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고소했더니 띠동갑 상사 "우린 사귀는 사이!"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성폭력 피해자로 당당히 사는 법 ①

성폭력 피해자 가운데 많은 이들이 가해자를 알고 어느 정도 증거가 있더라도 고소를 망설인다. 가해자와의 이해관계나 수치심 때문도 있지만, 경찰서에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렵사리 넘은 경찰 문턱을 넘으면서 형사 고소 과정이 진행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꽤 많은 사람은 '안 했는데 했다고 하면 어쩌냐'를 걱정한다. 피해자 지원 사건을 많이 하는 변호사 처지에서 보면 정말 쓸모없는 걱정이다. 고소된 성폭력 사건이 실제 기소까지 되는 확률은 3건 가운데 1건이 채 되지 않는다. 피해자 변호사 입장에서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은 '했는데 수사 기관에서 잘 모르겠다고 하면 어쩌냐'이다.

이렇게 어렵게 고소를 하고 간신히 기소된 다음에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유죄 판결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성폭력 사건의 대게가 고의나 강제성이 문제 되기 때문에 현행범으로 잡혀 왔거나 CC(폐쇄회로)TV 같은 것이 제출되지 않은 이상에는 피해자가 법정에 나와 진술을 해야 할 일들이 많다.

지난 시간 많은 문제 제기와 노력 속에서 수사 단계에서의 피해자 배려가 많이 개선되었다. 법원에서도 그런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는 피고인에게 유죄를 인정할 것이냐 여부가 첨예하게 다퉈지는 자리인 만큼, 피고인 변호사로부터 피해자에게 상처가 될 만한 질문이나 압박이 쏟아진다. 십중팔구 피해자는 '멘붕'을 겪는다.

얼마 전 피해자 변호사로 증인 신문에 배석했던 강제 추행 재판에서였다. 증인석에 앉은 피해자는 피해 발생 당시 피고인과 같은 직장에서 팀장과 팀원의 관계에 있었다. 피해자는 신입사원이었고, 피고인으로부터 총 4회에 걸쳐 강제 추행을 당했다.

피해자가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회식이 열렸다. 문제는 팀원이 총 3명뿐이라서, 다른 팀원이 먼저 일어나면 팀장인 피고인과 피해자가 둘이 남게 된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은 회식을 빙자해 노래방에서, 때론 택시에서, 때론 택시에서 내린 길바닥에서 피해자를 심하게 추행했다. 모텔에 강제로 끌고 들어가려는 시도도 했었다.

견디다 못한 피해자가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고소를 했다. 피해자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사건 당시의 녹취가 일부 있었고, 나중에 피고인에게 항의하면서도 녹취를 했다. 처음 피해자가 고소를 고민하며 내게 찾아왔던 날, 피해자는 피고인이 자기가 한 잘못을 부인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 사람이 사귀는 사이라고 할 것이라고 대답하자, 피해자가 "에이 설마요"라고 말을 했었다. 문제가 불거지자 피해자가 설마 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띠동갑을 훌쩍 넘는 유부남 상사는 경찰서에서, 검찰에서, 재판정에서, 여성 싱글 신입사원과 사귀는 관계였다고 주야장천 주장을 해댔다. 수사기관에서 대질할 때에도 피해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지만,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피해자가 증인으로 나선 날, 피고인 변호사가 몇 가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왜 남자 상사인 피고인과 단둘이 노래방을 갔느냐, 노래방은 밀폐되고 방음이 되는 공간인데 특별한 사이가 아닌데 노래방을 갔다는 것이냐, 평소 남자들과 단둘이 노래방을 가느냐, 피고인과 카카오톡을 주고받으며 "ㅋㅋㅋ" "ㅎ" 등을 붙이고 이모티콘을 보낸 사실이 있지 않으냐, 평소 다른 남자 상사에게도 이렇게 하느냐, 노래방에서 추행을 당했는데 그 이후로도 피고인과 단 둘이 술을 마신 적이 있지 않으냐, 택시에서 운전기사에게 신고해 달라고 바로 요구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 평소에도 사귀지 않는 다른 남자들과 단둘이 자정이 되도록 술을 마시느냐. 대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한 질문들로 2시간 이상 피해자를 추궁했다.

피고인 변호사들이 하는 흔한 레퍼토리다. 수사 기관에서도 전혀 묻지 않은 새로운 질문들만은 아니다. 그러나 수사 기관에서는 그야말로 질문이지만, 피고인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하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추궁이고 유도이다. 결국은 판사가 누구의 진술을 믿을 것이냐의 다툼이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피해자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신문한다고 하지만, 최대한 피해자를 너덜너덜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때 피고인 변호사의 이러한 페이스에 말리면 안 된다. 그 자리는 피고인의 유죄를 검증하는 자리이지 피해자의 죄 없음을 소명해야 하는 자리가 아니다. 피고인 변호사의 질문 내용이나 어투에 신경 쓰지 말고, 이성을 잃지 않고 차분하고 성실하게 답변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예상되는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리스트 업을 해서 생각을 정리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 사건은 피해자는 영리하고 부지런한 여성이었다. 증거도 비교적 튼실했다. 피해자와 사전에 예상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함께 논의하고 내가 피고인 변호사 역할을 맡아 리허설도 진행했다. 노래방이 노래하는 곳임을, 노래방이 둘이 가면 안 되는 우범 지대가 아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 카카오톡 화면을 준비했다가 거꾸로 제시할 것을, 헤픈 게 아니라 상냥한 거라고 피고인 변호사에게 상냥하게 지적해줄 것을, 미리 주문했다. 그건 변호사가 지어낸 말이나 리허설이 아니다. 피해자가 재판정에 가기 전에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 때 질의응답을 하면서 같이 정리해 주고, 당일에 너무 긴장하지 않도록 미리 간접적으로나마 체험을 시키는 과정이었다.

그런데도 그 날의 증인 신문은 예상보다 훨씬 집요하고 피해자의 상처를 헤집는 질문과 태도들이 이어졌다. 다행히 피해자는 그 과정을 잘 버텨냈다. 이러한 증인 신문이 끝날 때마다 눈물 흘리는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그로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겪어내야 할 과정은 다 끝난 것이란 점에서 마음이 후련하기도 하다.

고소를 결심한 피해자들이라면 이런 점을 미리 숙지하고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변호가 직업이라 그럴 수밖에 없는 피고인 변호인의 태도에 상처받지 말고, 대답을 요구하는 판사가 피해자를 불신해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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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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