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왜 북한과 협상을 마다하나"

[해외시각] 협상은 가능하다, 상대가 북한일지라도!

3월과 4월 한반도를 엄습했던 위기 국면은 해소 조짐 없이 5월을 맞고 있다. 북한은 유례없는 '속도전적 무기 공개'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고, 미국은 '유례없는' 대북 제재를 강행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는 미국 고위 관리조차 인정하는 분위기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4월 21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스탠포드 대학에서 "전쟁은 엄청난 일이며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하는 것은 우리(미국)에나 한국에나 일본에나 지역에나 여전히 절대적 우선순위"라고 토로했다.

위기 국면을 해소하자는 다양한 의견들이 미국에서 제시되고 있다. 1999년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았던 윌리엄 페리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2일 미국의소리(VOA)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추가하지 않고, 핵무기 성능을 개선하지 않으며, 외국에 핵무기와 기술 이전을 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3NO 원칙'에 입각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대북협상파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4월 27일, 미국의 대외정책을 다루는 <포린폴리시>는 "You Can Negotiate Anything – Even North Korea(무엇이든 협상할 수 있다 - 심지어 북한이라 할지라도)"라는 제목의 조엘 위트의 글을 실었다. 조엘 위트는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서 채택 당시 대북 협상에 직접 참여했던 미국 외교관이다. 연일 언론에 등장하는 <38노스>라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 운영자이기도 하다.

조엘 위트는 이 글에서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이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성과를 낸 반면 현재의 오바마 정부는 1990년 북미 협상의 교훈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여전히 미국은 북한과 협상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지금처럼 '포용 불가, 교훈 불가' 원칙을 고사한다면 그같은 기회는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원문보기)

(이 글은 장창준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외래교수가 번역, 정리했습니다.)

▲ 지난 1월 6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를 통해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리춘희 아나운서 ⓒAP=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월 4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그 이후 우려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을 멈추려는 미국 정부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논쟁이 확산되고 있다. 더욱 최근에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배치로 발전할 것이 확실해 보이는 로켓 장치를 시험했고, 새로운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s,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까지 발사했다. 평양이 5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說)까지 나돌고 있다.

점증하는 위협을 중단하기 위한 지난 20년 간의 미국의 노력은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는가?

지난 20년 동안 미국 정부의 관리로, 싱크탱크 연구원으로 그리고 학자로 일해 오면서 나는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려는 미국의 노력과 관련한 끝없는 논쟁에 개입해왔다. 수십년 동안 양보하고 끊임없이 실패한 역사가 있지만, 나와 같이 미국이 효과적으로 일을 한다면 여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보다 낙관적인 견해도 있다. 만약 미국이 미래에 북한 핵 무기 프로그램 중단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아보려 한다면, 북핵 외교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미국 정책이 실패했다는 너무나 명백한 현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이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심각한 이해관계를 갖기 시작했을 때 북한은 핵무기도, 핵무기의 재료인 핵 분열 물질도, 그것을 운반할 장거리 미사일도 갖고 있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그같은 상황은 계속되었다.

오늘날 북한은 20개 정도의 핵무기를 갖고 있고, 더 많은 무기를 만들어낼 분열 물질을 생산하고 있으며, 4차례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같은 무기를 실어나를 수 있는 로켓 시험도 6차례 있었다. 호전적인 김정은 정부는 수만 명의 주한, 주일 미군을 포함해 동북아시아에 위협이 되고 있으며, 미국과 국제사회까지 위협하고 있다.

왜 이같은 상황이 발생했는가? 북한은 이해할 수 없는 '은둔 왕국'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같은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저서들이 존재한다. 전직 미국 정보분석관 로버트 칼린이 개정한 돈 오버도퍼의 <투 코리아>는 북핵 문제의 고전이다. 부시 행정부의 북한에 대한 정책을 다루고 있는 마이크 치노이와 글렌 케슬러의 저서도 있다.

그리고 내가 다니얼 폰먼, 로버트 갈루치와 함께 작성한 <북핵 위기의 전말>이라는 책도 있다. 이 책은 1990년대 초반 미국과 워싱턴의 대결을 이해하는 데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의 책은 아직까지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은, 미국 정부의 문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것이었다.

북미 협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증거물 A'는 1994년 북미 기본 합의서이다. 나 역시 이 합의서가 나오는 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는데, 합의서에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점이 명시돼있다.

이 합의서는 오늘날 이른바 '불량 국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반면교사로 평가되기도 한다. 기본합의서의 실패를 명분삼아 이란과의 핵 협상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기본합의서를 채택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아내라는 이유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장관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당시 중간급 관리에 지나지 않았던 나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2015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마크 커크는 존 케리 국무 장관에게 내가 15억 달러에 달하는 원자로 프로젝트의 자금을 내 개인 계좌로 돌렸다고 말한 바 있다. 케리는 어리둥절해 했다.

