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단식, 국감 거부…與, 출구 없는 '강경 투쟁'

'강성 친박 지도부'에서 예견된 일…"의원 단식은 특권"이라던 이정현, 무기한 단식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해임 건의안 통과에 반발한 새누리당이 정세균 국회의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출구' 없는 초강경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온건파의 목소리는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당내 분위기는 '격앙' 그 자체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무기한 단식 농성'을 선포한 데 이어, 국회의 1년 의사 일정 중 가장 핵심이라 할 국정 감사까지 집단 '보이콧(불참)' 하고 있다. 5차 북한 핵 실험과 연쇄 지진,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등으로 '국가 비상 사태'라고 야단을 부렸던 여당이, 정작 '자존심 싸움'에 매달리느라 종착지도 불분명한 강경 투쟁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새누리당은 25일 심야 긴급 의원총회, 26일 오전·오후 의원총회를 거치며 차츰 투쟁 수위를 높이는 모습을 보였다. 비록 아직까지 사전에 예고했던 정세균 의장 직권 남용 형사 고발과 국회 윤리위원회 회부가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대신 당 대표 무기한 단식 농성과 의원 전체 릴레이 1인 시위, '정세균 사퇴 관철 비상대책위원회'로의 체제 전환과 같은 카드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이정현 대표는 단식 농성 계획을 발표하며 "목숨을 바칠 각오를 했다"고 했다.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흠결도 없는 김 장관을 날치기 폭거로 생사람 잡았다"며 정 의장의 해임 건의안 본회의 상정을 '폭거'로 규정했다.

정 의장이 24일 해임 건의안 무기명 투표가 진행되던 당시 한 야당 의원에게 한 이른바 '맨입 발언'을 공개하며 공세 수위를 높이려고도 해봤으나, 이 또한 큰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정 의장이 당시 "세월호나 어버이연합 둘 중에 하나 내놓으라는데 안 내놔. 그래서 그냥 맨입으로는 안 되는 거지"라고 말한 것은 "의장이 야당과 작정해 불순한 정치 목적을 위해 생사람 김재수를 잡은 것이며 인격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정 의장 측은 이에 대해 "투표 도중 의장석을 찾은 의원에게 해임 건의안이 표결로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하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국정 감사 '보이콧' 전술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집권 여당이 국회의 본업과도 같은 행정부 감시 의무를 통째로 버려두었다는 비판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세균 의장은 이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 국정 감사 일정을 2~3일 늦출 것을 제안하며 새누리당에 한발 다가섰다. 여당 없는 국정 감사를 일단 방지해보자는 중재안으로, 이마저 새누리당이 거부하고 보이콧을 이어갈 경우 "비상시국을 외치던 여당이 무책임한 싸움을 계속한다"는 비판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은 국정 감사 현장에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미리 준비했던 국감 보도 자료는 배포하며 '이름 알리기'에는 적극 나서기도 했다. 심지어 강성 친박계 최고위원이자 이날 '정세균 사퇴 관철 비대위원장'을 맡게 된 조원진 의원도 '구직 급여 수급기간 내 재취업자는 31.9%에 불과'란 자료를 배포했다. 국정 감사 완전 보이콧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 외에도 하태경 신보라 유의동 홍철호 조훈현 이완영 의원 등이 국감 자료를 언론에 정상 배포했다.

이정현 대표의 무기한 단식 농성 돌입은 '정치적 해결 여지'를 닫아버리는 무리수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번 시작하면 특별한 명분이나 계기 없이는 해제하기 어려운 단식 농성의 특성에도, '백화점식 투쟁 전술'이 논의 및 발표되다 보니 신중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당내에서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 대표는 2년 전인 2014년 10월 31일 대정부 질문 때에는 국회의원의 단식 농성을 '특권'이라며 비판한 일이 있다. 이 대표는 당시 "우리 사회에서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집단이 국회의원"이라면서 "선거 제도가 정착된 나라 중 단식 투쟁을 하는 국회의원이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우리 국회의 특권이 시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26일 오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의결과 관련된 긴급 의원총회를 마치며 "더민주의 하수인 자처하는 정세균 물러나라" "의회주의 파괴하는 정세균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의 이 같은 대책 없는 대야 강경 투쟁은, 지난 8.9 전당 대회에서 강성 친박계를 중심으로 지도부가 구성됐을 때부터 예견됐던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내시'를 자처했던 이정현 의원이 당 대표가 되고, 조원진·이장우 의원 등 강성 친박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며 당내 다양한 목소리가 파묻힐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25일 진행된 심야 의원 총회에서 초선 박찬우 의원이 국감 보이콧에 반대 의견을 냈다가 야유를 받고 곧바로 제 발언을 철회했던 모습은 상징적이다. 박 의원은 당시 "국민들은 집권 여당의 보이콧 모습은 낯설다. 해야 할 일은 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걸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반면, 선명하고 강경한 '구호' 중심의 발언은 주목과 박수를 받았다. 초선의 김순례 의원은 "왜 야당은 이불을 갖다놓고 밤새우는데 우리는 못 하냐. 야당은 곡기 끊고 무한 투쟁을 하는데 새누리당은 금수저이기에 못 하냐"면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독재자들을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야당의 야만성, 짐승성, 독재성을 다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주 의원은 박 대통령이 해임 건의안을 거부한 것은 새누리당의 입장을 "존중"한 것이라면서 "이것도 하나의 승리"라는 궤변을 늘어놨다. 특별한 대야 투쟁 전략이나 전술은 제출되지 않고, 선수 불문 강경 발언들만이 경쟁적으로 쏟아지는 모습이다.

조원진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대위'는 지금부터는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7시 의원총회를 열어 정기적으로 전열을 정비하기로 했다. 비대위 추진본부장에는 3선의 김성태 의원이 지명됐다. 전날까지 몸져누웠던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로 돌아와 정 의장에 대한 "윤리위 제소도 금명간 제출하고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기한 국회법 개정안도 곧 제출할 것"이라면서 "사퇴가 관철될 때까지 새누리당의 투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 됐던 김재수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 감사장에 참석해 "국무위원으로서 성실하게 농정 현안을 해결하겠다"면서 자진 사퇴 요구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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