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차움병원(차움의원)을 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길라임'은 박 대통령이 이 병원을 이용하기 시작한 때로 알려진 2011년 초 방영된 SBS 드라마 <시크릿가든> 속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배우 하지원 씨가 연기했었다.
차움병원은 차병원 그룹 계열이다. 고급 회원권은 가격이 1억5000만 원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부유층 전용 '유사 영리병원'이다. 차움병원 안에는 실제로 '시크릿가든'이라는 장소가 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길라임'의 직업은 '스턴트 우먼'이었다. 위험한 연기를 대신하는, 대역 배우 역할이다. 또 드라마에서 '길라임'은 재벌가 아들인 남자 주인공과 영혼이 바뀐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사이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라서, 온라인 공간에선 하루 종일 다양한 풍자가 이뤄졌다. 누리꾼들은 박 대통령을 가리켜 "성공한 드라마 덕후"라고 한다.
박근혜 의료 정책, '차병원 맞춤형'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계열 병원 안에 '시크릿가든'이라는 장소를 마련해 둔 차병원 그룹과 박근혜 정부 사이의 관계 역시 끈끈하기 때문이다. 차병원 그룹은 의료 영리화, 의료 민영화를 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에서 영리병원을 운영한 경험도 있다. 박 대통령이 이용한 차움병원 역시 유사 영리병원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 내내 의료 관련 규제를 푸는데 골몰했다. "규제는 암"이라는 박 대통령의 호통 역시 의료 관련 규제를 향한 것이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16일 차병원 그룹과 박근혜 정부 의료 정책의 관계를 다룬 보고서를 발표했다. "차병원 그룹은 박근혜 정부 의료 영리화 정책의 수혜자"라는 제목이다. 결론은, 보건 관련 단체들이 앞서 제기한 의혹대로다. 현 정부의 의료 정책은 '차병원 그룹 맞춤형'에 가까웠다.
보건 관련 단체들이 이제껏 밝혀낸 것 말고도, 새로운 유착 고리들이 확인됐다. 박 대통령은 '길라임'이라는 가명으로 드나들었던 병원을 위해 온갖 혜택을 베풀었다.
사실상 '문어발 재벌'…제대혈, 백신, 화장품, 벤처 캐피탈 등 다양한 계열사
보고서에 따르면, 차병원 그룹의 지배구조는 사실상 '문어발 재벌' 형태다. 창업자는 차경섭 성광의료재단 이사장이다. 차 이사장의 아들인 차광렬 총괄회장이 총수 역할을 한다.
강남차병원, 분당차병원, 분당차여성병원, 차움한의원, 차움의원, 차의과대학교 등 병원 및 대학교를 운영하는데, 이들은 성광의료재단, 세원의료재단, 성광학원 등이 설립했다.
영리 기업도 운영한다. 이들 기업을 지배하는 꼭대기에는 차바이오텍이 있다. 세포 치료제 연구 개발 및 제대혈 보관 사업을 하는 회사다.
그 아래에 다양한 계열사가 있다. 제대혈 은행, 제약 산업, 백신 연구, 화장품, 기능 식품, 해외 병원 투자와 운영, 해외 부동산, 의료기관 시설관리 및 전산 개발, 임상시험 수탁업(CRO), 벤처 캐피탈 투자업 등에 진출했다.
차병원 계열 벤처 캐피탈, 복지부 조성 1500억 원 규모 펀드 운용사 선정
차병원 그룹 계열 벤처 캐피탈인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KB인베스트먼트와 함께 보건복지부가 조성한 1500억 원 규모의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 운용사에 선정됐다. '글로벌 헬스케어 펀드'는 보건복지부가 조성한 보건의료산업 관련 펀드 중 최대 규모다.
또 올해 5월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제5차 규제 개혁 장관 회의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바이오 헬스 케어 규제 혁신' 방안을 내놨다. 보고서는 차병원 그룹 계열사들이 이 방안의 수혜자였다고 분석했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알츠하이머 치료제에 대해서 3상 임상시험 없이도, 조건부 허가를 해준다고 발표했다. 그보다 6개월 전인 2015년 11월, 차바이오텍은 자신들이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1상과 2상 임상시험 승인을 받은 상태였다. 그리고 올해 5월 규제 완화 발표 직후인 올해 8월, 차바이오텍은 이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을 개시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바이오 헬스 케어 규제 혁신' 방안이 '차바이오텍 맞춤형'이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임상시험 규제 완화, 차병원이 영향 미쳤을 가능성
임상시험이란,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이다. 모두 4단계로 이뤄지는데, 1단계(1상)에서는 대부분 소수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약물의 체내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안전성을 평가한다. 2단계(2상)에서는 적정 용량의 범위(최적의 투여량 등)와 용법을 평가한다. 3단계(3상)에서는 대부분 수백 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최종적으로 검증한다. 4단계(4상)에서는 약물 시판 후 부작용을 추적하여 안전성을 재고하고, 추가적 연구를 시행한다.
알츠하이머 치료제에 대해서 3상 임상시험 없이도, 조건부 허가를 해준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의료계에선 비판 목소리가 높았었다.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당시엔 정부가 이런 방침을 내놓은 배경이 잘 드러나지 않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지금에야, 그림이 드러난다.
보고서는 "정부의 임상시험 관련 규제 완화에 차병원 그룹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의심"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차병원은 '의산복합체', 박근혜 정부 정책 수혜자"
이밖에도 보고서는 현 정부와 차병원 그룹의 유착 의혹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다양하게 제기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보건의료노동조합 등이 앞서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내용도 많다. 예컨대 정부가 추진한 제대혈 공공관리 사업과 차병원 그룹의 연관성 등이 그렇다.
보고서를 낸 윤소하 의원은 "차병원 그룹은 비영리법인 성광의료재단과 학교법인 성광확원을 중심으로 각종 영리 기업을 두고 있는 사실상 의산복합체"라고 지적했다. 이어 윤 의원은 "2013년 12월 제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급격한 의료 영리화 정책이 차병원 그룹의 이해와 직결된다"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의 연관성이 제기된 만큼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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