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직접적 원인과 책임 규명은 물론 이러한 사고를 유발한 구조적 원인에 대한 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재발 방지책 마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국민안전처의 신설을 비롯한 정부의 후속 대책이 과연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방하기에 충분할 것인지는 구조적 원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규명 없이는 평가할 수 없다.
최근 경주 지역 지진 발생 이후 핵발전소(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는 점을 생각할 때, 연안 여객선과 핵발전소의 안전을 포함한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차기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은 연안 여객선 사고가 빈발하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이웃 나라 일본을 비롯하여 해양 선진국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 여객선 사고들이 어찌하여 한국에서는 계속 발생하는가? 대형 참사만 해도 1953년 창경호(300여 명 사망), 1970년 남영호(326명 사망), 1994년 서해 페리호(292명 사망), 2014년 세월호 등 대략 20년 주기로 반복돼 왔다.
공통점은 하나 같이 승선 인원 과다 또는 화물 과적이 원인이다. 최소한의 안전 규정만 지켰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로 수많은 인명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후진국형 사고가 계속되어 온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가장 심층적인 분석은 국회가 구성한 독립조사위원회에서 이루어졌다. 독립조사위원회는 쓰나미 원인론을 넘어서 지진 자체로 인한 손상 가능성을 제기했고, 원자력 안전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 산업에 의해 좌지우지된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이 핵심적인 문제였음을 밝혔다.
나아가 규제 기관이 원자력 산업 진흥을 책임지는 부처 산하에 있어 독립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운 태생적인 한계와 낙하산 인사의 만연으로 인한 유착 관계가 규제 포획의 원인이었음을 지적하였다. 이 보고서는 이후 원자력 안전 규제 기관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의 토대가 되었다.
세월호 특조위가 재개되어 특조위 내 안전사회 소위원회의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오면, 세월호 사건 이후 그동안 이루어진 후속 조치들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와 함께 보다 근원적인 제도적 정책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 소위원회가 지난 9월 말에 발표한 중간 보고서를 보면 여러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많이 제기하고 있으나, 조사 활동 기간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미완의 초고 상태에 머무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족하지만 이 칼럼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구조적 원인을 놓고 연구한 결과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칼럼에서 소개한 필자의 연구는 "The Legacies of State Corporatism in Korea: Regulatory Capture in the Sewol Ferry Tragedy"(with Y.M. Park)라는 제목으로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에 실릴 예정이다.)
세월호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놓고는 크게 두 가지 설명이 있었다. 첫째는 구조적 비리이다. 특히 해피아를 비롯한 관피아의 문제가 주요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나 관피아 등을 통한 구조적 비리가 왜 그렇게 뿌리 깊게 넓게 형성되었는가에 대한 심층 진단과 이를 척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에 대한 논의는 미흡했다.
둘째는 안전 분야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 외주화(out-sourcing, contracting-out) 등의 문제다. 일각에서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나름대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탐구를 한 결과 처음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 관피아 등 구조적인 유착과 비리, 나아가 규제 포획의 연원은 박정희 시대의 국가조합주의적인 이익 집단 관리와 관치 경제에서 비롯되었다. 둘째, 일부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안전 분야의 규제 완화가 세월호 사고의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은 사실이나, 선박 안전 규제 관련 민영화, 외주화의 문제로 거론된 주요 사항들의 연원 또한 신자유주의가 아닌 박정희 시대의 국가조합주의적 규제 정책에 있었다.
결국 신자유주의보다도 박정희 체제의 유산이 세월호 참사에 더 근원적인 책임이 있으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무분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배격 못지않게 국가조합주의적인 관치 경제 체제의 유산을 극복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국가 조합주의(state corporatism) 또는 권위주의적 조합주의(authoritarian corporatism)는 권위주의적인 국가 주도하에 각 부문별로 단 하나의 이익 단체만을 국가가 공인하며 이를 정보 수집 및 통제의 도구이자 보호 및 지원의 통로로 활용하는 이익 중재 체제를 말한다. 아래로부터 자율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조합주의(societal corporatism) 또는 민주적 조합주의(democratic corporatism)와는 대비되는 개념이다.
필립 슈미터(1979)는 국가 조합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포르투갈, 스페인, 그리스, 브라질, 칠레, 멕시코, 전전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국가 사회주의 독일 등을 들었고, 사회적 조합주의로는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을 꼽았다. (Schmitter, Philippe C. 1979. "Still the Century of Corporatism?" In Trends Toward Corporatist Intermediation, eds. P. C. Schmitter and G. Lehmbruch, pp. 7-52. London: Sage Publications Inc.)
