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알아서 그만둔 보좌진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그냥 잘린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능력이 아니라 관계를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채용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의 퇴직조차 능력이 아니라 관계를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뤄지고 있다. 국회의원 가족이라는 이유로 채용되었으니 이른바 '금수저'일 수 있지만 그들조차 '파리 목숨'인 건 매 한가지인 셈이다.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 되었던 서영교 의원은 자신의 딸을 의원실 인턴으로 채용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논란거리지만 딸의 로스쿨 합격에 인턴 경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혹까지 더해져 비난이 폭발했다. 국회 게시판에 인턴 채용 공고를 내면 며칠 만에 수십 명이 넘는 지원자들의 원서가 접수된다(때로는 100명도 훌쩍 넘는다). 의원실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서류 전형, 면접 절차, 평판 조회까지 거쳐 신중하게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공정해야 한다는 윤리적 원칙 때문만이 아니라 의원실 인턴 업무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현실적 이유도 크다. '노동 착취'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일을 하고, 인턴에 불과함에도 한두 개 기관을 직접 담당할 정도로 중요한 임무를 맡기도 한다. 반면 신분은 지나치게 불안정하다. 정식 보좌진으로 채용되지 못한 채 월급 120만 원의 인턴으로 몇 년씩 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인턴 이후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 없다면 좋은 일자리일 이유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정식 보좌진의 채용 과정은 훨씬 까다롭다. 한 명 한 명의 채용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4급 보좌관은 보통 중앙 부처 과장이나 국장들과 상대한다. 자료나 설명의 협조를 정중히 구하지만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5급 비서관만 되어도 중앙 부처 팀장이나 산하 기관 본부장의 대면 보고를 받는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을 대신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보좌진의 권한은 생각보다 크다.
지역구 민원 해결이나 회계와 재정 문제 역시 결코 간단치 않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이로부터 연간 100만 원 정도 후원만 있어도 신경 써서 하나하나 체크하지 않을 수 없다. 의원 본인은 물론 수석보좌관은 의원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꼼꼼히 챙겨야 한다. 기업이나 관공서처럼 명문화된 규정이나 절차에 의하지 않더라도 그것 이상의 엄격한 위계와 관리 체계가 작동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에 상관없이 친인척을 이유로 보좌진 채용을 감행하는 것은 용감무쌍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채용 논란이 일자 일부 의원들은 "믿을 사람이 친인척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국회의원이 수행해야 할 공적 업무를 어떻게 담당토록 할 것인지에 대한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실토한 셈이다. 역량과 경력 그리고 의지를 갖춘 보좌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안다면 그렇게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문제가 불거지자마자 친인척 보좌진을 곧바로 면직 처분, 사실상 즉시 해고해 버리는 것을 보면 윤리만이 아니라 자질 자체를 다시 의심하게 된다. 의원과 보좌진과의 공적 관계를 가볍게 여기고, 보좌진이 담당하는 일을 만만히 여기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야를 막론한 당 지도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채용 이유를 확인하기보다 관련자의 '신속한 면직 처분'을 우선 요구하고 있다. 당장의 비난 여론에 따른 꼬리 자르기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각 정당과 국회사무처는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을 금지하는 법 개정과 규정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보좌진의 채용과 면직에 관한 깊이 있는 고민은 담기지 않아 보인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된 이때, 그것에 관한 제대로 된 논의와 근본적 개선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 금지도 중요한 개선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친인척의 범위'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부터 벌써 새로운 논란을 낳고 있다. 적용 범위를 무한정 넓히는 것도 당연히 어렵다. 더군다나 '혈연'이 아니라 '지연'이나 '학연'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돈의 8촌'을 채용하는 것은 안 되지만 '고향 후배'나 '고등학교 후배'의 채용은 상관없는가?
이번 사태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불공정한 특혜 채용이 핵심이지 가족 또는 친인척 여부만 따지는 것은 본질을 비켜간 논란일 수 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과의 관계에서 불공정한 채용만큼 심각한 문제는 극도로 불안정한 고용일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총선을 전후해 수많은 보좌진들이 의원실을 떠났다. 선거를 위해 정책보좌관들이 먼저 떠났고, 선거에서 이긴 후에조차 의원실 재정비라는 모호한 이유로 보좌진들의 면직이 이어졌다. 사실상 '쉬운 해고'가 이미 일상화된 곳이 의원회관이다.
국회 보좌진과 정당 당직자들이 서로를 '사노비', '공노비'라 부르고 있는 것을 국회 밖에선 잘 모를 것이다. '금수저'를 물어야 겨우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처럼 보이지만, 21세기 대명천지에 보좌관이 자기 처지를 노비에 빗대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웃픈 현실'이다. 그 극단적 행태가 보좌관 급여 상납일 테다. 지난 달 중앙선관위가 국민의당 김수민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때 새누리당 이군현 의원도 함께 고발되었다.
당시 선관위는 "이 의원이 2011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보좌진 급여 중 2억 4400만원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불법 정치 자금으로 수수했다"고 밝혔다. 작년에도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이 보좌관 급여 상납 문제로 지탄을 받았다. 서영교 의원 보좌관도 연간 500만원 후원금을 내 상납 의혹마저 사고 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가 정치적 동지이기는커녕 일반 회사의 상사와 부하 관계보다도 못한 전근대적 주종관계로 얽혀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보좌진은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 노릇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국회가 채용한 별정직 공무원이다. 다만 국회의원이 채용과 면직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금수저' 특혜 채용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또한 보좌진을 자신의 '사노비'처럼 맘대로 부리고, 멋대로 자르는 것 또한 용인될 수 없다. 양쪽 모두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공적 임무' 수행을 위해 맺어진 '공적 관계'임을 망각한 것이다.
'금수저'도 문제지만 '사노비'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정도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은 곤란하다. 좀 더 나가야 한다. 국회의원 개인이 윤리적·법적 책임을 지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정당이 나서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즉 보좌진의 선발과 교육, 임면 등을 정당이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의원과 보좌진의 공적 관계가 '금수저'나 '사노비'에 의해 위협받지 않도록 정당이 정치적 책임을 나눠져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회사무처를 포함한 입법 지원 기구 전반에 대한 검토와 개혁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 정도가 되어야 '금수저'를 문 '사노비'라는 괴물이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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