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넘어가는 길목, 끼니라도 잘 챙기자

[살림이야기] 구기자호두밥·배추김치·간장꽃게찜·견과류제피무침

가을빛의 쓸쓸함을 견디게 하는 끼니

나락이 농부의 창고로 들어가면 황금빛 찬란하던 들판은 빛을 잃는다. 황량해진 들판을 바라보자니 같이 쓸쓸해져 옷이라도 여미게 된다. 산자락에 피었던 쑥부쟁이나 산국 들이 지고 단풍도 사라져 이제 정말 별수 없이 겨울이 코앞인 걸 실감한다.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대기는 더 건조해지고 사람들은 감기에 쉽게 노출된다. 이맘때면 올겨울엔 감기를 멀리해야지, 콧물 한 방울 안 흘리고 살아야지, 기침 따윈 모른다며 다짐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일인가. 의사도 아니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의 끼니를 잘 챙기는 것밖에 없다. 밥 하나만 잘 챙겨 먹어도 건강하게 지낼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류관희

건강함과 가을빛이 오롯이 담기는 구기자호두밥

지리산 뱀사골 우리 마을 웬만한 집엔 호두나무가 한두 그루씩 있다. 마을 어른들은 가을에 거둔 호두를 잘 말려 두었다가 정월 대보름에 부럼을 깨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신다. 나는 호두를 구기자와 함께 밥에 놓아먹는 맛에 빠져 가끔 해 먹는데, 의외로 맛이 좋고 씹는 맛도 좋아 먹는 재미도 있다. 깔끔하고 연한 색 그릇에 구기자호두밥을 퍼 담으면 마치 가을이 그곳에 들어앉은 것 같다.

건강한 노인은 아무나 되지 않는다. 건강하게 늙는다는 건 굉장한 축복이다. 불로장생이야 바라지 않지만, 나는 적어도 자식에게 짐이 되는 노인은 되고 싶지 않다. 건강한 노인이 되려면 미리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 제일은 제때, 제대로 된 밥을 먹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늘 열심히, 정성 들여 밥을 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구기자호두밥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서 허약해지기 쉬운 근육과 뼈의 건강에 도움이 되니 더 좋다. 기억력 저하를 늦추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에 더해 맛도 좋으니 이웃에 권할 만하다.

구기자호두밥

재료
쌀 2컵, 호두 살 1/2컵, 구기자 20g, 구기자 우린 물 2컵, 들기름 1큰술, 간장 1작은술

만드는 법
① 쌀을 씻어 30분간 불린다.
② 호두 살을 흐르는 물에 씻고 잘게 썬다.
③ 구기자는 깨끗하게 씻어 쌀을 불리는 동안 물 2.5컵을 부어 놓는다.
④ 구기자를 건져 놓는다.
⑤ 압력솥에 쌀을 넣고 썰어 놓은 호두 살과 불린 구기자를 넣는다.
⑥ 구기자 우린 물 2컵을 넣고 밥을 한다.

부자 같은 여유를 안기는 겨울 농사의 대표 김장 김치

초등학생 때 기억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이 김장 김치에 대한 것이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던 때고 다들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거의 모든 아이의 도시락 반찬이 김치와 멸치 볶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내 도시락 반찬도 날마다 그 흔한 김치로 때워졌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 김치가 맛있다고 계속 내 김치를 가져다 드셔서 나는 맨밥만 먹는 날이 계속되자, 결국 어머니가 김장 김치 한 항아리를 학교로 가져다 놓으시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어머니의 솜씨가 학교에 퍼져 다른 선생님들도 우리 김치를 얻어먹으려 하기도 했다. 덕분에 내 초등학교 생활이 좀 편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김치 담그는 일에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왔다. 어머니가 김치 담그는 모습을 대충 보고 자란 품으로 그 흉내를 내면서 담그자니, 간이 맞는지 맛이 있을지 늘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었다. 김장은 더욱 두려워서 엄두를 내기 어려웠지만 결혼하던 해부터 용기를 내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담가 왔다. 그러면서 아주 천천히 어머니의 김치를 내 나름으로 표준화하는 작업을 했다. 언제 담가도 낙제하지 않을 김치를 위해….

