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을 즐기는 농사를 꿈꾸다

[귀농통문] 결과에 연연하면, 사람·자연 모두 앓아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어렵다. 8년간 도심에서 텃밭을 일궈오면서 참으로 많은 일을 겪어왔지만 이런 날벼락은 또 처음이다. 작년 가을에 새로 얻은 600평짜리 농장에 우리는 마늘과 양파 공동체를 꾸려서 120평 농사를 지어놓았다. 마늘과 양파 공동체는 6년간 희로애락을 함께 해오면서 농사를 지어온 선수들로 그 내공이 녹록지 않다.

10월 하순에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지을 때만 해도 우린 풍작을 꿈꾸며 신바람을 냈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병에 대비해서 밭을 만들 때는 목초액도 뿌려주었다. 다들 마늘보다는 양파를 더 좋아해서 80평 밭에 양파 모종 7500개를 심었고, 50평 밭에는 마늘 5500쪽을 심었다. 혹한에 일부 유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9명이 나눠 가질 생각을 하면 적잖은 양이다. 그간 우리는 마늘과 양파 농사를 실패한 적이 없다. 해마다 풍작이었고 수확물을 나눌 때면 다들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승용차에 마늘과 양파를 한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가서 베란다에 널어놓으면 그야말로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주변에 인심도 쓰고 장아찌나 피클도 담가서 두고두고 먹는다.

11월 초순에 우리는 왕겨와 낙엽을 두껍게 덮어서 보온작업을 해준 뒤 행여 낙엽이 바람에 날릴세라 한랭사(가림망)까지 씌워주었다.

감자를 심는 3월 하순에 우리는 마늘과 양파밭에 모여서 한랭사를 벗겨주고 겨우내 모아두었던 오줌을 희석해서 웃거름을 주었다. 한랭사를 벗겨 내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늘과 양파가 유실된 것 거의 없이 겨울을 참 잘 견뎠다. 그 모습을 보니 수확에 대한 기대가 한층 높아졌다.

▲ 공동체 회원들이 왕겨를 덮는 풍경. ⓒ김한수

▲ 낙엽을 덮어주면 기분이 참 좋다. ⓒ김한수

4월이 되자 마늘과 양파는 빠른 속도로 자라났고, 우리는 하순에 다시 한 번 웃거름을 주었다. 늠름하게 자란 마늘과 양파를 바라보며 우리는 수확 때 지게차를 부르네 마네 농담을 주고받으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그런데 5월 초 마늘과 양파밭을 둘러보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가물지도 않은데 마늘잎 끝이 유난히 노랗게 시들어가면서 잎이 축축 쳐졌다. 수확 시기가 되어야 자빠지는 양파도 잎끝이 노랗게 타들어 가면서 대가 푹 꺾였다.

혼자서 농기구만으로 300평을 일구느라 정신이 없던 탓에 마늘과 양파밭 앞을 건성으로 지나쳤었는데 자세히 보니 밭이 드문드문 비었다. 혹시나 하고 마늘과 양파를 뽑아보았더니 아뿔싸, 뿌리 윗부분에 구더기가 득실득실했다. 고자리파리병이 온 것이다.

그 즉시 나는 부리나케 비상소집령을 내렸고, 다들 헐레벌떡 한달음에 달려왔다. 고자리파리병이 무섭긴 하지만 그렇다고 농약을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리는 고심 끝에 목초액을 300 대 1로 진하게 희석해서 관주(물 대기)를 해주기로 했다. 목초액을 뿌리고 다니면서 우리는 제발 무사히 자라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수확을 떠나서 오늘내일 하면서 시름시름 앓고 있는 마늘과 양파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작물이 병을 앓으면 꼭 내 아이가 아픈 것만 같다. 비상처치를 끝낸 우리는 너무 속이 상한 나머지 늦도록 술을 마셨다.

다음날 기도하는 마음으로 밭에 나가보니 목초액을 친 보람도 없이 상당히 많은 양의 마늘과 양파가 녹아버렸다. 도대체 피해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5월 하순이 되자 20퍼센트의 마늘과 양파가 간신히 살아남았다. 공동체 농사를 진두지휘했던 나로서는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회원들은 괜찮다고, 농사가 어디 인력으로 되는 거냐고 위로를 해주었지만 표정이 쓸쓸하기는 다들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횅한 마늘과 양파밭을 쳐다보며 원인분석을 해보았다. 가장 의심이 가는 건 발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농협 퇴비였다. 그러나 농협 퇴비는 해마다 써왔기에 뭔가 또 다른 요인을 찾아야 했다. 우리는 작년 초겨울까지 이어졌던 이상고온 현상에 주목했다. 결국 우리는 미숙성 퇴비와 이상고온이 만나 마늘과 양파밭에 병이 온 것으로 잠정 결론을 냈다.

그리곤 앞으로는 두 배 이상 비싸도 흙살림 퇴비를 쓰기로 합의를 봤다. 1등급 농협 퇴비는 한 포에 2200원인데 흙살림 퇴비는 5000원이다. 전업농에게는 선뜻 엄두가 안 날 일이지만 도시농부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한 사람이 1년에 10포를 쓴다고 가정하면 3만 원 남짓한 돈만 더 쓰면 된다.

마침내 6월, 우리는 마늘과 양파를 수확했다. 수확한 마늘과 양파를 나눠보니 한 사람 몫이 마늘 한 접, 양파 100개 남짓이다. 적잖이 실망스러울 텐데도 다들 귀한 마늘과 양파 아껴먹어야겠다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사람들의 낙천적인 모습이 적잖은 위로가 된다. 한 번쯤 한숨을 쉴 법도 한데, 모두 그냥 사람 좋게 허허 웃어넘긴다. 그 모습이 참 고맙다.

▲ 널어놓은 마늘이 일곱 접이나 된다. 이 정도 양파면 주변에 나눔을 하고도 이듬해 봄까지 먹는다. ⓒ김한수

ⓒ김한수

우리는 농사는 열심히 짓되 결과는 하늘에 맡기자는 생각을 하면서 이제껏 텃밭을 일궈왔다. 우리에게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 낙엽으로 멀칭(바닥 덮기)을 하고, 화학비료 대신 열심히 오줌을 모으고, 화학농약이 아닌 천연 농약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온 것도 과정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욕심을 버리고 과정을 즐기면서 농사를 짓다 보면 자연은 반드시 보답한다. 그러나 과정이 아닌 결과에 연연하다 보면 사람과 자연이 함께 병을 앓는다.

지게차 운운했던 농담이 무색하게 단출한 수확물을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공동체 회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다들 의외로 발걸음이 가볍다. 첫 실패가 꽤 쓰라릴 텐데도 무슨 일 있었어, 하는 투로 의연함을 잃지 않는 그 모습이 꽤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흉작 앞에서 완전히 마음을 비우기는 어렵지만, 그 상실감을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결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우직하게 스스로 다잡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아름답지 않을까. 어쩌면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해답은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 한 이랑에 600개의 모종을 심었는데 한 소쿠리도 나오질 않는다. 밭에서 수확한 마늘을 늘어놓으니 한숨밖에 나오질 않는다. ⓒ김한수

ⓒ김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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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통문

귀농통문은 1996년부터 발행되어 2017년 10월 현재 83호까지 발행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계간지입니다. 귀농과 생태적 삶을 위한 시대적 고민이 담긴 글, 귀농을 준비하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귀농일기, 농사∙적정기술∙집짓기 등 농촌생활을 위해 익혀야 할 기술 등 귀농본부의 가치와 지향점이 고스란히 담긴 따뜻한 글모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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