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정말로 만졌을까?

[양지훈의 법과 밥] 진실과 거짓 사이

얼마 전 강제 추행 죄로 기소되었던 의뢰인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서 무죄를 받는 경우는 통계적으로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해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1~2% 정도에 불과하다. 재판 결과 100명의 피고인 가운데 무죄를 받는 자는 평균 한두 명에 불과한 것이다. 이 통계의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검찰이 억울한 자를 쉽게 기소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기소된 이후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른 형사 사건의 경우도 그렇지만 특히 성범죄 사건에서 유·무죄 판단의 어려움은 증거의 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우리 의뢰인의 경우, '밤 10시경 강남역 이면도로 인근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던 피해자의 엉덩이를 손으로 한 차례 쳤다'는 행위가 기소된 범죄의 요지였다. 서울 강남 한복판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CCTV가 있었다면 변호사조차 필요 없는 사건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피해자의 증언이 거의 유일한 증거였다.

무죄 판단과 입증의 어려움

증거 부족은 사실 성범죄 사건의 특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당사자 외에 그 범죄 전후의 사정을 알 수 있는 자가 없다는 밀행성 때문이다. 목격자는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는 '나는 엉덩이를 치지 않았다'고 하는데, 피해자는 '가해자가 내 엉덩이를 쳤다'는 완전히 반대의 주장을 한다.

이 사건 쟁점은, 가해자의 실수가 아닌 한 '실제 피해자의 엉덩이를 손으로 쳤느냐' 하는 단 하나의 사실을 확정하는 것이었다. 재판 실무상 사실 확정을 위해 필요했던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 중 어느 것이 더 믿을 만한가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경찰, 검찰 등 수사 기관에서 이미 진술을 했던 가해자와 피해자는, 법정에 나와 다시 같은 질문을 받고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해야만 했다. 변호인으로서 나는 당시 정황을 최대한 상세하게 판사 앞에서 '재연'에 가까운 정도로 질문을 던지고, 사건 전후에 대한 피해자 진술의 약점을 파고들 수밖에 없었다.

의뢰인으로부터 사건을 위임받으면서, 당시 정황을 '가해자 입장'에서 매우 상세하게 이미 들었던 상황이다. 내가 의뢰인의 말을 100% 신뢰했던가? 증거가 부족한 사건에서 변호인은 자신의 의뢰인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그가 말하는 사실과 정황을 회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회의적 태도가 의뢰인에게 더 유리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의뢰인의 주장에서 보이는 허점을 찾고 미리 그것을 방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회의적 태도는 오히려 정당하다. 반대로 의뢰인의 주장을 전부 신뢰하는 변호인의 변론은, 재판에서 검사로부터 더 쉽게 공격당하고 판사로부터 의심을 살 수 있는 여지가 더 클 수 있다.

당시 의뢰인은 '나는 피해자 엉덩이를 손으로 치거나 만지지 않았다' '전단지를 나눠주려는 피해자를 밀쳤을 뿐이고, 그 와중에 혹시 접촉이 있었다면 피해자의 엉덩이가 아닌 상체 부근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을 '믿었다'. 피해자를 증인 신문하면서, '전단지를 나눠주려 하는 피해자가, 이를 수차례 거부하는 가해자를 따라왔고, 결국 가해자가 전단지를 건네주려던 피해자의 손을 밀치다가 원하지 않게 피해자 신체 부위 일부에 접촉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인지 여러 각도에서 질문했다.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믿을 만하게 기억하는지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질 것이었다. 어려운 신문이었지만, 여전히 나는 1심에서 피해자의 증언이 법대 위에 앉은 법관을 얼마나 움직였는지 알 수 없다. 무죄 판결에는 증인 신문 이외에도 너무 많은 판단 요소들이 작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판 혹은 인간적 고뇌

법관 입장에서 이 사건을 보면 어떤가. 나는 비록 의뢰인의 무죄를 주장하는 변호인의 입장이었지만, 이 사건의 판사는 훨씬 많은 고뇌와 인간적 괴로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변호인은 직업적 윤리와 의무에 따라 의뢰인의 입장에서 가장 유리한 변론을 하고, 검사는 수사 결과에 의해 기소하고 피고인의 유죄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재판에서 변호인과 검사는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지만, 판사는 그렇지 않다. 법관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무죄라고 판단할 경우 피해자에게, 유죄로 결론내릴 경우 피고인에게 각각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어느 누가 법관을 '권력을 행사하는 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지만, 판결에 앞서 인간적 고뇌는 피할 수 없으며 그것은 판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법정에서 우리와 같은 시민인 법관이 다른 시민을 상대로 유, 무죄를 선고하는 장면에는 어떤 엄숙함이 스며들 수밖에 없다.

이 사건에서 판사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엉덩이를 손으로 쳤다는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고, 당시의 전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는 판단 아래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사건에 대해서는 판사뿐만 아니라, 검사와 변호인도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고 해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1의 원칙인 실체진실주의는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없으며, 우리의 재판도 그 한계가 명확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이 재판이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재판을 통해 확정한 최선의 결론이자 '잠정적 진실'은, 피고인이 고의로 피해자의 엉덩이를 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의뢰인은 무죄를 받을 수 있었다.

(며칠 전 검사가 1심 판결에 항소하여 '진실'은 여전히 유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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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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