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장관 "제가 가습기 살균제 환자들 왜 만나나"

여야 의원들, 정부에 책임감 촉구…"제도 미비만 탓하는 게 정부 일이냐"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환경부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았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정부가 문제의 화학물질에 대해 적절한 규제를 못한 데 대해, 물질 도입 당시의 제도 미비를 이유로 들어 여야 의원들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았다. 윤 장관은 결국 "법제 미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책음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11일 환노위 현안보고 모두 발언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장삿속만 챙기는 상혼과 제품 안전관리 법제 미비가 중첩되면서 있어서는 안 될 대규모 인명 살상 사고가 빚어졌다"며 "피해자와 가족들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진력하고 있으나 그 분들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 장관은 향후 대책에 대해 "피해 조사 기관을 국립의료원 등으로 확대해 3·4차 피해 신청자에 대한 조사 판정을 내년 말까지 앞당겨 마무리짓겠다"며 "장기 손상 등에 대한 인과관계 규명 연구를 추진해 피해 진단 및 판정 기준을 마련하고, 피해 판정을 거쳐 지원하겠다"고 했다.

윤 장관은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제품이 시장에 유통된 이후라도 안전관리 법제를 선진화하고, 원인미상 폐 질환 발생시 보다 광범위하게 인과관계를 조사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막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법제 미비에 선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을 뿐 정부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환노위원인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윤 장관과의 질의응답 도중에는 이런 대화가 오가기도 했다.

심상정 : (해당 물질의 위험성은) 하룻밤만 보면 분석할 수 있는데 왜 3년 동안 해결되지 않았느냐?

윤성규 : 2014년 7월부터 176명(피해자)을 대상으로 1~3단계 조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건 전문가들의 영역이기 때문에 제가 책상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다.

심상정 : 그건 전문가 영역이면, (장관은) 도대체 뭐 했나. 환자들은 만나러 다니셨어요?

윤성규 : 아니 왜 제가 만나야 되느냐. 의사가 만나(야 하)고….

윤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과거 기획재정부가 환경부에 보낸 자료를 보면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 개입은 부적절하다'고 했는데 맞는 얘기냐"고 물은 데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틀리지 않은데…"라고 답하기도 했다.

우 의원이 "PHMG 같은 경우 이게 항균 카페트 첨가제이기 때문에 위험물이 아니라고 (환경부는) 판단했다는 것인데, 흡입이 가능한 경우를 당연히 판단해서 실험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윤 장관은 "(기존에 도입된 물질의) 용도가 바뀌었는데 (추가 위험성 검증이) 안 된 부분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기존의 '유해 화학물질 관리법'에는 그런 조항이 없고 (2015년 도입된)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에 '용도를 바꾸면 심사를 받게 하는' 조항이 최초로 들어가 있다. 과거에 그런 조항이 없다 보니까…"라고 해명했다.

우 의원은 이어 2003년 공업용 항균제 용도로 PGH가 국내에 도입됐을 때부터 이 물질이 스프레이 형태로 쓰인 만큼, 당초부터 이 물질을 폐로 흡입했을 경우의 위험성도 검증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윤 장관은 "(검사 당시) 자료를 보면 호흡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없다"며 PGH가 스프레이 형태로 쓰이는 것은 이 물질을 고무·목재 등에 사용하기 위해 작업장(공장) 내에서만 발생하는 특수한 상황에서만이라고 피해 갔다. 공교롭게도 윤 장관이 이날 현안 보고를 한 국회 상임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다. 우 의원이 재차 "그럼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PGH를 기체 형태로 들이)맡지 않느냐"고 따져 묻자 윤 장관은 "그건 작업자이기 때문에 노동부에 그것(단속 권한)이 있다"며 "작업자는 노동관계법에서 보호를 받는다. 작업장(환경)은 일반 환경과 다르다"고 다시 빠져나갔다.

이런 윤 장관의 태도에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적극적인 책임감 표명을 당부했다. 우 의원은 답답한 듯 "환경장관이 '정말 죄송하게 됐다'고 얘기해야 할 때인데 아직도 그런 자의적 해석만 하고 있다"며 "제도 불비(不備, 갖추어지지 않음)라는 이유로 국민이 죽었는데 핑계만 대면 되겠나"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민주 한정애 의원도 "개인이 아니라 환경부 장관으로서 사과하시라. 왜 사과를 못 하느냐"고 따졌고,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도 "환경부는 원론적 얘기만 하고 있다"며 "과거 제도가 미비했다는 얘기만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해서 지금 국민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윤 장관은 이들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대해 "법적 문제를 떠나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미 그런(사과) 취지의 말씀을 드렸다"고만 했다.

심상정 대표는 그러나 "다른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지만,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라며 "환경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모두 직무유기이고 축소 은폐한 것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를 해야 한다.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몰아쳤다. 윤 장관은 "(정부의 축소 은폐 부분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날 현안보고에서 더민주 장하나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독성이 태아의 폐 기능에도 악영향을 미친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2014년 4월∼10월(2차) 조사에서 피해 인정을 받은 30명 중 3명이 태아 시기에 가습기살균제로 폐질환 등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임신 중 태아가 사망한 사례도 상당수 있었다. 태아 피해에 적합한 피해 신청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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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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