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변호인>(2013년)으로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다음, 강도 높은 세무 조사를 받았다. CJ엔터테인먼트는 노 전 대통령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로 역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 등이 얽혀 이미경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NEW는 <연평해전>(2015년)의 투자 배급에 나섰고, CJ엔터테인먼트는 <국제시장>(2014년)과 <인천상륙작전>(2016년)을 투자 배급했다. 모두 '국뽕 영화'(마약을 한 듯 애국심을 부추긴다는 의미의 속어)로 불리는 작품들이다. 최근 뉴스는 아니지만, 2015년 부산 국제 영화제는 <다이빙 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쑥대밭이 됐다.
집권 세력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영화를 몰고 갈 때 한국 영화 시장의 독과점 체제는 매우 효율적이다(반대의 입장에서 보면, 재앙이다). 뉴스에서 드러났듯 몇몇 대기업에 압력을 가하면 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흥행 시스템에서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와 집권 세력의 관점을 담아낸 이야기에 스타 캐스팅, 화려한 볼거리, 신파의 감동과 눈물, 코미디를 적당히 버무린 다음 100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개봉하면 몇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권위주의 시대에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이중, 삼중으로 검열하고 완성된 영화에 가위질까지 하며 상영 자체를 금지했다. '표현의 자유'는 아예 원천 봉쇄했다. <대한뉴스>와 '문화영화(文化映畵, 픽션이 없는 영화를 총칭)'를 통해 정권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정책을 홍보했다. 이 시기의 검열은, 전체는 아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방식이었다.
반면, 지금의 검열과 통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한뉴스>와 '문화영화'가 사라진 자리를 대기업이 제작한 '창조 경제를 찬양하는 광고'와 '국뽕 광고'가 차지한다. 기업이 그런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또 '국뽕 영화'의 투자 배급 과정에서 압력의 증거를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왜 그 영화를 투자 배급했느냐?'고 묻는다면, '시나리오가 좋고 흥행의 가능성도 있어 보여서'라고 답하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드러낸 영화뿐 아니라, 은연중에 보수의 관점이 드러나도록 설정과 장면을 계속 만든다.
<연평해전>의 한 장면을 보자. TV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한일 월드컵의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영안실에 전사자를 안치하고 슬픔에 잠긴 가족들이 그 뉴스를 보면, 반응이 좋을 리 없다. 게다가 뉴스 장면은 영안실 컷 다음에 나온다. 여자 앵커는 먼저 '남북한의 교전이 있었지만 금강산 관광은 차질 없이 이어졌다'는 내용을 전하는데, 뉴스를 시청하던 사람 몇몇이 화면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동작은 이 장면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가시화한다.
특히 금강산 관광에 대한 부정적 묘사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 유화정책인 '햇볕 정책'이, 곧 연평해전의 비극을 낳았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앵커는 다음 소식으로 대통령의 한일 월드컵 폐막식 참석을 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이어 주인공 윤영하의 아버지가 분노한 표정과 동작으로 TV 화면을 주시하고, 그의 시점을 중심으로 뉴스 장면이 이어진다. 따라서 이 장면은 남한 병사들이 전사한 비극적인 소식에도 대통령이 안일한 태도로 행사에 참석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몇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주)쇼박스'가 투자 배급한 <의형제>(2010년)의 경우, 남북한 정상인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뉴스 장면에서 이를 본 주인공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이 역사적 사건으로 국정원 직원 이한규는 대공 수사 요원에서 해직되고, 남파 간첩 송지원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버림받기 때문이다. 이한규는 송지원이 만난 사람 가운데, 방송국 피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피디라는 새끼가 빨갱이니까 온 천지가 빨갱이들이지"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2008년 촛불 집회와 관련해 광우병 쇠고기 보도를 한 문화방송(MBC) <피디수첩> 제작진을 떠올리게 한다.
'(주)영화사 울림'이 제작하고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한 <간첩>(2012년)에서, 림정수의 간첩 활동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것이다. 한우 지킴이를 자청하는 우대리의 간첩 활동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에 참가하는 것이다. 이런 설정이 풍자일 수도 있지만, 은연중에 '시위자=빨갱이=간첩'이라는 도식을 형성한다. 또 40년 동안 남파 간첩으로 산 윤고문은 "자기들이 뽑은 대통령(아마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김정일보다 더 욕한다"고 비웃으며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 때가 참 좋았다"고 덧붙인다.
'더램프(주)'와 '(주)황금물고기'가 제작하고 '(주)쇼박스'가 배급한 <동창생>(2013년)에서는 간첩 강대호가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에 침투한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가 개봉한 해는 국가정보원이 '간첩 조작 사건'을 일으킨 시기와 겹친다. 국정원은 탈북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이 국내 탈북자 200여 명의 정보를 북한에 넘겨준 간첩이라며 기소했지만, 결국 국정원의 조작 사건으로 판명 났다. 현실의 국정원은 간첩을 만들어내는데, 영화의 국정원은 진짜 간첩조차 식별하지 못한다. 간첩 강대호는 탈북 경위를 조사받은 후, '하나원'에서 착실하게 교육받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 부부로 위장한 간첩 가정에 들어가 고등학생이 된다. 역시 '탈북자=빨갱이=간첩'이라는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다.
'노무현'을 다뤘거나 생각나게 한다는 이유만으로 '좌파 영화'로 낙인찍히고 투자 배급사가 탄압을 당한다는 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그러나 2008년 보수 정권이 집권한 후 이런 식의 사건이 계속되면서 점차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카더라 통신' 또는 '찌라시'를 통해 '찍히면 밥줄이 끊긴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다. 공포가 은연중에 공기처럼 스며든 것이다. 여기에 과거 독재 정권의 후유증으로, 무의식에까지 각인된 공포가 올라오면서 스스로에 대한 검열도 어느새 내면화됐다.
<변호인>의 경우, 명확하게 변호인 시절의 노무현과 그가 변호한 '부림 사건'을 다루면서도, '본 영화는 실제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하였으나 허구임을 밝힙니다'라는 자막을 넣었다(아니, 넣어야 했다). 손아람의 소설을 각색한 <소수 의견>(2013년, 하리마오 픽처스 제작, 시네마서비스 배급)의 경우, '이 영화의 사건은 실화가 아니며 인물은 실존하지 않습니다'라는 자막으로 2009년 용산 참사와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2013년에 완성된 이 영화는 배급사가 CJ엔터테인먼트에서 시네마 서비스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다.
반면, <연평해전>은 '이 영화는 2002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을 이루어낼 당시, 서해 연평도 북방한계선에서 북한 경비정에 맞서 싸운 해군 제2함대 소속 참수리 357호 대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한 것입니다'라는 매우 구체적인 자막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변호인>·<암살>·<내부자들>의 흥행은 좋은 일이고, <국제시장>·<연평해전>·<인천상륙작전>의 흥행은 나쁜 일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안팎으로 위축받는 상황에서 한국 영화 시장의 독과점 체제의 지나친 효율성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