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으로 오라? 박근혜, 이제 '카드'가 없다

[현안 진단] 전략없는 핵 대신 인권 문제로 타깃 변경

국군의 날 기념사에 담긴 분명한 메시지와 은폐된 신호

지난 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사는 최근 북한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과 의도를 외교적 수사의 애매함 없이 과감하고 직설적으로 드러냈다.

대통령은 김정은 정권에게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과시해서 정권 안정을 이루겠다는 착각을 버리라고 촉구하고, 북한 주민에게는 참혹한 인권 탄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는 대한민국으로 올 것을 권고했다. 그러면서 우리 내부를 향해서는 북한 내 우발 사태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안보에 대해서는 모든 국민이 일치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메시지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느냐 또는 실현 가능하냐는 논란과는 별개로 대통령 발언으로는 다소 수위를 넘는 파격성과 단순한 논리가 주는 명쾌함 때문에 그동안 북핵 문제를 다루는 우리 정부의 대응에 답답해하고 좌절감을 갖게 된 사람들의 속을 일시적으로 시원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개운치 않은 점이 많다. 오히려 생각할수록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대통령의 초강경 대북 메시지 속에는 북핵 개발 저지 노력이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나오는 무기력과 좌절감이 숨어 있다. 또한 아무리 대북 제재 강도를 높여도 중국의 국익을 무시하면서까지 북한의 숨통을 막을 수 없는 점도 명백하다. 북한과의 협상 재개는 이미 시기를 놓쳤고 새로운 협상을 위해 준비된 협상 카드도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대북 제재 강화나 협상 개시를 위해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대북 제재 강화는 중국 손에, 대북 협상 카드는 미국 손에 있을 뿐이다. 이 모두 남북 관계의 경색과 파탄이 불러온 결과이다.

다소 파격적 내용을 담은 이번 기념사는 북한 비핵화를 위해 이제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북한 주민이 굶주림과 폭압 정치를 박차고 대량으로 탈북해 나오는 상황을 고대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사드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사드가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북한 핵무장을 전제로 하는 대응책일 뿐이지 비핵화를 위한 해결책은 아닌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 비핵화 정책을 포기한 정부로 기록될 수 있다는 걱정과 우려를 떨칠 수 없다.

▲ 지난 1일 충남 계룡시 계룡대 대연병장에서 열린 건군 제68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전략적 사고의 빈곤과 안보 카드의 남용

이번 기념사가 대통령 발언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우선 전략적 사고에 기반을 둔다. 남북 관계에서 최종 정책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생기는 부작용 등은 문제 삼고 싶지 않다.

우리는 어떠한 계산에 따르더라도 북한 핵을 용인할 수 없다. 말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는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 비핵화를 이루어내야만 한다. 대통령이 언급한 '남으로 오라'는 메시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드러낸다.

첫째, 북한을 핵 포기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핵에 더욱 매달리게 해서 핵 보유 쪽으로 몰아가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이다. 기념사도 언급했듯이 김정은 정권은 체제 불안정이라는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핵 개발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외부 위협이 커질수록, 그리고 체제 불안정을 느낄수록 핵 개발에 매달리게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민생 챙기기나 두만강의 수해 복구보다 체제 안보를 위한 핵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남으로 오라'는 메시지는 실현 가능성과는 상관없이 북한 주민의 동요를 도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 정권으로서는 공공연한 체제 위협을 이유로 핵 개발에 더욱 매진해야 하고, 소위 '인권 책동'에 맞서 주민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심리와 명분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둘째, 북한 비핵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 옵션의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한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는 과거의 양상과는 완전히 다른 국면에 처해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정책 옵션도 새롭고 창의적 차원에서 모색해야 한다. 대북 제재가 되었든 협상이 되었든 과거의 제재나 협상이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를 모방하여 반복하는 것은 소용없다고 본다. 제재도 파격적이어야 하며 협상도 파격적이어야 할 것이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 9월 북한의 5차 핵 실험에 따른 강도 높은 대북 제재를 준비하고 있으나 그와 동시에 각국의 전문가 사이에서 핵 협상 재개 요구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일본의 북한 전문가 중에는 핵 동결을 목표로 협상을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제재 수위를 높이되 협상 재개를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정세 변화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융통성 없는 메시지를 내놓는다면 상황이 바뀔 때, 우리 정부의 대응을 대단히 어렵게 만들 소지가 크다. 아마도 협상의 주도는커녕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할 불리한 위치를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대통령의 이러한 초강경 대북 메시지가 상당한 전략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기는 하되 국내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여소야대 정치 지형과 정권 말기 레임덕을 우려하여 안보 이슈로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것이라거나, 강경한 대북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어 지지자를 규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러한 분석이 헛된 추론에 머무르길 바라지만 이런 논란 자체가 결국 국론 분열을 자초하는 빌미가 된다는 지적을 사시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 핵 문제에서 인권 문제로 타깃을 변경하는가

북한 핵 개발 저지를 위한 여러 대안들이 한계를 보이면서 북한 인권 문제가 핵 문제를 제치고 최고 현안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인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그에 대한 국제 형사법 처벌도 논의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가 핵 문제보다 풀기 어려운 매듭들을 여기저기 만들고 있는 중이다.

북핵 협상이 재개되더라도 타협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가시적 성과는 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기간 중에 핵 문제보다 인권 문제의 매듭을 푸는 일이 전면에 부상할 전망이다.

우리 국회가 제정한 북한 인권법이 9월 초 발효되었다. 이제 정부 차원에서 관련 정책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국군의 날 기념사가 대북 정책 중점 타깃을 북핵에서 인권 문제로 바꾸는 정지작업을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 정책은 그야말로 치밀한 전략적 고려하에 시행되어 북한 비핵화 정책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인권 문제의 강조가 북한 비핵화에 대한 무대책을 은폐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입장은 본 '현안 진단'에서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세 가지 원칙이 반드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현실을 이해하는 기반위에서, 북한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는 대전제 아래에서 개선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통일 과정에서나 통일 후에나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핵심적 과제이다. 그러나 북한의 당국과 주민을 분리하여 북한 주민의 탈북이 곧 인권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비트는 논리와 그 의도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진정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에 관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들에게 목숨을 걸고 '남으로 오라'고 하기 전에 먼저 생존의 기로에 선 두만강 지역 수재민에게 따뜻한 손길을 보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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