김치 담그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나뿐이겠는가.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에 젓갈이 김치 담그기에 기본이 되니, 딱 이 양념에 잘 절인 김치 재료들을 버무리면 누가 담가도 어지간한 맛이 나온다. 샐러드용 소스는 이리저리 만들어 먹으면서 김치를 담그기 위한 소스에 괜한 두려움을 가질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자주 해 먹지 않아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치도 다른 음식처럼 재료가 좋으면 별 양념 없이도 맛있게 담글 수 있다. 길이가 짧고 포기가 너무 크지 않은 배추로 골라 잘 절이면, 50점은 된다. 무도 너무 크지 않고 단단한 것이면 되는데 아래쪽이 위쪽보다 약간 더 통통하게 안정감 있는 것이 좋다. 조금씩 자주 담가 먹는 김치가 아니다 보니 더 맛있게 하려고 별스러운 재료를 더하기도 한다. 어머니는 늘 소의 잡뼈를 고아 그 곰국에 생새우를 넣고 김장을 하셨다. 익기 전엔 몰라도 익으면 김치가 시원하고 달달해진다. 무채로 만드는 김치 속은 넉넉히 넣는 편이었다. 거기에 채 썰다 남은 무 쪼가리를 배추 사이사이에 넣어 두었다 잘 익혀 먹으면 정말 시원하고 맛나다.

김치는 지역마다 집안마다 담그는 방법이나 재료가 조금씩 다르다. 특히 김장 김치는 더 그렇다. 무채 없이 속을 만들어 배추에 발라 담그는 호남 지역 김치가 있는가 하면, 육지 사람들이 들어가 살면서 많이 희석돼 버렸지만 아예 김장이라는 문화가 없는 제주도 김치도 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김장 김치를 좀 넉넉히 담가 두고 먹는다. 이웃과 나누고 전도 부치고 만두도 만들기 위해서다. 밥도 해 먹고 국도 끓이고 찌개도 해 먹기 위해서다. 두려움에 더해 번거롭기도 하고 힘도 들지만 김장 김치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늘 부자 같은 여유를 누리고 밥상을 차릴 수 있어서 김장 김치 담그기를 포기할 수 없다.

배추김치

재료
배추 2포기, 10% 소금물 2L, 웃소금 1/2컵
김치 속: 무 1개, 고춧가루 2컵, 쪽파·미나리·갓 각 50g, 대파 2뿌리, 양파 1개, 다진 마늘 1/2컵, 다진 생강 1/2큰술, 새우젓 1/2컵, 멸치액젓 1/3컵, 생새우 100g, 육수 4컵, 배즙 1컵

만드는 법
① 배추는 겉껍질을 벗기고 다듬어 반으로 가른 뒤 뿌리 쪽에 칼집을 넣는다.
② 배추를 절인다.
- 농도 10%의 소금물을 만든다.
- 소금물에 배추를 담갔다가 건져 그릇에 담고 두꺼운 줄기 쪽에 웃소금을 얹어 차곡차곡 쌓아 절인다.
- 5~6시간 뒤 배추의 위아래를 바꾸어 다시 5~6시간 절인다.
③ 무는 깨끗이 씻어 2/3는 채를 썰고 1/3은 큼직하게 썬다.
④ 대파는 얇게 어슷썰기 한다.
⑤ 쪽파와 미나리, 갓은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3~4cm 길이로 썬다.
⑥ 양파, 마늘, 생강, 생새우는 육수와 함께 갈아 둔다.
⑦ 채 썬 무에 고춧가루 1/4을 넣고 버무려 물을 들인다.
⑧ 위의 재료(④ ⑤ ⑥ ⑦)와 남은 고춧가루를 한데 잘 섞어 불리며 숙성시킨다.
⑨ 절인 배추를 깨끗한 물에 3~4번 헹군 뒤 채반에 건져 1~2시간 물기를 뺀다.
⑩ 배추 바깥쪽 잎부터 들춰 가며 골고루 속을 넣는다.
⑪ 겉잎으로 배추를 잘 싸서 속이 하늘을 보게 통에 꼭꼭 눌러 담는다.
⑫ 우거지로 위를 덮고 소금을 뿌린 뒤 뚜껑을 덮는다.
⑬ 하루나 이틀 정도 상온에서 숙성시킨 뒤 냉장고에 넣어 두고 숙성시켜 먹는다.

최소한의 양념으로 내는 최고의 가을 맛 간장게찜

내가 나고 자란 강원도 춘천은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이고 바다는 먼 곳이라 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거라곤 짜디짠 고등어자반 정도였다. 달걀조차 쉽게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고등어자반을 얻어먹는 날은 식구들 생일 같은 아주 특별한 날뿐이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제대로 조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채로 살았다.