박정희가 형성한 한국 발전 국가(developmental state)의 정치경제 체제가 권위주의적 국가조합주의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점은 로버트 웨이드(1990) 등이 간략하게 언급하긴 했지만 대부분의 기존 연구에서 등한시된 측면이 있다. (Wade, Robert. 1990. Governing the Market: Economic Theory and the Role of Government in East Asian Industrialization.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전전 일본의 국가 조합주의와 재벌 위주의 관치경제 모델을 신봉한 박정희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경제 사회 전반을 국가 조합주의 체제로 개편하였는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통해 국가적 차원의 핵심 산업 정책을 추진함과 아울러 각 산업별로 하나의 협회 또는 조합만을 공인하여 통제의 도구로 삼았다.
가령 해운 선사의 이익 집단 한국해운조합도 1961년 제정된 한국해운조합법에 의해 기존의 여러 조직들을 하나의 단체로 통폐합하여 독점적인 법정 단체로 만든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산업별 협회나 조합의 임원 선임에 간섭하였으며, 점차 퇴직 관료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관행을 만들었다.
역대 정부 하에서 이런 관행은 고착화되어 왔고, 이는 퇴직 관료의 사기업체 취업이나 관련 이익 단체 취업을 제한하는 공직자 윤리법의 제정(1981년)과 개정(2001년)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았다. 가령 2001년 개정법은 퇴직 관료가 영리 기업뿐만 아니라 비영리 조직 형태의 이익 단체에 취업하는 것도 금지했지만, 시행령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위탁 사업을 하는 조직은 면제하는 예외 조항을 만들어 개정법의 취지가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한국해운조합에 40년 동안 계속된 낙하산 인사는 이런 맥락에서 나타난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1962년부터 1977년까지는 해운 업체 대표자가 이사장을 맡았으나 1977년 해운조합에 회장직이 생긴 이후 회장은 해운 업체 대표가 맡고 이사장은 해양 수산 관련 고위 퇴직 공무원이 맡는 형태가 고착되었다. (세월호 특조위 안전사회 소위원회, <안전 사회 실현 과제 보고서(초안)>, 115쪽)
2001년 개정 공직자 윤리법이 제대로 시행되었으면 이런 관행이 끊어졌을 것이지만, 국회가 제정한 법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입법 취지를 왜곡, 변질, 무력화시킨 것이다(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시킨 시행령은 이러한 관행을 정부가 악용한 사례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후속 조치로 퇴직 공직자의 취업 제한 대상 기관 수를 확대하였다고 하나, 정부는 민간 경력자 5급 채용을 대폭 확대하고 이들이 공무원으로 일했다가 다시 자신이 일하는 분야로 복귀하는 경우는 취업 제한을 면제했다. 기존의 관피아보다도 폐해가 클 회전문 정경 유착을 합법화한 셈이다. (<안전 사회 실현 과제 보고서(초안)>, 130쪽)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 업계에 포획되어 소비자와 시민을 위한 규제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는 규제마저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데에는 빈번한 향응 접대와 선물 제공(김영란법으로 이에 대해서는 획기적인 개선을 기대한다) 및 은밀한 뇌물 수수 못지않게 낙하산 또는 회전문 인사에 따른 구조적인 유착이 근원적인 문제이다.
이러한 규제 포획의 문제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되었음은 화물 과적과 고박(고정 결박) 불량 등 안전 규제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물론 유명무실한 안전 규제를 개선할 수도 있었을 과거의 입법 시도가 번번이 좌절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국제해사기구의 국제 안전 규정(International Safety Management Code, ISM Code)을 도입하여 각 선사별로 안전 관리 체계를 수립하여 선장은 물론 안전 관리 책임자와 최고 경영자가 안전 관리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가 우리나라 연안 여객선에도 2003년 1월 1일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96년부터 수년간의 논의와 검토를 거쳐 1999년에 이루어졌던 입법이 발효 며칠 전에 업계의 로비에 이은 석연치 않은 정부의 입장 번복으로 재개정되어 이를 면제해 주었다.
