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나라 빚 131조로 뭐했나?

[복지국가SOCIETY] '재정 건전화법'보다 '증세 정책'이 먼저다

지난 8월 10일 기획재정부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와 건전성 강화를 명분으로 재정 건전화법을 입법 예고했다. 최근 급격하게 증가하는 정부 부채의 규모나 속도는 이미 적극적인 대응을 필요로 할 수준에 도달했으며, 장기적이며 구조화된 저성장 추세와 이미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국가 재정이 악화될 것이 분명하므로 표면적으로 보면 이런 법안의 제정은 시급하고 타당해 보인다.

재정 악화시켜놓고 '재정 건전화법'? 적반하장

정부의 재정 건전화법은 다음의 5가지 주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1) 국가 채무는 국내총생산(GDP) 45% 이내로, 관리 재정 수지 적자는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 준칙의 도입, 2) 재정이 소요되는 법안을 제출할 때 그에 상응하는 페이고(Pay-go) 제도 강화, 3) 행정기관의 장은 소관 사회 보험의 재정 전망 추계 및 건전화 계획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하는 등 사회 보험 재정 안정화 관리 체계 마련, 4) 중앙 정부, 지방 정부, 공공 기관을 아우르는 재정 건전화 계획의 수립, 이행 및 평가 5)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재정전략위원회에서 재정 건전성 관련 사항의 심의 의결을 담당하도록 하는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참으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고, "본말전도(本末顚倒)"라고 느껴진다.

첫째, 지금의 재정 악화를 초래한 주범이 누구인가를 살펴본다면 적어도 지금의 집권 여당이나 행정부는 이 법안을 제안하거나 제정할 자격이 없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GDP의 28.7%였던 국가 부채가 지난 2015년에는 37.9%로 늘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중앙 정부의 채무가 289조 원(2007년)에서 425조 원(2012년)으로 136조 원이나 늘었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집권 3년 만에 556조 원(2015년)으로 131조 원이나 늘었다. 재정 악화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자신들이 악화시켜 놓은 재정을 차기 정부의 부담으로 떠넘기겠다는 이 법안은 적어도 내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그 책임성을 심판한 연후에, 정권이 바뀌고 나서 국민의 동의를 얻어 제정하는 것이 옳다.

▲ 박근혜 정부 집권 3년 만에 국가 채무가 131조 원 늘었다. ⓒ청와대

둘째, 이 법안은 원인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어 있고 따라서 처방도 잘못되어 있다. 재정 악화 문제의 원인이 사회 보험을 포함한 복지 제도의 급속한 확대에 있다고 진단하고, 향후 새로운 복지 제도를 도입하거나 대상을 확대할 경우 그 정책을 추진하는 부서에서 재원 마련까지 대책을 가지고 오라는 것은 옳지 않다.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늘어나지 않던 국가 채무가 지난 10년 사이에 GDP의 10%포인트 이상 늘어났던 것은 지난 이명박 정부의 과도한 토목 건설 공사와 부자 감세, 그리고 현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주요 원인이다. 최근의 재정 악화의 원인은 부자 감세와 증세 없는 복지를 때문인데, 부자 감세를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면서 적극적인 증세에 나서는 것 없이 앞으로 복지 확대를 막는 쪽으로만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 법안이 제정되어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셋째, 재정이 드는 법안을 제출할 때 그에 상응하는 페이고(Pay-go) 제도의 강화는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다. 국회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법안을 만드는 국민의 대의 기관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법안을 제출하고 제정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해당 법안이 예산을 수반한다면 그 법안에 예산 관련 조항을 넣을 수도 있고, 다른 예산 관련 법안에 소요 재원을 마련할 방안을 반영할 수도 있다. 모든 개별법마다 재정 조달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은 입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이며, 입법권을 제약하는 것일 수도 있다.

넷째, 중앙 정부, 지방 정부, 공공 기관을 아우르는 재정 건전화 계획을 수립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재정전략위원회에서 재정 건전성 관련 사항을 심의 의결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행정 체계와 절차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 조항이 현실화된다면 기재부 장관이 상왕 노릇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보장을 담당하는 부처는 사회 보장을 잘 하면 되는 것이고, 재원 마련을 담당하는 부처는 적극적으로 이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 부처의 역할 분담이고,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정부를 이끌어 가는 이유다.

