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트럼프를 좋아해? 미국판 종북몰이!

[정욱식 칼럼] 힐러리냐 트럼프냐보다 중요한 건…

한반도가 "역사상 최악의 레이스"로 불리는 미국 대선의 한복판에 섰다. 사실상 대선 후보로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외교 정책을 둘러싼 날 선 공방을 하면서 한반도 이슈가 뜻밖에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미 동맹이고, 또 하나는 대북 정책이다. 이 둘은 기묘한 화학 작용을 수반하면서 흥미롭고도 우려스러운 양상을 선보이고 있다. 클린턴은 동맹을 강조하면서 '공동의 적'인 북한에 강경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는 동맹에 회의를 품으면서 북한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비호감 3인방과 미국 대선

기묘한 화학 작용은 또 있다.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미국 국민들의 비호감 수준이 가히 '역대급'이다. 이로 인해 이번 미국 대선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덜 싫어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선거"로 불린다.

외국 지도자 가운데에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비호감이 단연 1위다. 미국 방송 CNN이 2014년 12월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84%가 나왔을 정도이다. 그래서 클린턴 캠프는 "김정은과 만나는 건 문제 없다"고 말한 트럼프와 김정은을 엮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선봉에는 클린턴의 외교 분야 총책인 제이크 설리번이 나섰다. 그는 5월 중순 트럼프의 발언을 두고 "가장 가까운 동맹국 지도자를 모욕하고 김정은과는 대화하고 싶다는 것이냐"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김정은과 같은 외국 '스트롱맨'(독재자)들에 기이하게 매료돼 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설리번은 최근에도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발언을 보면, 그는 아시아의 우리 동맹이나 우방보다 김정은으로 하여금 트럼프를 더 좋아하게 만드는 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비난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종북주의자'로 몰고 있는 것이다.

북한도 가세하고 나섰다.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은 한 재중학자의 기고문을 통해 "미국민이 결단코 선택해야 할 후보는 조선반도 핵 문제 해결에서 '이란식 모델'을 적용해보겠다는 우둔한 힐러리보다 조선과의 직접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트럼프라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례적으로 이를 대서특필하면서 '북한이 트럼프를 지지하고 있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연합뉴스

MD냐, 대화냐?

대북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클린턴의 외교 연설을 계기로 2라운드로 접어들고 있다. 그는 "트럼프는 대통령의 자질이 없다"며 대표적인 이유로 북한을 들었다. "미국을 향해 핵무기를 탑재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가학적 독재자가 이끄는, 지구상의 가장 억압적 국가인 북한에 의한 위협을 생각해보라"며, 김정은을 상대하는 방법은 대화보다는 미사일 방어 체제(MD)를 비롯한 "동맹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는 클린턴의 연설 직후, "그들은 북한과 협상하는 것이 꺼려지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대화 용의를 거듭 확인했다. 또한 "(대화가) 효과를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진실을 알고 싶다면 아마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러한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대북 정책이 본격적으로 미국 정계에 등장한 시점은 핵 문제가 대두된 1990년대 초반이었다. 당시 민주당 정권이었던 빌 클린턴 행정부는 냉‧온탕을 오가면서도 결국 북한과 제네바 합의를 맺었다. 반면 공화당은 이를 "악행에 대한 보상"이라고 맹폭을 가하면서 북한을 상대하는 방법은 MD에 있다고 주장했다.

2000년 대선은 그 결정판이었다. 당시 부통령이자 민주당 후보였던 앨 고어는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반면 조지 W. 부시 캠프는 제네바 합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북한의 위협에 맞서 MD를 조속히 구축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대선에서 승리한 부시는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하고 MD 구축을 선언했다.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부르면서 선제공격 및 정권교체 대상에 올려놓았다. 이에 맞서 북한이 핵 카드를 다시 꺼내 들면서 제네바 합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선 후보 때 북한 지도자와도 만나겠다고 말한 사람은 버락 오바마가 처음이었다. 그러자 2008년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캠프는 오바마의 외교 정책을 "순진하다"고 공격했다. 오늘날 클린턴과 트럼프의 공수 관계와 완전히 뒤바뀐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북한과의 정상 회담은 고사하고 6자 회담도 열지 못한 채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다. '오바마 패러독스'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이다. 반면 1기 때(2001~2004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불렀던 부시는 2기 때(2005~2008년)에는 북한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이것 역시 '부시의 패러독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렇게 놓고 보면 클린턴의 대북 정책은 부시 행정부 1기를 계승하겠다는 것이고,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부시 2기를 계승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부시와 오바마의 '크로스'에서 볼 수 있듯이, '대선 후보의 공약'은 '대통령의 정책'과는 별개일 수 있다. 그래서 클린턴이 하는 말도, 트럼프가 하는 말도 하나의 참고일 뿐이다.

하여 중요한 게 한국의 정치 리더십이다. 냉‧온탕을 오가던 빌 클린턴을 포용 정책으로 인도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북한과 절대로 대화하지 않겠다던 부시의 마음을 돌리는 데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반면 오바마가 '전략적 인내'라는 무위의 대북 정책으로 지속적으로 후퇴한 데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세계 최강국이자 유일한 동맹국이며 한반도 문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나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국민이 문제를 풀려고 하는 의지와 실력을 갖춘 정치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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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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