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명 중에 한 명은 사장님…저장성의 비결은?

[김윤태의 중국은 하나?] 저장성의 특성화 산업과 균형 발전

개혁 개방 이후 지금까지 저장성(浙江省)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매우 균형 잡힌 산업화를 이뤄왔다. 제조업, 가공업, 건축업, 운수업, 양식업, 방직업, 무역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 고른 발전을 구가하고 있어 타 지역의 귀감이 된다. 이러한 균형적 발전은 각 지역마다 특화된 '특색 산업화'가 그 배경을 이룬다. 위에칭(樂清)의 저압 전기, 하이닝(海寧)의 피혁과 의류, 융캉(永康)의 철물 제품, 주지(諸暨)의 진주, 성저우(嵊州)의 넥타이, 푸장(浦江)의 수정 공예 등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특성화 산업 단지다.

저장성은 특성화 산업의 발달과 더불어 전문화된 시장이 발달한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이우(義烏)의 소상품 시장, 사오싱(紹興)의 방직 시장은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문 시장이다. 이밖에도 4000여 개의 각종 시장이 형성되어 있으니 저장의 시장에서는 없는 게 없다고 하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저장 사람은 저장을 떠나서도 중국 각지에 저장 시장을 세우고 있다. 전국 각지에 '저장 상가', '원저우 상가'가 있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심지어는 러시아, 중동 등지에서도 저장 상인과 원저우 상인을 만날 수 있을 정도니 저장의 경제 발전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사오싱의 방직 전문 시장 '중국 경방성(中國輕紡城)'은 1988년에 처음 세워졌으나, 30년 만에 이미 4개 구역, 19개의 전문 시장으로 발전했다. 5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1만3000여 가게가 성업 중이다. 19개 전문 시장 중에서 방직 제품 시장이 13개, 방직 원료 시장이 1개, 방직 기계 및 경공업 상품 시장이 5개가 되니 방직 관련 모든 제품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원스톱(One Stop) 전문 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중국 경방성(中國輕紡城)'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원래는 '사오싱 경방성(紹興輕紡城)'이었으나 1992년 '중국 경방성'으로 승격되었다. 이름에 '중국'을 붙이게 된 것은 이 시장이 사오싱의 대표 시장일 뿐만 아니라 전 중국을 대표하는 시장이란 의미에서다.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직 시장인 셈이다.

현재 사오싱의 방직 산업은 전통적 형태를 벗어나 현대적 방직 산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 시장 위주에서 해외 시장 개척형으로, 노동 집약적 형태에서 기술 및 자본 집약적인 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국제화되고 고급 기술이 접목된 방직 산업의 부활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한다.

▲ 사오싱의 중국 경방성. ⓒwikimedia.org

저장성엔 이름에 '중국'이 붙은 시장이 또 있다. 전 중국을 통틀어 가장 대표적인 소상품 시장인 '중국 소상품성(中國小商品城)'이 그것이다. 원래 이우(義烏)에 국제상무성을 비롯한 3개의 전문 시장이 있었는데, 이 셋을 합쳐서 '중국 소상품성'을 만들었다. 이 소상품 시장에는 34개 업종, 32만 종류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전 중국 소상품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니 '중국'이란 칭호를 부여할 만하다. 실제로 이우에서 구할 수 없는 소상품은 중국의 다른 곳에서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이우의 소상품 시장은 모든 품목을 망라하고 있다.

이우의 '중국 소상품성'은 국내 및 국제 물류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어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연결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장에 200여 개의 택배 노선을 갖추고 있어 전국 20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를 연결한다. 또 철도, 항공, 고속도로 등의 교통 운수망을 포함하여, 인근 지역의 상하이 국제항, 닝보 국제항 등을 갖추고 있어 상품의 국내, 국제 운송 체제가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우의 상품은 이미 동남아, 중동, 유럽까지 전 세계 180여 개 국가에 판매되고 있다. 수출이 연매출의 50%를 넘어서고 있고, 그중에서도 공예품, 장식품, 안경 등의 수출은 연매출의 70%를 상회한다. 60% 이상의 가게가 수출 업무를 하고 있으며, 이미 5000여 명의 외국 기업들이 이우에 장기거주 하고 있다. 국제적 소상품 시장이라는 칭호가 하나도 부족하지 않다.

항저우의 '사계절 의류 시장(四季青服裝市場)'은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의류 도매 시장이다. 1989년에 세워진 이 시장은 5만여 평방미터의 건축 면적에 3000여 개의 가게가 입주해 있다. 시장 규모, 관리 품질, 시장 효율성 등을 지표로 설정한 '중국 100대 상품 교역 시장' 중에서 37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의류 전문 시장 중에서는 전국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 시장을 중심으로 주변 거리에 온갖 의류 전문 매장들이 형성되고 있어 명실공한 중국 최대의 '의류 전문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하이닝(海宁市) 중국 피혁 시장 역시 명칭에 있는 '중국'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전 중국 최대의 규모와 영향력을 자랑하고 있다. 1994년 설립된 이래 이미 2000여 개의 가게가 성업 중인 이 시장은 전 중국의 피혁 제품 집산지이며 피혁 관련 정보와 유행을 선도하는 피혁 전문 시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원래 하이닝은 중국의 최대 피혁 생산 기지이자 집산지이다. 생산 기지와 시장이 함께 하여 시너지를 발휘함으로써 이제는 중국 최대를 넘어서 세계적인 피혁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저장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때부터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이러한 전통을 바탕으로 현재는 민간 주도의 중소 사영 제조업과 사영 상업이 번창하고 있다. 소자본을 투자해서 소규모 작업장에서 다양한 일상 생활용품을 생산하고 소규모 상점에서 유통시키는 방식은 이미 저장성의 특색으로 자리 잡았다.

원저우를 중심으로 흥성하기 시작한 이와 같은 발전 모델을 우리는 통상 '원저우 모델' 혹은 '저장 모델'이라고 한다. 이 모델은 비록 자본과 기술의 집약, 고효율을 요구하는 대규모 경제로의 발전에 한계를 가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기는 하지만 오늘날 저장성의 균형적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대기업 위주의 발전은 불균형적 발전을 필수적으로 잉태한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중소기업 위주의 발전은 지역 간 계층 간 균형적 발전을 담보한다. 비록 발전의 속도는 대기업에 뒤질 수 있으나 풀뿌리 중소기업은 온 국민이 고르게 부를 경험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제공한다.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 200명 걸러 한 명은 반드시 사장을 하고 있다는 저장성의 중소기업 체제가 부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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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동덕여자대학교 중어중국학과에서 중국 사회를 강의하고 있다. 외교부 재외동포정책 실무위원이며, 동덕여대 한중미래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재중한인연구사업단 단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만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중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이슈뿐만 아니라 조선족 및 재중 한국인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재중 한국인 사회 조사 연구>, <臺灣社會學想像>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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