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저주, 어쩌면 <부산행>이 현실로…

[김경욱의 데자뷔] 영화 <부산행>, 재난 영화의 사회학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재난이 현재 진행 중이다. 올해 유일한 천만 관객 영화로, 관객들에게 가장 각광을 받은 연상호의 <부산행>(2016년)은 이 영화로부터 '재난의 현실'에 대한 증후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사회적 증후를 드러내는 매체로서, 내부의 충동을 외부로 투사하고 관찰되지 않는 것을 파악하게 한다'는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의 말에 딱 맞는 사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부산행>의 장르를 보면, 재난 영화와 공포 영화가 결합한 혼합 장르다. 할리우드에서 재난 영화가 인기를 끌었던 시기는 197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였다. 비행기가 폭파 위험에 처하는 <에어포트>(1970년, 조지 시톤·헨리 헤서웨이 감독), 세계 최대의 빌딩 개관 기념식 날 화재가 발생하는 <타워링>(1974년, 존 길러민·어윈 알렌 감독), 초호화 여객선이 난파되는 <포세이돈 어드벤처>(1972년, 로널드 님 감독), LA가 지진으로 초토화되는 <대지진>(1974년, 마르 롭스 감독) 같은 영화가 등장해 흥행에 성공했다. 이 재난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의 경제 불황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정당성의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영웅적인 인물이 나타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생존자를 이끌고 문제를 해결한다.

ⓒ레드피터
<부산행>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승객 전원이 생존 위기에 처한다는 점에서 재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기의 원인이 지진이나 화재 같은 사고가 아니라 공포 영화의 괴물, '좀비'다. 좀비 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조지 로메로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1978년)에서 주요 공간을 거대한 쇼핑몰로 설정하고 '좀비'가 자본주의 소비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본모습이라고 은유했다. 좀비의 가장 큰 특징은 끊임없이 먹어치우는 것인데, 그들은 아무리 먹어도 결코 허기를 채우지 못한다. 새로운 상품의 유혹에 시달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 역시 아무리 소비해도 결코 욕망을 채울 수 없다. 좀비에게 물리면 곧 좀비가 되는 것처럼, 소비 사회의 욕망은 쉽게 전염된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좀비 영화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조지 로메로는 "현존하는 모든 재난이 곧 좀비"이며 "좀비 영화는 사람들이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부산행>에서, 주인공 김석우는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주인공과는 달리 자신과 딸 수안의 생존에만 신경을 쓴다. 블루칼라로 보이는 또 다른 인물 상화는 어느 정도 영웅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으나, 임신한 아내를 지키는데 골몰한다. 천리마고속의 상무 용석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가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좀비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존에만 매달리는 그들을 보면, 생존보다는 좀비가 되지 않으려고 투쟁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좀비는 소비 사회의 소비자가 아니라, '1대 99 사회'(또는 '헬조선')의 99%(증권사 펀드매니저인 석우의 표현에 따르면, '개미들')를 은유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처음 봤을 때 이상했던 인길과 종길 자매를 둘러싼 에피소드와 좀비가 된 용석 장면을 설명할 수 있다. 종길은 너무나 착했던 언니 인길이 좀비가 되자, '자기 살 궁리는 하지 않고 퍼주기만 하면서 힘들게 살았는데…'라며 절망한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승객들에게 분노를 느끼면서 유리창 너머로 좀비가 된 언니의 얼굴을 바라본다. 문득 헬조선의 삶과 좀비 사이에 차이가 없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인지, 그녀는 문을 열어 자신과 같이 있던 승객들을 좀비로 만들어버린다.

반면에 용석은 생존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인지 좀비가 되어가고 있는데도 자각하지 못한다. 그는 "아저씨, 무서워요. 집에 좀 데려다 주세요. 엄마가 집에서 기다려요"라고 말하며, 어린아이처럼 울먹인다. 99%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그의 피로가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 퇴행으로 표출된 것 같다.