▲ 제네바합의 당시 미국측 수석대표였던 R.갈루치(왼쪽) 대사와 북한측 수석대표였던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 ⓒ연합뉴스
북한이건, 이란이건 혹은 소련이건 간에 불량 국가와 대화는 안 된다는 정치적 어젠다가 존재한다. 그러나 워싱턴은 냉전 시기에 소련과 충분한 대화를 하지 않았고, 오늘날 그것이 실수였다는 것은 상식에 해당한다. 최근 이란과의 핵 협상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실수였는지 아닌지를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그러나 그 정치적 어젠다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북한의 경우에 있어, 클린턴 정부의 대북 정책은 비록 완전하지는 않았더라도 성공적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본 합의서를 만들어 냈던 장기간에 걸친 대화에 단지 외교관만 관여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잊어버렸다.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북한의 핵 폐기에 모든 수단을 사용했던 클린턴 정부의 노력의 결과였다.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하고, 우리의 노력을 지지하라고 중국에게 요청하고, 국제적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고, 북한과 진지한 협상을 하고, 심지어 북한이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려 할 때 북핵 개발의 주요 시설을 크루즈 미사일을 이용해 외과 수술식 타격을 가할 준비까지 했다.

제네바 기본합의서 그 자체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 합의서의 효력은 작동하고 있었다. 1960년대 이후 가동되고 있었던 북한의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은 1990년대 초반 중단됐다. 클린턴 정부 초기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이 2000년대 초반,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의 30배에 달하는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이같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인공위성 정밀 사진을 포함하여 신뢰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취합했다. 그러나 북한 영변의 주요 핵시설에 대한 상업용 위성의 사진은 북한 핵 문제의 일면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미국의 정부 관리로서, 미국 시민으로서 나는 1996년을 시작으로 2008년까지 북한의 핵 시설을 총 5차례 방문했다. 북한의 시설들은 내가 예전에 소련에서 보았던, 1950~60년대의 기술에 기초한 시설과 비슷해 보였다. 그것은 분명히 사용 후 연료봉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축구장 크기만한 시설인 방사 화학 실험실이었다. 플루토늄 생산 원자로(흑연감속로-역자 주)의 통제실은 저렴한 1950년대 할리우드 SF 영화 세트를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외관과는 다르게 모든 시설들은 작동하고 있었고, 경고 효과를 갖고 있었다.

1994년 합의 때문에, 미국은 미 정보국이 예견했던 위험한 미래를 회피할 수 있었다. 나와 동료들이 합의서의 이행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북한은 흑연감속로의 작동을 멈추고 미국이 플루토늄을 안전한 장소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 뿐 아니라 핵시설을 추가로 건설하던 작업도 중단시켰다.

북한은 핵시설을 추가하려는 작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기본 합의서에 의해 결국 해체돼야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이같은 시설들은 필요 없는 쓰레기 더미가 되었고, 결국 버려졌다. 합의가 완전히 이행되기도 전에 무너져버렸던 2002년, 평양은 단지 소량의 분열 물질을 확보하고 있는 정도였다. 만약 합의서가 없었다면 전혀 달랐을 것이다. 이것은 제네바 기본 합의서가 충분히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력 생산이 목적이지만, 가동된다면 핵무기를 만드는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도 있는 대형 원자로는 원래 1990년대 후반까지 완공되는 것으로 계획돼 있었다. 그 대신 그것은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 더미가 돼버렸다. (제네바 합의 때문에 원자로 건설이 중단됐고 결국 원자로는 쓰레기 더미가 돼버렸다는 의미-역자 주)

북한이 기본합의서를 어기면서 무기급 우라늄을 비밀리에 생산해 왔기 때문에 기본합의서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데 실패했다는 비판은, 사실관계의 측면에서는 맞지만 결과적 측면에서는 맞지 않다.

북한은 1990년대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한 자그마한 노력을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북한은 농축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소량의 농축 우라늄을 수입했다. 그런데 왜 그들이 많은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분열성 물질 생산과는 거리가 먼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작했을까?

우라늄 개발이 제네바 실패의 근거라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 북한은 제네바 기본 합의서가 붕괴된 이후 10년은 족히 넘은 최근에 와서야 무기급 우라늄을 생산했다. 만약 제네바 합의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 보라.

물론 오늘날 미국은 1994년 당시보다 더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은 더욱 발전했다. 그리고 북한의 지도자는 대화에 관심이 없으며 더욱 예측 불가능하다.

이같은 사실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현재의 위기 상황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클린턴 정부가 완벽하지 않았다면 오바마 정부는 심지어 1990년대의 교훈, 즉 거친 조치와 진중한 외교를 사용하려 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여전히 일할 기회를 갖고 있다. 불행하게도, 만약 미국의 정책이 '포용 불가, 교훈 불가'(no hugging, no learning, 북한을 포용하지도 않고, 과거의 북핵 협상에서 어떤 교훈도 찾지 않겠다는 뜻-역자 주) 원칙에 지배받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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