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고', 박근혜 안 바뀐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배수진 친 대북정책, '유턴' 쉽지 않아"

13일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제1당을 차지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여당의 참패였다.

이번 선거는 소위 '일여다야'의 구도 속에 기본적으로 여당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박근혜 정부는 승부에 쐐기를 박으려는 듯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을 서둘러 공개했고, 북한군 대좌의 탈북 사실도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여당이 원하는 이른바 '북풍'은 선거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정세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의 최고치를 100이라고 할 때 국민은 이미 80 정도가 돼 있는데, 북풍을 띄워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20~30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일각에서는 개성공단 폐쇄를 비롯해 북한으로 가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일정한 변화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항상 배수진을 치고 나왔다"면서 당분간은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개성공단 재개나 확성기 방송 중지 같은 조치는 취하기가 어렵다. 명분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을 보더라도 갑자기 대북정책 방향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은 소위 '못 먹어도 고(go)'하는 스타일이다. 본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향을 바꾸거나 유턴할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미국과 북한은 또 한 번 서로의 의중을 떠보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1일 G7 외교장관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과 '불가침조약'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고, 리수용 북한 외무상은 20일 뉴욕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은 뉴욕에서 미국과 조우하는 그림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이 응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리수용 외무상과 미국이 만나서 모종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면 5월 당 대회 전까지 북한은 군사적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리 외무상의 미국 방문이 현재 상황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면서 "미국이 리 외무상에게 서로 필요한 의견 교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정도의 메시지만 보내준다면 당분간 북한의 돌발 행동 없이 현상 유지 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으로 올라섰고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이 되면서 그동안 악화 일로를 걸어왔던 남북관계에도 일정한 영향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세현 : 안타깝지만 이번 총선이 남북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겁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계속 배수진을 치고 나왔습니다. 다시 돌아가려면 대단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물론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고 6자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다면 박근혜 정부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개나 확성기 방송 중지 같은 조치는 취하기 어려울 겁니다. 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소위 '못 먹어도 고(go)'하는 스타일입니다. 총선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데도 청와대에서 나온 메시지는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 국민의 이러한 요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였습니다. "겸허하게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겠다" 이런 말은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박 대통령은 삼권분립의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국회까지 자기 뜻대로 할 것을 지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향을 바꾸거나 유턴할 생각이 없을 겁니다.

프레시안 : 총선 직전에 정부에서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탈북을 섣불리 공개했고 북한군 대좌 망명을 인정하는 등 이른바 '북풍' 몰이에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번 선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정세현 : 국민들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갔고 선거 때마다 항상 북한 변수가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이 대형 사고를 치지 않는 한 소위 '북풍'이 국내 선거 정국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북풍을 띄워보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정세를 읽고 판단하는 능력의 최고치를 100이라고 할 때 국민은 이미 80 정도가 돼 있는데, 이런 공작을 하는 사람들은 20~30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보다도 못한 시대 인식 수준과 분석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 한국으로 입국한 북한 식당 탈북자들 ⓒ통일부

프레시안 :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당시 천안함 사건 이후 이에 대한 대응으로 5.24 조치가 나왔습니다. 안보 정국 속에 여당이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고 실제 그런 예상을 반영한 여론조사가 나왔죠. 그런데 막상 결과는 이러한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북풍이 오히려 역풍을 맞았는데요. 이번도 북풍이 전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국내 사회·경제적인 상황이 워낙 악화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북풍이 통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국민들이 아예 북한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북핵이나 인권 등 북한과 관련한 사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이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 문제가 우리나라 정치 의제에서 사라져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정세현 :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북한이나 통일 문제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점점 나이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20~40대의 젊은 층은 별로 관심이 없어요. 분단 직후였다면 통일이 전 국민적 사안이었겠지만 이미 70년이나 지났습니다. 통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것도 아닌 상태로 70년이 흐르면서 이제는 통일이 되지 않아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퍼졌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분단 비용 문제 때문에 분단보다는 통일의 편익이 크다고 합니다. 통일에도 비용이 들어가긴 하지만 분단 비용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통일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을 일반 국민들이 실감을 하지 못하는 겁니다.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이죠.

한반도의 안보 상황도 북한 문제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현재 남북은 '공포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즉 사실상 군사적인 균형이 이뤄진 상태입니다. 서로가 군사력을 먼저 쓸 수 없는 상호 억지 효과가 워낙 커지다 보니 전쟁이 날 가능성도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야 합니다. 전쟁 가능성을 이야기해봐야 씨알도 안 먹히는 거죠.

