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비정규 공약, 성적표는?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기본 '성적표'를 매겨보면...

20대 국회 첫 정기 국회가 시작되었다. 대정부 질의 등의 절차를 거쳐 9월 26일부터는 국정 감사가 시작되고 10월 하순이나 11월부터는 본격적인 입법 논의가 개시된다. 매년 정기 국회의 의미가 다 똑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올해 정기 국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쉽게 꼽을 수 있는 것은 총선 이후 처음 열리는 정기 국회라는 점이다. 선출직의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가장 '끗발'이 설 때는 임기 초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개혁 입법은 총선 이후 열리는 첫 정기 국회에서 이뤄지곤 한다.

다음으로는 내년(2017년) 대선을 앞두고 열리는 정기 국회라는 점이다. 물론, 내년 대선 직전에 정기 국회가 한 차례 더 열리기는 하나, 그때는 사실상의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상황에서 열리게 되므로 상대 당에 대한 공격과 폄하, 자기 당 후보에 대한 노골적인 편들기가 주를 이루게 된다. 즉, 개별 국회의원의 역량이 아니라 당의 입장이 최우선시 되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국회라는 기구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우나, 그나마 올해 정기 국회가 개별 의원들이 나름의 역량을 갖고 자신이 생각하는 '민의'를 펼치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1주일 앞으로 다가온 국정 감사는 어떠할까?

국정 과제가 된 대선 공약의 검증대

'인사이드 경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국정 감사라면 기본적으로 '국정'을 감사하는 자리 아닌가.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정상적인 논리적 대결이 이뤄지는 20대 국회 첫 국정 감사라면, 기본적으로 현 정부 집권 이후 국정 과제로 설정한 내용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아마도 집권 이후 국정 과제가 된 내용의 대부분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가 제시한 공약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3년 7개월이 지났으니 그 과제들이 현재 얼마나 진행되고 완수되었는지를 검증해보는 것이 20대 국회 첫 국정 감사의 테마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테면 '인사이드 경제'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비정규 노동'과 관련해서만 보자면, 2012년 당시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대표적인 공약들은 아래와 같다. 그리고 이들 공약 대부분은 2013년 집권 첫해에 국정 과제로 확정되어 실행계획이 나오거나 입법안이 제출된 바 있다.
◾ 2015년까지 공공 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무화.
◾ 공공 부문 상시 업무에는 정규직만 고용.
◾ 대기업 상시·지속적 업무 근로자 정규직 또는 무기 계약직 전환 유도.
◾ 월소득 130만 원 미만 비정규직 국민 연금, 고용 보험 국가 100% 지급.
◾ 비정규직 차별 반복 사업장에 징벌적 금전 보상 제도 적용.
◾ 불법 파견 법원 판결 시 특별 근로 감독 통해 동일 불법 파견 적발 및 시정.
◾ 대기업 고용 형태 공시 제도 도입.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비정규 노동 관련 공약이 위의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선에 앞서 2012년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발표된 공약 내용 일부도 국정 과제에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특수 고용 산재 보험 특례 적용이 의무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개악 요소를 시정하겠다고 한 총선 공약이 있었고, 노동계의 반발을 샀던 사내 하도급법 제정도 새누리당 총선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아울러 비정규 노동으로 한정되지 않는 '노동' 전반에 대한 공약과 국정 과제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고용률 70%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일하게 수치로 제시한 대선 공약이었다. 이에 기반해 '시간 선택제 일자리,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일·가정 양립 정책' 등의 각론이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공약과 무관하게 국정 과제로 자리잡은 정책들도 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이른바 '노동 개혁'으로 포장한 정책들을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 노동 관련 정책의 기조는 대부분 대선 공약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기억에도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는 내용들이니 이에 기초해 검증해보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앞에 열거한 총선 공약이나 노동 전반의 공약, 공약과 무관하게 제시된 국정 과제 역시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토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기본 성적표(?)를 매겨보자면…

