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미국의 입장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다. 협의 공식화를 발표할 때에는 사드 배치를 전제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중국의 동참을 이끌어내고 핵 안보 정상 회의에 시진핑 중국 주석의 참석을 요청할 때에는 '톤 다운'에 들어갔었다. "한국과 사드 배치를 협의하기로 한 것이지, 한반도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것은 없다"는 해리 해리스 태평양 사령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또다시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고 한다. 애쉬턴 카터 국방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4월 8일 한국 내 사드 배치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곧 이뤄질 것(it’s gonna happen)"이라고 답했다. "사드 배치는 필요한 것이고 이건 미국과 한국 사이의 문제이지 중국과는 무관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에 앞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워싱턴에서 열린 핵 안보 정상 회의 일정 사이에 가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에서 사드 배치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카터의 발언은 중국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드 배치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로 읽힌다.
실제로 미국 군부와 행정부는 카터의 발언을 전후해 "사드 및 레이더는 중국을 겨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의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의 반대 입장은 오히려 더 굳건해지고 있다.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만큼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결기마저 읽힌다.
"생산 중"에서 5개 포대로
미국 군부가 한국을 최우선적인 지역으로 삼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그동안 사드 포대는 제한되어 있는 반면에, 여러 곳에서 사드를 보내달라는 요구는 많았었다. 유럽을 작전권에 두고 있는 유럽 사령부, 중동을 관할하는 중부 사령부,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 정부까지 사드 배치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미 육군 '우주 및 미사일 방어 사령부' 사령관인 데이비드 만(David Mann) 중장은 이러한 내용을 소개하면서도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반면 그는 북한의 미사일 배치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한국 내 사드 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하듯, 브라이언 매키언 미 국방부 수석 부차관은 4월 14일 의회 청문회에서 "그동안 부지 선정과 비용 문제를 알아보는 회의가 한국에서 몇 차례 있었다"며, "우리가 시간표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결론에 도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내 사드 배치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는 사드 '물량'이다. 사드 논란이 한참 거셌던 2014년 10월 애쉬턴 카터는 "사드는 생산 중"이라는 말로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당시 사드 포대는 3개가 있었는데, 1개 포대는 괌에 배치되었고 2개 포대는 미국 본토에 있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싶어도 갖다놓을 사드가 없었다.
그런데 1년 반 사이에 양상이 달라졌다. 올해 내로 "작전 가능한" 사드 포대가 5개로 늘어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 배치할 여력이 생기게 된다. 여력만 생긴 게 아니다. 미국 군산 복합체의 입장에선 그 필요도 절박해졌다. 당초 미 육군과 록히드마틴은 2020년까지 9개 포대를 희망했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7개 포대 예산만 승인했다. 이에 따라 군산 복합체로서는 한국에 조속히 사드를 배치해야 추가적인 생산 및 획득이 가능해진다.
'탈정치화' 된 사드
이렇듯 최근 미국 내에선 사드 배치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선 일단 '탈정치화'된 것이 주목된다. 2월까지만 해도 새누리당 중진급 의원들은 사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배치를 강하게 주장했었다. 그런데 3월부터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한국에 사드 배치는 찬성, 하지만 내 지역구 배치는 곤란'이라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활동이 가장 활발했었다. 김정은이 직접 나서 핵탄두 소형화와 다종·다양한 핵 투발 수단을 선보였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민심을 의식한 사드 배치 찬성파 의원들은 일제히 꼬리를 내렸다.
정부 여당의 참패로 귀결된 이번 총선이 사드 논의에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 어렵다. 매키언 펜타곤 부차관은 "총선 결과가 상황을 바꿀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총선이 사드 배치론에 미칠 영향을 경계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안보 문제와 관련해 '우클릭' 행보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사드 배치와 관련해 반대 입장을 내놓을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야권이 그토록 강조하는 '먹고사는 문제 해결'은 사드 배치와 양립할 수 없다. 사드를 사활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중국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관계도 더욱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군비경쟁도 더욱 격화될 것이다.
한국 경제의 유력한 희망 가운데 하나가 북방 경제에 있다면, 사드 배치로 인한 동북아 신냉전 격화는 반드시 피해야 할 악수(惡手)이다. 미국발 사드 태풍이 더욱 커지기 전에 이를 잠재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일 외교 안보 문제에 대한 야권의 지혜와 실력도 강해져야 한다. 이를 외면하는 한, 경제 살리기도 다람쥐 쳇바퀴 도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한국이 '지정학적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지경학적 기회는 영영 우리를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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