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과는 동맹국이며, 북한과는 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언론보도는 미국이 흘리고 있는 북한 핵개발 관련 정보를 받아쓰기에 바쁘지, 왜 북한이 최근의 동북아 화해무드 속에서 북미관계를 냉각시킬 것이 명약관화한 핵개발 계획 시인이라는 카드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해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1일 ‘북한에겐 미국이 합의 파괴자(For North Korea, U.S. is Violator of Accords)’라는 해설기사를 통해 평양의 핵개발 시인을 어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할지를 분석했다. WP가 북한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번 북미대화는 미국에 대한 대화재개 요청이라는 것이며, 적대관계 창산 및 경제ㆍ외교 관계 정상화를 골자로 하는 제네바합의를 먼저 파기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것이다.
신문은 ‘다른 관점에서 본 분석’이라는 전제하에 북한은 미국이 수시로 합의를 반복 파기했으며, 북한을 공격하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고, 북미간 관계개선을 희망하는 북한측의 대화요청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WP는 “북한의 반응이나 북한 전문가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이같은 관점은 미국에서 받아들이기엔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볼 수 있지만 평양의 수수께끼 같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WP가 전하는 북한의 입장을 살펴보자.
***북한에겐 미국이 합의 파괴자(For North Korea, U.S. is Violator of Accords)**
워싱턴은 지난 주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에너지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고 폭로하면서 이는 미국과 맺은 94년 제네바합의에 대한 뻔뻔스런 파기라고 지적했다. 이 뉴스는 국제사회에 큰 동요를 불러일으켰으며 지난 94년 동일 이슈로 전쟁 일보 직전에 도달했던 상황을 재연시켰다. 이 사건은 또 북한이 노력중인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10월 초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특사는 북한이 94년 제네바합의를 위반했다는 자신의 지적에 대해 크게 화를 냈다고 말했다.
북한은 사실 오랫동안 합의를 파괴한 주범은 미국이라고 여겨왔다. 북한 관점에서 볼 때 제네바합의의 핵심은 미국이 북에 대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외교적 경제적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 있다.
수년간 북한은 워싱턴이 양국간 합의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크게 불평해 왔다. 북한의 문제제기는 자가당착적인 측면도 있으나 일리 있는 지적이며, 특히 제네바합의에 의해 구성된 국제컨소시엄의 관리들조차 인정할 만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찰스 카트먼 한반도에너지기구(KEDO) 사무총장은 “제네바합의의 내적 논리에는 북미간 관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고 말했다. 카트먼 사무총장은 올해 초 뉴욕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러나 특히 (부시 정권 출범 후) 지난 2년간을 돌이켜보면 관계개선은 고사하고 더 악화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워싱턴의 직무유기로 합의가 실패했다는 북한의 불만제기가 있었다.
제네바합의에 따른 1차 경수로 건설은 애초 2003년 완공이 목표였으나 워싱턴내의 경수로 프로젝트에 대한 논란과 북한이 제공한 장애들로 인해 적어도 6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한 상태다. 하지만 경수로 건설지연에 대한 공동의 책임은 북한 관리들의 ‘미국의 약속파기로 북한의 에너지난이 가중됐다’는 성난 비난을 잠재우지 못했다.
북한 관리들의 미국 비판은 워싱턴이 합의에 따라 매년 50만톤의 중유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종종 북한의 비난은 핵무기를 생산할 수도 있다는 경고와 동반됐다.
핵무기 생산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또한 북한이 미국의 위협에 처해있으며 핵무기외에는 아무도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다는 오랜 신념에서 비롯됐다. 미국에게 북한이 미국 자신에게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동북아시아 안정을 해치는 적대국가이듯이 북한에게 미국은 정반대의 존재다. 북한은 미국이 북한 전체의 붕괴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초강대 적국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한과 협상을 담당했던 카트먼 사무총장은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와 주권이 미국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고 믿는다. 북한과의 협상과정에서 그들은 끝없이 경제적 교살, 정치적 교살 등 교살이란 단어를 반복했다”고 말했다.
북한문제에 대한 베테랑 전문가들은 북한 관리들이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혹은 북한 전복기도를 강하게 믿고 있다고 말한다. 이같은 분석은 미국 우월주의적 사고에 젖어있는 사람들의 관점은 아니다. 하지만 고립된 평양의 시각에서 보면 충분한 근거가 있는 분석이다.
즉 미국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과 싸웠으며 해외주둔군 중 가장 큰 규모의 부대를 (남한에) 유지한 채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과 마주 보고 있다. 미국은 1968년 북한에 포획된 푸에블로호와 같은 간첩선을 갖고 있으며 위성을 통해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 국가의 일원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의 수사학은 북한의 편집증에 불을 붙였다.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수사학이 미국의 의지와 맞물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발칸반도 등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을 보며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관점은 켈리 특사의 방북중 제기된 북한의 세 가지 요구중 두 가지를 통해 증명된다. 켈리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은 미국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고 북한 정권을 인정할 경우 핵개발 프로그램을 포기하겠다고 제안했다고 확인했다.
세 번 째 조건은 북한을 세운 김일성과 현 지도자 김정일의 오랜 숙원인 북미간 평화조약 체결이다. 이들 부자 독재자들은 미국의 북한의 경제적 생존을 좌우하는 열쇠를 갖고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이들은 때로는 거칠고 허풍떠는 방법을 동원해 미국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들의 권력을 인정해주는 합의에 도달하기를 간청해왔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 것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으며 이를 워싱턴이 북한을 적대하는 증거라고 보았다.
클린턴 행정부는 뒤늦게 북한과의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으며 이는 빠른 진전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북한은 그 때부터 핵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미국 사찰단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동결했다.
부시 행정부는 집권 후 이같은 진전을 회의적으로 판단했으며 북한의 (합의) 파기는 자신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클린턴 당시의 방법이 옳았다는 사람들은 부시가 전임자의 길을 좇았다면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본 분석가인 도시미츠 시게무라 교수(타쿠쇼쿠대 국제관계학)는 북한은 다시 미국과의 대화재개를 시도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시인한 이유는 미국을 협상테이불로 돌아오게 하고 관계진전을 위한 길을 놓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판단이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부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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