석우는 재난의 원인이 유선바이오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부하 김 대리는 "그 회사 주식의 작전세력이었던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으므로 책임이 없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석우는 "김 대리 잘못이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다음 장면에서 온통 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보고 속죄하듯 피묻은 손을 씻으며 눈물을 흘린다([장면1]). 석우는 딸을 살리려고 악전고투하다 결국 좀비가 되기 직전에 자살을 선택한다.

▲ [장면 1]. ⓒ레드피터

이런 설정은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부산행>의 프리퀄(prequel)로 알려진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2016년)에서는 포주가 아버지 행세를 하며 자신에게서 도망친 여주인공을 찾아다니고, <사이비>(2013년)에서는 걸핏하면 딸을 폭행하는 아버지가 나온다. 애니메이션에서 영화로 넘어오면서 아버지가 딸을 위해 희생하는 설정과 함께 신파까지 가미된다.

이전 장면에서 상화는 석우에게 "아빠들은 욕먹고 인정 못 받고 해도 그냥 희생하고 사는 거"라고 말한다. 이런 식의 대사들과 신파의 장면들은 오로지 흥행을 위한 장치로 도입되었겠지만, 손발이 오그라드는 어색함을 연출한다. 울고 싶은 관객에게 영화를 매개로 해서 울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주는 것이 나쁜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파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태를 이해하거나, 성찰하는 대신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모든 걸 쓸어가 버리는 문제가 있다. 좀비가 된 용석이 어린아이로 퇴행할 때 그가 저지른 온갖 패악을 잊어버리고 문득 동정을 느끼게 되는 식이다.

결국 남편과 아빠와 남자 노숙자의 희생을 통해 임산부 성경과 어린 수안은 살아남는다. 부산은 초기 방어에 성공했다는 정보와 함께 두 사람이 도착한 공간의 이미지는 한국 전쟁을 떠올리게 만든다([장면 2]). 그들이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때 군인들이 발사 준비를 하고 있다([장면 3]).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면, 그들에게는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까? 수안은 '알로하오애'를 부르며 자신이 좀비가 아니라고 증명한다. 그 노래는 수안이 유치원 발표회에서 아빠에게 들려주려고 연습한 것이다. 하지만 바쁜 아빠는 그날 참석하지 못했다. 아빠가 듣지 못한 수안의 노래를 아이러니하게도 총구를 겨눈 군인들이 듣는다. 그들은 아빠처럼 아이를 돌봐주고 치유해 줄 수 있을까? 온갖 재난을 겪은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는 생존한 두 사람의 다음 이야기가 아닐까?

▲ [장면 2]. ⓒ레드피터

▲ [장면 3]. ⓒ레드피터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전 국민이 좀비가 될 위험에 처했는데도, 정부는 시종일관 문제의 원인을 "과격 시위 때문"이라고 발표하는 것이다. 안전행정부 장관은 "정부의 발 빠른 대응으로 폭력 시위는 마무리되고 있으니, 악성 유언비어에 동요하지 마라"면서 "정부를 믿고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는 역량을 모을 때"라고 말한다. 그가 "국민 여러분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할 때 관객이 보는 이미지는 초토화되어가는 서울의 모습이다([장면 4]).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 몽타주에서 사태의 진상을 알고 있는 관객들에게 장관의 말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더욱 강화된다.

▲ [장면 4]. ⓒ레드피터

이런 설정은 정부의 무능력과 거짓말을 은근히 비꼬면서 관객들에게 작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보니,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게 된다. 시위대를 좀비로 취급하는 설정은 2008년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촛불 시위대를 극우 진영에서 '촛불 좀비'라고 부른 데서 온 것이다. 이 영화의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좀비 또는 시위대를 (분명 무자비하게) 제거해 나간다.

연상호가 무당도 아니고, 영화가 예언이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지금 이 재난 공포 영화의 설정이 현실이 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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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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