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못 보내는 진짜 이유

[복지국가SOCIETY] 공공 사회 서비스 30% 확충 프로젝트

인간으로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보건 의료 서비스, 육아 서비스, 장기 요양 서비스, 재활 서비스 등은 반드시 충족해야만 한다. 이런 필수 사회 서비스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십중팔구 큰 고통 속에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아픈데 병원에서 의료 서비스를 받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어 활동상의 제약이 발생했는데 장기 요양 서비스를 받지 않는다면, 감내해야 할 고통은 명확하다.

이 때문에 현재 유럽 선진국들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필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수 사회 서비스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의제가 되었고,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의무로 자리매김 됐다.

하지만 정반대로 우리나라는 민간이 90% 이상을 제공하고 있다. 전체 의료 기관 중 공공 의료 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은 5.7%이고 공공 병상의 수는 9.5%에 불과하다(2013년 기준). 국공립 어린이집의 비율은 어린이집 수를 기준으로 5.7%이며 이용 아동 수 기준으로는 10.6%에 머물러 있다(2014년 기준). 노인 장기 요양 시설 중 국공립 시설은 전체 시설의 2.22%이고, 전체 입소 정원의 5.15%를 담당하고 있다(2014년 기준).

사회 서비스의 민간 공급 체계는 분명히 실패했다


우리나라의 민간 주도형 체계는 여러 한계와 문제들을 낳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필수 사회 서비스 경우에는 공급자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기 쉽다는 점이다. 의료의 경우 환자들은 의사와 병원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며 결과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가격이 높게 책정된다. 미국의 의료 시장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육아 서비스의 경우에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돈이 더 들더라도 더 나은 환경의 어린이집에 보내려 한다. 이러한 높은 가격 책정 때문에 우리나라 정부는 지속적으로 가격을 통제하고 있고, 유럽의 선진국도 동일한 정책을 쓰고 있다.

가격 통제 정책은 민간 주도형 체계에서 몇 가지의 풍선 효과를 낳는다. 우선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 비용을 포함한 비용들이 최소화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 의료, 보육, 장기 요양의 영역에서는 이런 경향이 워낙 강해, 근로자들은 가장 낮은 임금과 가장 긴 노동 시간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비용 절감을 통한 이윤 확보는 노동 비용만이 아니라 원료, 기자재, 시설 등에서도 이뤄져 생산의 시설과 장비가 낙후되기 십상이다. 이런 두 가지 경향은 서비스 자체의 질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우리나라의 필수 사회 서비스의 질이 낮은 이유가 바로 운영자의 이윤 추구에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격 통제 속에서의 이윤 추구는 생산자들이 더 많은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단가는 낮지만 파는 물건의 개수를 늘려 이윤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보건 의료계에서의 진찰 횟수, 투약 횟수, 입원일, 입원 횟수 등에서 높은 수치를 보이는 것이 증명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속적으로 의료비가 증가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장기 요양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격 통제에 따른 여러 부정적 결과들은 최종적으로는 필수 사회 서비스 충족에서의 형평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서비스를 충족함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가의 서비스들을 즐겨 찾는다. 반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은 서비스의 충족을 스스로 담당하거나,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은 경제적 능력과는 별 상관없이 필수 사회 서비스를 충족시키고 있는 유럽의 선진국들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여준다.

▲ 어린이집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 ⓒ청와대

국공립 시설에 대한 높은 국민적 요구는 공공성에 대한 요구이다

민간 주체가 생산하는 필수 사회 서비스의 여러 문제들은 사용자가 국공립을 선호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공립 어린이집의 대기 아동 수(78.3명)는 법인 어린이집(27.5명)이나 민간(12.9명) 및 가정 어린이집(2.9명)보다 훨씬 높고 직장 어린이집(49.3명)보다 훨씬 많다. 부모들이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서비스의 제공자가 국공립 주체이기 때문이 아니라, 국공립 어린이집이 공공성을 더 잘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공공성이란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갖는 이익을 실현시킨다는 목적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보건 의료, 보육, 장기 요양, 재활 등은 모든 국민이 동일한 상황에서는 동일하게 충족시키고자 하는 서비스이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서비스 충족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야 한다. 서비스 과정 자체를 투명하게 개방하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이런 개방과 공개는 사용자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더욱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공공성을 어떻게 하면 가장 적절하게 확보할 수 있을까? 민간이 제공하더라도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확보하기는 어렵고, 오히려 방해가 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민간 주체들은 필수 사회 서비스의 제공의 결과로 일정 정도의 이윤을 추구하기 때문이다(이 이윤 추구의 폐해는 앞서 이미 제시했다).

따라서 대안으로서 국공립 기관이 제공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사실, 이 기관들은 이윤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윤만큼을 필수 사회 서비스의 생산 과정에서 질을 높이기 위해 더 투여할 수 있다.

