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이하 현지 시각) 오스트리아와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아일랜드, 브라질, 나이지리아 등 6개국은 "핵무기 전량 폐기를 위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핵무기 보유 금지를 논의하는 틀에 관한 회의를 2017년 말까지 총 20일 동안 두 차례 뉴욕 유엔 본부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유엔총회에 제출했다.
이 결의안은 지난 8월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실무회의가 채택한 권고안을 토대로 제출됐으며, 군축을 담당하는 유엔총회 제1위원회 논의를 거쳐 이달 하순 표결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난 1996년 9월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CTBT는 서명한 188개국 가운데 166개국이 비준했으나 미국, 중국, 이스라엘, 이란, 이집트,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8개국이 비준을 하지 않아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20년째 표류하고 있는 CTBT의 발효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천명했으나 공화당의 반대로 CTBT 비준을 끝내 하지 못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9월 20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을 비판하며 "앞으로 어떤 나라든 결코 핵실험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결의안에 힘을 실었다. 북한 핵실험을 이유로 결의안의 정당성을 강조해 공화당의 반발을 돌파하려는 발언이다.
이처럼 결의안은 북한 핵실험의 국제적 명분을 제약하는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다. 우리 정부도 이런 이유로 CTBT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며 북한의 서명과 비준을 압박해왔다.
그러나 결의안이 통과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CTBT 발효까지는 갈 길이 더 멀다. 핵보유국들, 특히 미국 공화당 등 매파들의 거센 반발 탓이다. 공화당은 CTBT에 힘을 싣고 이를 비준하면 핵 실험을 할 수 있는 미국의 주권적 권리를 제약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뿐만 아니라 미국 국무부 일부에서도 위 결의안에 반대한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에이피>통신에 따르면 미국 국무부 아니타 프리드 군축국 수석부차관보는 지난 9월 27일 워싱턴에서 CSIS가 주관한 포럼에 패널로 참석해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핵무기) 금지를 논의하는 회의를 추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며 "간단히 말해서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그는 6개 비핵 국가들의 결의안 제출이 "궁극적으로는" 군축을 위한 광범위하고 구체적인 노력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역시 지난 9월 26일 핵 군축과 관련한 회의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의를 통해 핵 무기 실험과 보유를 금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통신은 익명을 요구한 제네바 주재 한 외교관을 통해 해당 결의안에 찬성하는 국가나 지지하는 국가들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핵 보유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외교관은 통신에 "프랑스는 아프리카 국가들에게, 영국은 미국과 함께 미국의 '핵 우산' 아래에 있는 나토(NATO) 국가들 중 잠재적으로 위 결의안을 지지하는 국가들에 집중적인 로비를 펼치고 있다"며 "핵 보유 국가들끼리 '분업'을 통해 특정 지역의 국가들에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핵보유국들의 이중잣대는 북한이 CTBT 서명과 비준을 거부하는 명분이 되고 있다. 북한은 미국 등 핵보유국들이 자기들의 핵실험 권리는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들의 핵실험을 비난한다고 반발해왔다. '전세계 비핵화'에 눈 감은 미국이 주장하는 '북한 비핵화'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유엔 제네바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는 통신에 이번 결의안 제출은 유엔 차원에서 핵 무기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드는데 '큰 발걸음'을 뗀 것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핵 보유국들이 결의안을 좌절시키기 위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아내기가 힘들다면서 향후 상황을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