여기에 남북관계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입니다. 예전처럼 금강산도 가고 민간단체 주도로 다양한 교류가 이뤄지고 하면 북한에 대해 호기심이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여지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렇다 보니 젊은층 입장에서 북한 사안은 '나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 돼버렸습니다.

물론 대선에서는 통일·외교·안보 문제가 이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민생 문제와 비교했을 때는 비중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민생문제와 통일·외교·안보 이슈의 비중을 7대 3정도라고 해도 많이 본겁니다.

2007년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맞서서 꺼낸 카드가 '개성 동영'이었습니다. 이명박 후보가 '청계천 명박'이라면서 청계천 개발을 성과로 내놓자 여기에 맞대응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개성공단을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겠다는 계산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한나라당에서 경제로 치고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 이슈로 맞불을 놓으면 무조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명박식의 경제는 서민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면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전략을 세웠어야 맞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통일·외교·안보 문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어필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국민들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국가적인 어젠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들한테 "이게 중요한데 왜 이렇게 관심이 없냐"라고 이야기해봐야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는 정책을 잘 수립해서 추진하고 그 성과를 국민들에게 안겨주는 방식이 돼야 합니다. 통일·외교·안보 부문 공약으로 지지를 받으려는 것은 번지수가 틀린 일이라고 봅니다.

프레시안 : 2012년 대선 전에 백낙청 선생님이 강조하셨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지난 1971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가 제시한 소련, 중국의 남한 수교 및 미국과 일본의 북한 수교, 즉 4대국 교차 승인과 '3단계 평화통일 방안' 등에 맞먹을 정도의 대담한 남북관계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 한 야당이 이기기는 힘들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했을 때는 정권으로부터 강한 공격을 받을 정도로 획기적이었습니다. 그거 때문에 소위 '빨갱이' 딱지가 붙기도 했죠.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은 국제정세가 돌아가는 것을 빨리 읽어낸 결과였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접근하고 미국과 소련이 소위 '데탕트'를 이루고 있었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빼려고 하는 시도를 하고 있었죠. 그런 국제적인 정세를 알고 4대국 교차 승인론과 같은 공약을 내놓은 겁니다.

그런데 지금 국제정세는 그때와는 다릅니다. 당시가 '해빙기' 였다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의 각축이 시작되는 암흑기, 갈등기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미국과 소련의 화해 흐름에 올라타자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화해의 흐름 자체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부딪히고, 미국은 일본까지 앞세워서 남중국해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이런 국제적인 상황에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그렇게 획기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우리가 여기서 피해를 적게 입는 방법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서 한반도의 문제를 주변 4국이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입지를 키워 놓는 것입니다. 어떤 대선 주자도 이 이상의 이야기를 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국민들의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려는 지도자들은 본인들의 중요한 책무로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통일·외교·안보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라서 때로는 공식적으로 공개하는 방향과 실제 전략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선이라는 선거 국면에서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이슈화시키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한다고 하면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집권 이후에 어떻게 제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전략을 개발하는 것 정도일 겁니다. 큰 방향이나 윤곽은 이야기하겠지만 이 분야에서 획기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투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리고 동북아 정세를 봤을 때 우리가 북한과 관계개선을 하는 것도 그렇게 쉬운 상황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북한이라는 레버리지를 써서 중국을 압박해야 합니다. 그 핑계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도 갖다 놓으려 합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갑자기 좋아지면 동북아 전략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니까 남북관계 개선에 미국의 협조를 받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남북이 그 틈을 뚫고 군사적 긴장을 최소화하면서 적절한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참 좋은 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대선 후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으려면 한두 시간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아예 맡길 수 있는 참모가 있든지,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오랜 시간 동안 이 문제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확실하게 방향성을 정하고 거기에 참모가 맞춰주든지, 아니면 통찰력이 있고 성실한 참모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그 참모가 실질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줘야 합니다.

'불가침조약' 꺼낸 케리, 속내는

프레시안 :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일 G7 외교장관 회담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상호 불가침조약을 포함한 평화협정을 논의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진정성이 있는 발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불가침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니까 평화협정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적대하지 않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무의미한 발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케리 장관이 말하는 비핵화가 북한이나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의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만의 비핵화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면 북한이 회담에 응해 나오지 않거든요.

또 북한만의 비핵화와 불가침조약을 교환하면 중국의 입장이 좀 옹색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1953년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맺자고 말하는 것은, 그 협정의 협상에서부터 서명까지 중국이 당사자로 들어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일대일로 이 사안을 다루거나 한반도에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취지로 접근을 하고 있는 건데, 미국과 북한이 불가침조약을 맺어버리면 중국의 입지가 축소될 수 있습니다.

▲ 지난 11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외교장관 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가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프레시안 : 케리의 발언이 자신들이 주도권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분석도 있던데요.