2011년에는 내항 여객선의 안전 규제를 담당하는 '운항 관리자'의 소속을 해운조합에서 독립시켜 해양 교통 안전 전문 기관으로 이관하는 해운법 개정안이 최규성 의원 등에 의해 발의되었으나 해수부의 반대로 법안소위에서 폐기되고 말았다. 세월호 특조위가 재개되면 이처럼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던 두 차례의 입법 시도가 좌절된 경위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정부가 내항 여객선에 대해 ISM Code를 면제해주기로 한 결정의 근거는 운항 관리자 제도가 이미 잘 운영되고 있으니 이중 규제가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업계는 초기 입법 단계에서는 영세 업체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니 시행 시기를 늦춰달라고 했다가 막상 2003년부터 시행하기로 입법이 되고 나자 전략을 바꾸어 이중 규제 논리를 폈고, 정부도 이 논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2011년에도 정부는 동일한 논리로 법 개정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운항 관리자 제도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운항 관리자가 해운조합에 의해 고용되어 봉급을 받고 감독을 받다 보니 안전 규제 점검을 성실히 하려는 운항 관리자는 오히려 질책을 받고 인사에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차라리 운항 관리자 제도가 없었다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왜냐면 운항 관리자가 하는 일이라곤 멀리서 망원경으로 만재흘수선(안전 규정상 최대 적재량을 실었을 때 해수면과 맞닿는 선)이 수면 위에 보이는지 확인하고 승선 인원수나 화물 적재량 등은 출항 후 선장이 전화로 보고하면 대신 기입해주는 것이었다.
세월호는 과적에도 불구하고 만재흘수선이 수면 위로 보이도록 평형수를 절반 이상 바다에 쏟아 부었다. 결국 배의 무게중심이 올라가서 세월호의 안전성과 복원력을 심각하게 손상시켰다. 차라리 운항 관리자가 없었다면, 만재흘수선이 수면 밑으로 약간 내려가더라도 배가 순식간에 전복할 정도로까지 무게중심을 올리지 않았을 것 아닌가?
문제는 운항 관리자를 왜 해운조합 소속으로 했느냐는 것이다. 여러 논객들이 이를 성급하게 신자유주의 민영화 또는 외주화의 증거로 단정했으나, 필자가 추적해 본 결과 이 제도는 1970년 남영호 사고 이후 박정희 정권이 처음 도입한 것이었다. 또 선박 안전 검사를 한국선급이라는 민간 업체에 위임한 것에 대해서도 신자유주의로 단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국선급은 5.16 쿠데타 직후인 1961년부터 일정한 선박의 안전 검사와 분류 권한을 법적으로 부여받았고 이런 권한이 1982년 여객선으로 확장되었다.
사업체의 등록, 검사 및 평가 작업, 회원사에 대한 감독과 제재 등 권한을 산업별 협회나 조합에 위임하는 조합주의적 규제 방식은 박정희-전두환의 국가 조합주의 체제 아래에서 폭넓게 행해졌다. 이러한 자율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부의 철저한 감독과 소비자 시민 단체 등의 감시가 제도화되고 위반 시나 사고 시에 기업 최고 경영자와 협회 임원에 대한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 그러나 점차 정부의 통제력은 약해지고 기업의 힘은 강해지고 소비자 시민 단체의 참여와 감시는 배제되고 기업 경영자와 협회 임원들은 사고가 나도 기껏해야 벌금 몇 푼만 내면 더 책임지지 않는 체제가 굳어졌다.
세월호 사고 후 관련 법 개정으로 운항 관리자 소속을 해운조합에서 선박안전관리공단으로 변경하고 ISM Code를 내항 여객선에도 형식적으로 적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선장과 선원 등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지우고 최고 경영자와 안전 관리 책임자의 책임 체계가 불명확하고 처벌 규정이 미약해 실효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안전 사회 실현 과제 보고서(초안)>, 91~98쪽) 이같이 실효성이 떨어지는 제도 개선의 뒤에는 규제 포획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한편, 청해진해운과 언딘과의 구난 계약을 주선한 채널로 드러난 해양구조협회가 구조, 구난의 민영화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협회 설립으로 인해 해경의 구조 책임이 면제되거나 이양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사고 시 실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해군이나 민간 해양 구조대와의 협조 체계 강화와는 별 상관없이 구난 업체 경영자와 해경 간부들이 주축이 된 법정 민간 단체를 왜 만들었을까이다. 업계로서는 로비 채널을 확보하고 해경은 간부들 퇴직 후 일자리를 만드는 동기가 서로 결합한 것이 아닐까?
