핵을 거론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많이 떠올리는데, 이번에는 그런 역풍 없다고 단언한다. 제가 좀체 발언을 안 하는 의원총회에서도 일어나서 그런 역풍 없을 거라고 단단히 얘기를 했다. 우리나라 국민이 굉장히 성숙하다는 것이 그나마 기댈 곳 아닌가. 6개월이 될지 8개월이 될지 모르겠지만 상당 기간 혼란을 감수해야 할 것인데, 국민들이 이 혼란 속에서도 국가를 지킬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장기전을 각오해야 한다.

이정미 : 국민은 지금 국회에 '탄핵하라. 우리가 빽이 되어 주겠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오히려 정치권이 쫄아 있는 것 같다. '박근혜가 퇴진하겠어?' '하야 절대 안 해' '탄핵하려면 350일 걸려' 이런 얘기들만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어떤가. 심판하는 게 중요한 것이다. 심판이라는 원칙과 기준 속에서 방법을 모색해야지,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건 저래서 문제라고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대통령 퇴진 요구는 어찌 보면 박 대통령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안 하면 탄핵해야 한다. 소추되면 일단 대통령 권한이 정지된다. 거기서 과도 내각을 구성해 대선 준비를 해야 한다.

이철희 : 저도 이 상황이 굉장히 길게 갈 것이고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본다. 저는 일단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이 사태 수습은 국회가 주도하는 게 맞다. 국민이 직접 선출한 기구가 대통령과 국회인데, 한쪽이 무력화되었으니 다른 한 쪽이 기능을 하는 게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권에서는 이준석 위원장 같은 새누리당 안에 상당수도 포괄할 수 있는 연대 틀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살아있는 대중적 동력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운동본부가 됐든 머가 됐든 시민 사회에서 이 하야 동력이 유지될 틀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

'유권자가 퇴진하라 하야하라 외치는데 정치권은 왜 그것을 시원하게 못 밀어붙이냐'란 지적은 타당하다. 정치인들이 깊게 새겨야 한다. 저도 물론 야3당, 특히 그중에 민주당이 잘 못하는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크게 보면 저는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서두르면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강자인 것으로 생각해서 주눅 들 필요는 없지만, 너무 일찌감치 승전가를 불러서 마치 다 이길 것처럼 하다간 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朴, 진영 대결 구도로의 전환 기대하나?


▲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철희 : 얼마 전부터 우리 사회는 이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느냐란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 대통령 1인 문제, 비선실세 국정 농단 사태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바꾸면 다 해결될까, 아니다. 물론 대통령을 바꾸는 것은 아주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 사태를 계기로 기성 체제의 권력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담합 구조가 형성돼 있는지를 정말 잘 따져봐야 한다. 이번 사태가 보여준 여러 문제점들 중 80%는 대통령이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나가는 데 시간을 좀 들일 필요가 있다. 갑자기 청소한다고 새 시스템이 정착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 야권의 대선 주자들의 조바심이 느껴지는데 이러면 안 된다. 제가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 대선 주자들이 주도하는 그림이다. 이것은 최악이다. 이 판을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 대선 게임으로 전락시킨다면 망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마 이런 생각도 할 것이다. '나는 세월호 참사도 이겨낸 사람이다.' 세월호 참사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이게 어느 순간 정쟁이 되질 않았나. 이 사태 수습은 국회, 그러니까 정당이 주도해야지 대선 주자가 주도해선 절대 안 된다. 우리들 먼저 내가 좋아하는 대선 주자에게 어떤 솔루션이 유리한지 아닌지를 따져보지 않으려고 무지 노력해야 한다.