정세현 : 그런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지난 2월 17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병행해서 추진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왕이 이니셔티브'라고 하는데요, 그러자 케리 장관이 이번에는 불가침조약을 꺼냈습니다. 이는 '왕이 이니셔티브'에 끌려가지 않고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기 싸움'일 수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북한이 사고 치기 전에 예방하려는 차원도 있습니다. 5월 초에 열릴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5차 핵실험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 북한이 원하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북한이 또 벼랑 끝 전술을 써서 사태가 악화되면 미국의 입장도 어려워집니다. 동아시아에서의 상황 관리 책임을 지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사태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에 희망적인 메시지를 줘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 메시지가 나름 효과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했지만 실패한 것 외에 태양절에 별다른 군사적 행태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핵 실험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세현 : 북한이 발사에 실패한 미사일이 무수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북한은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또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리수용 외무상이 조만간 미국에 가기 때문에 자제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뉴욕에서 미국과 조우하는 그림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미국이 과연 응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리수용 외무상과 미국이 만나서 모종의 메시지를 주고받는다면 5월 당 대회 전까지 북한은 군사적인 행동을 자제할 것입니다.

결국 리 외무상의 미국 방문이 현재 상황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습니다. 리 외무상이 직접 케리 장관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아닐지라도, 가령 미국이 "(케리) 국무장관의 말을 흘려듣지 마라, 좋은 메시지가 있으니까 새겨듣고 필요하면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북한에 말해준다면 북한의 돌발 행동 없이 현상유지 정도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제재를 시작한 지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지만 지금 이렇다 할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제재 효과가 나고 있다면서 마치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탈북이 제재 효과의 물증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객관적으로 볼 때는 제재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효과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처럼 목소리만 높여서는 소용이 없으니까 케리 장관은 사태 악화를 막기 위해 미국이 퇴로를 열면서 회담 쪽으로 상황이 넘어가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미국과 북한은 조건만 맞으면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정세현 : 그렇죠. 현재 오바마 정부가 임기 말기라 해결을 위한 동력은 많이 떨어지지만, 민주당 후보가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케리 장관 입장에서는 다음 정부에 일을 넘겨줄 때 최소한의 정지작업을 해놓고 넘기려는 책임감도 있을 겁니다.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힘겨루기만 했고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에서조차 국무장관이 아무런 해결도 하지 못하고 임기를 마친다? 그것도 좋은 상황은 아니거든요.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 '마이웨이' 선언?

프레시안 : 아직 뚜렷한 대북 제재 효과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 탈북 이후 박근혜 정부와 일부 언론들은 대북 제재에 효과가 있다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세현 : 중국이 4월에 들어서 비로소 제재 품목 몇 가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고 합니다. 그 전에 한 달 동안은 북한 배를 자국 항구에 못 들어오게 했습니다. 근데 이 정도 제재는 일종의 '퍼포먼스' 같은 겁니다.

여기에 제재가 민생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북한의 일반 주민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은 여전히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산에서 중국으로 철광석을 싣고 나오는 차량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동북 3성 (요녕·지린·헤이룽장성)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민생, 인도주의라는 명목으로 제재를 피해가려고 할 겁니다.

여기에 러시아와 북한 사이의 경제 교류도 비록 그 양은 적지만 어쨌든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고통을 느끼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제재에 별로 겁을 먹지 않게 됩니다.

북한의 무수단 미사일 발사는 한국과 미국에게 "마음대로 해봐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단순한 '마이웨이'가 아니라 "효과도 나지 않는 대북 제재 같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우리가 해달라는 거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제재 효과를 부각시키는 언론을 보면, 언론이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일부 언론은 대통령 기분 좋게 보도하는 성향이 생겨버렸기 때문에 제재가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부풀려지고 있는데, 사실 이보다 훨씬 많은 분야에서 구멍이 뚫려 있는 상황입니다.

프레시안 : 36년 만에 치러지는 북한 당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무수단 발사도 당 대회를 앞두고 군사적 성과를 북한 인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는데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 대회를 통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정세현 : 실제 당 대회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텐데, 아마 김정은 제1위원장은 당원들을 자기 측근으로 채우면서 세력을 충원하고 이를 통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겁니다. 소위 '진김'(眞金)들을 기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기존 고령의 고위 당 간부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은 확실합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나이가 상당히 많은 간부들을 대하기 부담스러울 겁니다. 아무리 공손하게 대한다고 해도 불편한 측면이 있습니다. 김정은도 반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어 할 겁니다. 이 때문에 이번 당 대회가 끝난 이후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또래 혹은 조금 윗대의 사람들이 많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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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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