다음으로 선박 연령 등 규제 완화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를 맹목적으로 신봉한 이명박 정부 하에서 선박 안전에 대한 보완 조치 없이 선박 연령이 기존의 최대 25년에서 30년까지 연장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이것이 청해진해운이 일본에서 선령 18년으로 은퇴한 세월호를 구입하는 배경이 된 점에서 참사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김영삼 정부 이래 역대 정부가 계속해서 규제 완화를 강조해왔음에도 박정희 시대로부터 국가의 보호 아래 독과점 체제를 유지해온 내항 여객선 산업에 대한 일종의 국가 공인 카르텔 체제는 해체하지 않은 점이다. 연안 여객선 항로 99개 중 85개가 독점 항로인데, 이중 보조 항로 26개를 제외하고는 왜 항로별 면허제를 유지하며 독점 체제를 보호해 주었는지, 국내 여객선 업계에서 가장 많은 사고를 내어 온 청해진해운에 왜 20년간이나 인천-제주 간 황금 노선을 독점 운영하도록 했는지는 신자유주의는커녕 시장 논리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세월호 특조위 안전소위의 중간 보고서는 여러 가지 주제를 방대하게 다루었지만, 연안 여객선의 항로별 면허를 통한 진입 규제의 경제적 타당성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고 있는데, 특조위 활동이 재개되면 이 문제도 다루어지길 기대한다.)
결국 진입 규제 철폐와 같이 기존 업계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규제 완화는 하지 않고 선령 규제 완화처럼 업계의 이익을 위한 규제 완화만 선별적으로 해온 것은 역대 정부의 규제 완화가 경제 논리와 상관없이 업계에 포획되어 업계의 기득권 보호 논리를 대변하는 관료 집단에 의해 왜곡되어 온 것을 입증한 것이다. 정부의 세월호 후속 조치에서도 보조 항로의 공영화와 상업적 항로에 대한 자유 경쟁 체제 도입, 한국해운조합의 독점 체제 해체 등 근본적인 개혁에 관한 논의는 들리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한국이 경이적인 경제 성장, 그것도 '공평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데에는 농지 개혁이 그 기초를 닦은 점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박정희의 공도 전혀 없지는 않음을 인정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경제 성장, 박정희의 공은 10%뿐이다")
그러나 국가 조합주의에 기초한 재벌 중심, 산업별 이익 독점과 기득권 보호의 박정희 체제가 장기적으로 미친 폐해도 간과하면 안 된다. 재벌 중심 성장의 한계가 1997년 외환 위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으나 이에 대한 개혁이 미완에 그쳐 재벌에 의한 국가 포획, 여러 산업 부문에 아직도 잔존하는 정경 유착의 기득권 보호와 규제 포획이 지속되고 있다. (☞관련 기사 : <동아시아 부패의 기원> 펴낸 유종성 교수)
최근 삼성의 '갤럭시 노트 7' 사태에서 정부 당국의 대응을 보면 규제 기관이 피규제자에게 쩔쩔 매며 따라가는 모습에서 재벌에 의한 포획을 여실히 보여준다. 또, ISM Code 적용 무산이나 선령 규제 완화와 같은 조치가 있을 때마다 이를 뒷받침하는 데 동원된 연구 용역은 일부 전문가와 학자마저도 포획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관피아와 규제 포획의 제도화를 낳은 연원을 추적하다 보니 박정희 시대의 국가 조합주의와 관치 경제에서 유래하며, 그 유산이 민주화 이후 여러 정권을 거친 지금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정부의 재분배 기능은 물론 시장 실패에 대한 교정 기능마저도 부인하거나 최소화할 것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 만능주의의 폐해도 경계해야 하지만, 정경 유착의 상징인 전경련의 해체와 독점적 산업별 협회(조합)의 다원화, 경쟁 제한적 진입 규제의 철폐를 비롯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세우기 위한 자유주의적 개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신자유주의와 박정희식 관치 경제, 규제 포획과 국가 포획이 교묘하게 결합된 우리나라의 문제를 하나의 잣대만 가지고 단순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되며, 실증적 분석에 입각한 대안 마련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최근 온 국민을 분노하게 하는 박근혜-최태민 일가의 40년에 걸친 국정 농단과 권력형 부패를 가능하게 한 토대도 박정희식 관치 경제와 정경 유착의 제도화에 있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 지원을 맞바꾼 다음에 국가 예산과 인사권 등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해먹을 대로 해먹을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체제로부터 확립된 관치 경제 인프라가 아직도 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조속한 퇴진 못지않게 이러한 전근대적 제도와 관행을 끊는 철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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