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빠진 EU, '독자적 군대' 창설 논의 수면 위로

EU판 '자주 국방론'…나토와 관계 설정 난항 예상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확정되면서 유럽연합(EU)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와 별개로, 독자적인 군대를 창설하는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28일(이하 현지 시각)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외교·안보에 관한 글로벌 전략'이라는 보고서의 초안을 공개했다.

모게리니는 이 보고서에서 EU가 안보 영역에서 독자적인 힘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 취약한 세계정세는 EU에게 보다 큰 자신감과 책임감을 가지라고 요청하고 있다"면서 "EU가 '외부의 위기'에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게리니는 "EU가 안보와 방어에 투자하는 것은 시급한 사안"이라면서 EU 회원국들이 추후에 만들어질 EU 군대의 기본 틀을 잡아놓기 위해서라도 안보를 위한 비용 지출을 늘리고 방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그는 "체계적인 방위협력과 견고한 방위산업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유럽이 자유롭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EU의 독자 군대 창설은 이 보고서에서 처음 나온 주장은 아니다. 이와 관련해 지속적인 목소리를 내온 EU 외교위원장 엘마 블록은 지난 26일 EU의 공동 '군 사령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군대 창설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EU 자체 군대로 "(EU)회원 국가와 이웃 국가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동안 독일과 프랑스 등 EU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안보 분야 협력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미국과 핵심적인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영국의 반대로 지금까지 독자 군대 창설을 비롯한 안보 협력은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EU 탈퇴가 확정되면서 EU의 고위 관료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 번 안보 분야 협력 사안이 협상 테이블에서 논의되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 지난 28일 브뤼셀에서 만난 데이비드 캐머런(왼쪽) 영국 총리와 페ⓒ

그러나 현재 EU가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어, 당장 EU의 독자적인 군대 창설 논의가 진행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은 나토를 통해 유럽 안보를 총괄하고 있다. EU 소속 28개 회원국 중 22개 국가가 나토 회원국이며, 미국은 나토 회원국 전체 국방비 지출의 약 7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자 핵보유국인 영국마저 국민투표로 EU에서 빠져나올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EU가 자체적으로 안보 역량을 키우는 것이 가능하냐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나오고 있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남아 있는 EU 국가 중 프랑스 정도가 영국과 비슷한 수준이고, EU 내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인 독일은 외부의 군사적 개입을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면서 EU가 자체적으로 군대를 창설하고 적극적인 군사 개입 정책을 펼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매체는 "EU의 28개 국가 중 22개 국가가 나토의 일원이다. 안보를 이야기할 때 그들은 미국이 이끄는 동맹을 우선 쳐다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U도 이러한 점을 의식한 듯 나토와 관계를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모게리니 대표는 EU 군대가 창설되더라도 "나토가 여전히 모든 EU 국가의 안보 정책에 기본적인 구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그는 "좀 더 믿을만한 유럽 방어는 미국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일"이라고도 밝혀 EU가 자체 안보 역량을 키우는 것이 미국과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데 있어서도 필요한 작업임을 강조했다.

모게리니 대표는 유럽연합 군대와 나토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이 나토의 영향권을 벗어난 유럽지역의 군대 창설을 과연 용인하겠느냐는 문제도 있다.

EU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28일 EU와 나토 간의 동맹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의 국민투표 전에도 통합과 협력은 물론 중요했지만 현재는 훨씬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7월 8~9일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선 EU-나토 공동위원회 결성 방안이 의제에 오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토 회원국이지만 EU 회원국은 아닌 미국이 공동위원회를 결성해 유럽에 대한 개입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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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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