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박 대통령은 (국회의 해임)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음을 알려 드린다"며 "임명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장관에게 직무 능력과 무관하게 해임을 건의했다는 점,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은 모두 해소됐다는 점, 더구나 새누리당에서는 이번 해임 건의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요청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회가 좀 이상하게 끝났다"며 "비상 시국에, 해임 건의의 형식적 요건도 갖추지 않은 농식품부 장관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박근혜, 사실상 해임 거부한 초유의 대통령으로 기록)
한국 헌법 61조는 1항에서 "국회는 국무총리 또는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2항은 그 요건에 대해 "해임 건의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에 의해 재적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국회의 해임 건의에 대해 유감을 표하거나 비판하기는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해임 건의를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해 왔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의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의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 건의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두 건의 해임 건의안은 모두 현재의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 의해 주도된 것이다.
임동원 당시 장관은 해임 건의안 통과 하루 뒤 즉각 사의를 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사흘 만에 부분 개각 형식으로 사표를 수리했다. 현 국민의당 소속 국회의원인 박준영 당시 청와대 공보수석을 통해 임 장관 해임 건의안을 "남북 화해협력 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로써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취한 조처였다. 다만 청와대는 해임된 임 장관을 1주일 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로 재임용하기는 했다.
김두관 전 장관은 해임 건의안 통과 14일 후에 사표를 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틀 만에 사표를 수리했다. 노 대통령도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이번 해임 건의는 정말 부당한 횡포이고 법적 구속력도 없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해임 건의안을 받아들이더라도 호락호락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라고 결기를 보였지만, 결국에는 사표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한국 '군사 독재'의 원조 격인 박 대통령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조차 의회가 요구한 장관의 해임 건의는 수용했다. 1971년 오치성 당시 내무장관 해임안을 가결시킨 이른바 '10.2 항명 파동' 사건 때에는, 야당에 동조한 여당(공화당) 의원들이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폭행을 당하고 콧수염을 잡아 뽑히는 등 살벌한 '보복'이 있기는 했지만 오 장관은 결국 해임됐다.
1969년의 권오병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 해임안 가결 역시 '4.8 항명 파동'으로 불린다. 박정희 정부 당시 2번의 장관 해임 건의안은 야당(신민당)이 소수였음에도, 공화당 내 3선 개헌 반대 세력(1969년 JP계, 71년 '4인방' 그룹)이 야당과 힘을 합쳤기에 의결이 가능했다. 4.8 항명 사태 때에도 격분한 박정희 대통령(당시 공화당 총재 겸임)에 의해 국회의원 5명이 당에서 제명되는 등의 보복 조치가 가해졌지만, 권 장관은 그래도 물러났다.
다만 1987년 개헌 이전인 당시 헌법에는 "(해임) 의결이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국무총리 또는 당해 국무위원을 해임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이 있기는 했다. 어쨌든 국회의 해임 건의가 대통령에 의해 공식 거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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