우선 위에 제시한 대선 공약들 중 명목상으로는 시행된 내용이 제법 된다. 이를테면 '월소득 130만 원 미만 비정규직 국민 연금, 고용 보험 국가 100% 지급'한다는 공약은 비록 100% 지급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지만, '두루누리 사회 보험' 제도를 통해 고용 보험과 국민 연금에 대해 작게는 40% 많게는 60%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 차별 반복 사업장에 징벌적 금전 보상 제도를 적용'한다는 약속 역시 2013년 국회 환노위를 통과해 2014년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명백한 고의가 있거나 반복적으로 차별이 이뤄지는 사업장에 최대 3배의 징벌적 금전 보상 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대기업 고용 형태 공시 제도 도입'은 2012년 총선 직후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이한구 의원 대표발의로 고용 형태 기본법 개정안이 상정되어 대선 이전인 2012년 9월에 국회 환노위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바 있다. 이에 따라 2014년부터는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장은 정규직과 함께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사내 하도급 형태의 간접 고용 비정규직 규모까지를 매년 공시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명목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고개를 가로젓게 만드는 약속들이다. '2015년까지 공공 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의무화' 내지 '공공 부문 상시 업무에는 정규직만 고용'하겠다는 약속? 그렇다면 올해(2016년)에 이미 공공 부문에 비정규직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사라졌어야 옳다. 지난해 '공공 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발표되면서 상시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기는 했으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리라 믿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대기업 상시·지속적 업무 근로자 정규직 또는 무기 계약직 전환 유도' 내용 역시 도대체 이 정부가 한 일이 뭐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약속이다. 올해 4월 7일에 발표된 '기간제 고용 안정 가이드라인' 내용 중에 상시·지속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 원칙을 확립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이 역시 실효성 없는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불법 파견 법원 판결 시 특별 근로 감독 통해 동일 불법 파견 적발 및 시정'의 경우 박근혜 정부 임기 중에 불법파견에 대한 법원 판결이 어떤 게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지방법원이나 고등법원 판결은 수도 없이 많은데 굳이 대법원 판결만을 보자면 대표적으로 한국GM 창원공장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바 있다.

두 사업장 모두 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민주노총 금속노조로 조직되어 있는데, 노동부가 근로 감독을 통해 시정지시를 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근로 감독을 하지 않았거나 했더라도 면죄부를 주었을 공산이 크다는 얘기이다.

박근혜 정부 비정규 노동 정책의 기조

물론 명목상 실현했다고 하는 약속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많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보면 현 집권 세력이 추구해온 비정규 노동 정책의 기조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공약의 실현 여부와 함께 애초 추구했던 정책의 기조가 제대로 실현되었는가 하는 점도 함께 검증대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를테면 대선 공약에서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비정규 노동 정책의 기조 하나는 '상시·지속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 원칙을 확립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한방에 실현하기에는 어려우니 우선 공공 부문부터, 그리고 민간 부문은 대기업부터 실현하도록 하자는 방향이 담겨 있다.

아울러 공공 부문은 정부가 직접 사용자이니 정책으로 실현하면 되는데, 민간 부문의 경우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고용형태 공시제를 통해 자율 개선 노력을 권장하고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각론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이른바 '사내 하도급'으로 대표되는 간접 고용 문제에 대한 정책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2012년 총선 직후 박근혜 새누리당 집권 세력은 19대 국회 제 1호 법안으로 '사내 하도급법'을 발의하는 등 사내 하도급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온 바 있다.

고용 형태 공시제 역시 도대체 비정규직 중 어느 범위까지를 공시하도록 하느냐가 주요 쟁점 중 하나였는데, 집권 세력은 2012년 환노위 법안 심사 과정은 물론이고 2013년에 시행령이 만들어질 때에도 '사내 하도급'을 포함한 간접 고용까지를 '소속 외 근로자'로 공시하도록 주도했다. 불법 파견 관련 공약 역시 사내 하도급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차별'과 '저임금' 문제에 대해서 각각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와 사회 보험료 지원 등의 공약을 내걸고 있다. 대부분의 야당들이 차별 내지 저임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저 임금 대폭 인상과 같은 정책을 채택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상의 분석 틀을 기본으로 해서 '인사이드 경제'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 노동 관련 국정 과제에 대한 검증을 시도해볼 계획이다. 국정 감사가 한창 진행 중인 시간대와 겹쳐지며 시리즈가 나갈 테니 독자 여러분도 함께 검증에 동참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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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입니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글을 써 오고 있습니다. 주로 자동차산업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등을 다뤘습니다. 지금은 [인사이드경제]로 정부 통계와 기업 회계자료의 숨은 디테일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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