다만, 과거에 보여 왔던 무사안일, 획일주의, 관료주의 등의 부정적 모습은 제거해야 한다. 이는 필수 사회 서비스의 제공 과정에 사용자인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관련 자료들을 공개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다. 단순히 공무원이 서비스의 제공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과정의 개방과 정보의 공개를 통해 기존의 한계들을 뛰어넘어야 한다.

유럽의 복지 국가들은 필수 사회 서비스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이를 달성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합리적인 사회 서비스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체계 내에서는 서비스의 질이 관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참여는 그 자체로 국민이 스스로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학습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더 대한민국에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

공공성에 기반한 사회 서비스가 더 합리적이다

공공성 확보의 이면에는 여러 합리적 결과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좋은 일자리의 창출이다. 국공립 기관이 필수 사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그에 대응한 일자리들을 만들어야 하고, 그 일자리는 노동 조건이 보장되는 좋은 일자리이다. 안정되기 때문에 노동 생산성은 올라간다. 또 국민이 직접 참여할 통로가 있기 때문에 무사안일이나 도덕적 해이는 발생하기 어렵다. 그 결과 서비스의 질은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보장되고, 제공자들도 자부심을 갖고 노동의 의미를 느끼면서 주체적이 될 수 있다.

물론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반대급부로 노동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비용 증가는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다.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서비스 영역에서의 노동 조건들이 향상된다는 것은 점차적으로 민간 영역에서의 노동 조건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필수 사회 서비스 영역에서의 노동 조건 개선은 우리나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일자리들의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강제 폐원한 진주의료원. ⓒ프레시안(김윤나영)

전 국민적 논의의 장을 통해 단계적으로 '30% 확충'을 달성하자

그렇다면 어느 수준까지 국공립 시설이 확충되어야 하는가? 현재 국공립 시설의 적정한 비율에 대해서는 단일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공성이 시장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점에 대체적으로 의견이 모아져 있으며, 그를 위한 최소한의 수준은 전체 시설 대비 30% 이상이어야 한다는 동의가 이뤄져 있다.

국공립 시설을 30%까지 확충하려면 많은 공적 재원이 든다. 이 재원은 '모두가 공동으로 부담하되, 있는 사람이 더 부담한다'는 형평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마련해야 한다. 단, 모두가 재원을 부담하기에, '30% 확충'은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전국적이고 전 국민적인 논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30% 확충'은 순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소요되는 재정이 크기 때문에 일순간에 이를 확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순차적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서도 안 된다. 따라서 10년 안에 재정을 압축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확충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존 시설들을 매입하거나 인수하여 국공립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공립으로 신축하는 것이다. 방법은 현재 각각의 필수 사회 서비스 시장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며 선택해야 한다. 물론 국공립 주체는 공공성에 철저하게 의거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민간 주체가 보여주는 역동성을 담보해야 한다.

보건 의료의 경우, 2017년부터 2027년까지 전체 병상 중 공공 병상의 비중을 30%로 확충한다는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2013년 현재 총 병상 수는 62만9629개이며, 이 수준은 전체 인구를 고려했을 때 부족하지 않다. 따라서 병상 자체를 늘리기보다 기존의 병상들을 국공립화하는 방향이 중점이 되어야 한다. 전체 병상 중 공공 병상 수는 대략 6만 개이며, 따라서 '30% 확충'을 위해서는 약 13만 개의 공공 병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 중 일부는 지역 거점 병원을 국공립으로 신축하여 확보하고, 일부는 기존의 민간 병원을 인수하여 확보하면 된다.

2014년 장기 요양 보험 통계 연보에 의하면, 노인 장기 요양 시설은 총 4871개, 정원은 15만616명이다. 이 중 국공립시설은 108개로 전체 시설의 2.22%이며, 전체 입소 정원으로는 5.15%에 해당한다. 하지만 앞으로의 급속한 고령화를 고려하면 요양 시설은 더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장 부족한 부분을 최대한 국공립 시설의 신설을 통해 메움으로써, 점진적으로 국공립의 비율을 올리는 전략이 타당해 보인다. 2027년에는 전체 시설 중 약 30%가 되는 것을 목표로, 매년 부족한 부분의 일정 정도를 국공립 시설의 신축으로 채우면 된다.

복지 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 국민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국민의 삶의 질이 바닥을 치고 있기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현재의 위정자들은 방법을 몰라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이 싫어서 가지 않는 것이다. 국민 다수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가면 자신들에게는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변화는 누군가의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의 현실에서 그 용기의 주체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 필수 사회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고 대안을 찾아가는 용기, 그런 대안을 실현시킬 의지를 갖춘 정치인을 찾아내고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로 우리나라는 유럽형 복지 국가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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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해 역동적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2007년 출범한 사단법인이자 민간 싱크탱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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