다섯째, 무엇보다 이 법안이 가지는 문제는 차기 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더라도 이전 정부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저질러 놓은 재정 적자를 뒤집어쓰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해당 정부의 공약과 정책까지 발목 잡히게 될 것이다. 만일, 다음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하고자 한다면 지금 야당들은 이 법안을 반대해야 한다. 현 대통령과 차별화된 새로운 대통령을 배출하고자 한다면 여당도 이 법안에 동의하지 말아야 한다.

재정 건전화법은 국가 채무가 이미 GDP의 40%를 넘어선 마당에 임기가 끝나가는 현 정부가 추진할 일은 아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의 결과는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투표로 드러낸 것이며, 야당들이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런 잘못을 바로 잡으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증세 없이 추진되는 정책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재정 건전화법이 아니라 증세 관련 법안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옳다.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증세 관련 논의들

누리 과정에 대한 재정 부담을 중앙 정부(교육부)가 감당할 것인지, 지방 정부와 교육청이 부담할 것인지의 논란도 결국 '증세 없이' 대선 공약을 지키려고 하다 보니 생긴 문제이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연달아 단식 농성을 하면서 반대하고 있는 지방 재정 건전화 방안도 이명박 정부의 종합부동산세 무력화와 취득세 인하 등의 감세 정책과 박근혜 정부에서 기초 연금 및 각종 복지 확대 공약을 시행하면서 중앙 정부가 재원 마련을 하지 않아서 생긴 연간 4조7000억 원의 지방 정부 재정 부담을 지방 정부 간의 재배분으로 돌려막으려다 생긴 사태들이다.

집권 여당에서는 당장에 발생한 재원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또 야당에서는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고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증세 관련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런 행사들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9월 국정감사와 연말의 예산 심의를 앞두고 각 정당의 입장을 정하는 의미도 있고, 장기적으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기조를 설정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의 세재 개편안에 반대하면서 선제적으로 부자 증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과세 표준 500억 원 이상 대기업의 법인세율을 25%로 3% 인상하고, 과세 표준 5억 원 이상의 고소득자들에 대해서는 최고 소득세율 41% 구간(기존 38%)을 신설하며, 대주주의 상장 비상장 주식 양도 차익 세율을 25%로 5% 인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더민주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기초 연금 30만 원으로 인상(6.4조 원 추가 소요), 양극화 해소를 위한 777플랜(현재 62% 수준인 국민총소득 대비 가계 소득 비중, 62.9%인 노동 소득 분배율, 65% 수준인 중산층 비중을 각각 70%대로 향상)의 시행 등을 약속하고, 이를 위해 2020년까지 사회 복지 지출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80%에 이르도록 늘리는 적극적인 복지 확대를 약속한 바 있다. 이에 소요되는 재원은 재정 개혁, 복지 개혁, 조세 개혁으로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는 2014년 154조 원 수준의 복지 지출을 2020년까지 307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이어서 그것의 실현 가능성이 의심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중향 평준화"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 중심으로 복지 제도를 조정하고 국민 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인하하는 등 복지 제도를 축소하여 저소득층을 도와주는 중향 평준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 부문의 임금 동결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거나 공무원 연금과 국민 연금을 통합하여 비정규직의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고, 쉬운 해고를 통해 상층 노동자의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등 윗돌 빼서 아랫돌을 궤는 정책을 좌우의 기득권 양보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이름을 붙여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은 18.16%로 낮지만, 각종 준조세와 사회 보험 부담을 포함할 경우 국민 부담율이 이미 33.79%로 높으므로 복지 확대가 아닌 복지의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 향후에도 증세를 추진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입장에 따라 이미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에서 저소득층 국민건강보험료 부담 완화, 저소득층 사교육비 경감 등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공약을 제시했고, 이를 위해 4년간 4.3조 원(연간 1.1조 원)의 예산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상 예산의 자연 증가가 연간 10조 원 규모인 것을 고려한다면 새누리당은 20대 국회에서 매년 그것의 10% 정도인 1조 원만 공약 사업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선 후보가 나와서 당론을 바꾸기 전까지는 적어도 새누리당은 이것을 빼서 저것을 매우는 식의 미세 조정 외에는 향후 새로운 복지를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복지 확대와 적극적 증세 정책의 필요성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는 기초 연금 정책의 대상 축소, 4대 중증 질환 국가 보장 정책의 대상과 급여의 축소, 누리 과정 예산의 지방 정부 전가, 청년 수당 등 적극적 노동 시장 정책의 후퇴 등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나아가 올해 국정 감사, 예산 심의 때도 이런 문제들이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다. 이미 본격화되기 시작한 전기 요금의 누진제 개편뿐만 아니라, 추가 경정 예산안의 2018년도 누리 과정 예산 반영까지 증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각종 현안들이 대기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각 정당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이고, 증세 없는 복지를 하겠다는 현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을 공격할 것이다.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을 넘어 OECD 중간 수준에 이르는 산업화된 국가가 되었다. 특히, 기술의 발전과 국제적 분업 구조 속에서 더 이상 저임금으로 지탱하는 산업들은 구조적으로 지속 불가능하게 된 지 오래다. 다른 선진국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산업 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발생하는 고용 감소를 한편에서 적극적인 신산업 육성으로, 다른 한편에서는 적극적인 사회 서비스 일자리 확대로 대체해야 한다. 국민 소득 1만 달러일 때, 우리나라는 GDP 대비 사회 복지 지출을 5.7% 정도 했는데, 프랑스 등 유럽 복지 국가들은 12-15%를 지출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보는 우리나라가 10% 수준에 머물 때, 다른 OECD 국가들은 평균 21.5%를 지출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들 선진국들이 돈이 남아 돌아서 복지 지출을 확대하고, 정부 재정을 키운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산업 구조의 고도화에 따른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도록 하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가 적극적인 복지 확대와 증세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이런 정책 방향이 다음과 같은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첫째, 복지 자체가 가지는 고용 창출 효과다. 우리나라의 공공 부분 종사자는 100만 명의 공무원과 공기업 등을 포함해도 전체 고용의 10% 미만이다. OECD 국가들에서 이 비율이 대체로 15-30%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우리나라는 공공 부분의 사회 서비스 일자리 창출 여력이 현재 전체 고용 총량의 10-20%는 가능하다고 짐작할 수 있다.