이준석 : 신기하게도 탄핵을 추진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청와대에서 국회의 탄핵 추진을 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많은 이들이 2선 후퇴를 조언했지만 외려 갈수록 퇴로를 막으면서 길을 탄핵으로 좁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니 궁금해진다. 보수층에게 주어질 자기 합리화 거리가 뭐가 있을까. 일단은 추미애 대표의 계엄령 발언과 같은 야권의 오버슈팅(과도한 행동)에서 나올 태생적 보수들의 반발 심리를 기대하는 것도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도하고 있는 것은 진보-보수 프레임 대결로 이 상황이 뻗어나가는 것 아닐까 싶다. 누가 세월호가 그렇게 진영 간 싸움이 될 거라고, 그리고 검역 주권 문제였던 광우병 사태가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고삐 풀린 종편들이 만약 이후 다소 과장된 보도들을 쏟아낸다면, 이 또한 보수층에 자기 합리화 거리가 될 것이다. 제가 평론가처럼 이렇게 말하는 게 죄송스럽긴 하다. 다만 새누리당 안에서도 이번 사태가 이런 구도(진영 대결 구도)로 형성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사태를 1987년에 빗대는데, 87년 그 치열한 정치적 투쟁의 결과가 노태우의 6공화국이었다는 역설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10년 전쯤을 돌아보면 사실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는 크지 않았다. 그런데 세종시 이전 문제 하나로 이명박과 박근혜 사이, 그러니까 이명박근혜라는 선이 끊어졌다. 이렇게 차별화시킨다. 일부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정권 교체로까지 봤다.

디도스 때를 돌이켜봐도, 당시 새누리당 지지율이 14%까지 추락했었는데 2달 만에 41%로 올라섰다. 그 두 달 사이 뭐가 있었던 게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당 사이에 차별성을 두는 것만으로 가능했다. 지금 몇 주간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 와중에도 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반사이익이 별로 크지 않았다. 또 갤럽보다 리얼미터에서 박 대통령 지지율이 더 많이 나오는데, 이는 전화면접을 하는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차마 박 대통령을 아직 지지한다고 말 못 하는 사람이 ARS 방식의 리얼미터 조사 때는 1번을 누른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의 함의도 따져봐야 한다.

'박근혜 이후' 제대로 만드려면…"한국 시스템 통째로 바꿔야"

▲ 정의당 이정미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이상돈 :
저는 이번 사태의 3분의 2 정도를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로 본다면 나머지 3분의 1은 시스템의 실패라고 본다. 크게 보면 우리가 과연 대통령제를 감당할 수 있는가란 고민이 든다. 또 현재 (승자독식) 선거 제도와 비뚤어진 언론 환경, 이런 것이 총체적으로 문제였다. 대통령 권한이 너무 많은 대통령제에 선거제도와 언론 문제까지 극단적으로 조합된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가 한 개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한국의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이철희 : 일단 박근혜 대통령을 너무 악마화하거나 바보로 몰지 않았으면 한다. 이 편향을 벗어나야 한국이 좀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본다. 또 하나. 김종필 전 총리가 5000만이 요구해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5000만이 요구하는데 어떻게 버티나. 이것 또한 상징 조작이다. 박 대통령은 지금 100만 촛불에 굉장히 두려울 것이다. 박 대통령은 괴물이 아니다.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상징 조작에 말려들면 안 된다. 우리가 주권자로서 퇴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모이자.

이정미 : 저는 이 사태를 해결하며 정치권이 특히 조심해야 할 함정이 2개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너무 디테일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 최순실이 어쨌고 우병우가 어쨌고 이런 디테일은 특검이 밝혀낼 것이다. 정치권은 큰 그림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논의해야 한다. 또 하나는 권력 구조 문제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대통령제가 지금 사태를 만든 것은 아니다. 대통령제 핵심은 삼권분립이 핵심인데 이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이 문제를 만든 것이지, 제도 자체가 이 사태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적 구조 뒤에 숨은 권력이 어떻게 해 왔는가다. 정치 권력, 언론 권력, 재벌 권력이 수십 년간 카르텔을 형성하며 나라를 지배해 왔고 그 연결고리가 하나씩 지금 드러나고 있다. 이 기득권 카르텔 구조를 주목하고 바꾸는 게 정치인이 해야 할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기득권 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정권이 바뀐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통령 소속 정당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이 바뀌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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