그래서 더 그렇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게 음식은 요리라는 말이 풍기는 뭔가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조리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음식이다. 내가 먹었던 최고의 게는 아무런 기술이 가해지지 않은 채 양념 하나 없이 찌기만 한 것이었다. 오래전 전남 진도에 갔다가 낡은 양은 찜통에 꽃게를 통째로 넣고 쪄서 발라먹었던 그 살의 탄력 있고 싱싱한 단맛을 넘어서는 게 요리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리산 골짜기에서는 신선도 좋은 게를 만나기 쉽지 않다. 그러므로 그냥 쪄서 먹을 수 있는 게를 맛보는 것도 쉽지 않다. 적당히 신선한 게를 만나면 양념을 고루 쓰는 음식을 만들지만, 정말로 신선한 게를 만나면 최소한의 양념으로 조리한다. 바로 간장게찜이다.

모든 음식의 맛은 조리하는 방법이나 사람의 기술에 비례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음식이 간장게찜이다. 깨끗이 닦아 네 등분한 게를 큰 용기에 차곡차곡 담고 간장 양념을 얹어 찌면 끝이지만 그 맛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손님이라도 오는 날이라면, 특별한 음식이 먹고 싶은 가을날이라면 이만한 음식이 또 없을 것이다.

간장꽃게찜

재료
꽃게 4마리, 매운 고추 3개(기호에 따라 새우를 함께 넣어도 좋다.)
양념장: 맛간장 4큰술, 청주 2큰술, 물 6큰술, 다진 대파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볶은 참깨 1큰술, 후추 약간

만드는 법
① 꽃게의 배 쪽 딱지를 떼어 내고 솔로 문지르면서 깨끗이 씻는다.
② 꽃게의 뚜껑을 열고 허파의 잔 수염을 깨끗이 제거한다.
③ 손질한 꽃게를 4등분해 냄비에 담는다.
④ 양념장 재료를 모두 그릇에 담고 잘 섞어 꽃게 위로 고루 얹는다.
⑤ 냄비에 불을 켜고 끓기 시작하면 10분간 더 끓인다.
⑥ 어슷하게 썬 매운 고추를 넣고 불을 끈 뒤 여열로 익힌다.
⑦ 꽃게와 양념을 고루 섞고 국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낸다.

지리산 향신료 제피로 매운맛과 향을 더한 견과류무침

모든 음식은 냄새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에 먹던 음식의 냄새는 머릿속에 각인되어 나이가 들어도 잊히지 않고 남아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그리고 그 냄새를 지닌 음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우리를 절절하게 한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부터 여러 음식 냄새를 기억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음식을 먹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서양의 허브나 향신료에 빠진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곳곳에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써 온 질 좋고 독특한 허브나 향신료가 있었다. 생강이 유입되기 전에 애용되던 생강나무가 그렇고, 중부 지방 사람들이 주로 즐기던 산초도 그렇다. 남부 지방, 특히 지리산 주변에서 다양한 요리에 쓰여 온 향신료로는 제피가 있다. 제피는 열매의 겉껍질을 가루로 낸 것이다. 각종 음식에 자주 쓰였으며, 고추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된장에 혼합해 매운맛을 낸 장을 천초장이라 하여 즐기기도 했다. 남부 지방에는 김치나 나물에 제피 가루를 넣어 그 향을 즐기는 음식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을은 견과류의 계절이다. 호두, 잣, 땅콩 등 견과류들을 고추장과 버무려 밥상에 올리면 하루 필요한 양의 견과류를 일부러 찾아 먹는 불편함 없이 먹을 수 있어 좋다. 거기에 제피를 더하면 고추장과는 또 다른 매운맛과 향이 더해져 향미가 풍성해진다. 움츠러드는 몸에 활기를 더할 뿐 아니라 폐나 인후의 건강도 책임지는 반찬이 된다.

견과류제피무침

재료
호두 50g, 땅콩 30g, 잣 20g, 통깨 약간
무침 양념: 물 2큰술, 제피 1/2작은술, 고추장 1큰술, 들기름 2큰술, 조청 2큰술

만드는 법
① 견과류는 잡티를 없앤 뒤 마른 프라이팬에 넣고 약한 불로 굴려가면서 속까지 골고루 구워 준다.
② 호두는 땅콩과 잣 크기로 자른다.
③ 무침 양념 재료를 둥근 팬에 넣고 잘 섞는다.
④ 무침 양념 팬을 불에 올리고 바글바글 끓으면 불을 끈다.
⑤ 끓인 양념에 견과류를 무치고 통깨를 넉넉히 뿌려 그릇에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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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이야기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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