둘째, 보편적 복지를 통한 가처분 소득의 증가 효과이다. 현금성 복지뿐만 아니라 보육, 교육, 의료, 주거, 요양 등의 사회 서비스 보장은 국가가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를 통해 기본적인 비용을 충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개인이나 가족들의 소득에서 지출되던 각종 생활비가 그만큼 절감된다. 무상 급식이 월 5만-10만 원, 무상 보육이 월 평균 24만 원의 고정 지출을 절감하게 했기에 그렇게 국민의 호응을 받은 것이다. 가처분 소득의 증가로 인한 내수 활성화는 기업들의 투자 유발 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셋째, 적극적인 조세 정책이 가지는 소득 재분배 효과이다. 비정규직이 전체 고용의 50%이고, 최저 생계비 수준의 저임금 근로자가 300만 명이나 되어 임금을 통한 1차 소득 분배의 정상화는 상당 기간 동안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인 증세는 소득 재분배를 정상화 할 수 있게 한다. 법인세의 인상은 600조 원 넘게 쌓인 사내 유보금을 적극적으로 순환하게끔 할 것이다. 경제 민주화 정책과 동반한 법인세의 증세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로 압박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부자 감세가 소비 촉진 효과를 주지 못한 것과 달리, 고소득자를 포함한 중상층에 이르는 소득세 증세는 복지 확대를 통해 내수 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다.

이제라도 시급하게 증세를 공론화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차피 차기 대선은 증세 논쟁 없이는 넘어갈 수도 없다. 적극적인 복지 확충과 증세를 통한 재정의 적극적 역할 없이는 고용의 창출도, 투자의 촉진도,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도 불가능하다. 이제 증세 논의는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앞으로 어떤 부분을 얼마나 누구에게 증세를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정책 효과를 극대화할 것인지, 이런 부분들에 대한 세밀한 준비와 함께 국민적 합의가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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