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회의는 박근혜 정부가 임기 내에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정세의 반전을 도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의가 끝나면 미국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에 접어든다. 오바마 임기 내에 새로운 전환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는 데에 반년 가까운 시간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난 다음에는 한국 대선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31일부터 오바마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연쇄 회담을 하는 한편, 한-미-일 3국 정상 회의도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핵심 의제는 단연 북핵 대응 방안이다.
그런데 반전을 기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실패한 정책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 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인 2270호에 고무된 정부는 정상 외교 무대를 '북한 옥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릎을 꿇든지 체제 붕괴를 감수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결의가 담겨 있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결의만 부추길 뿐이다.
기실 박근혜 정부가 조금만 생각을 달리해도 이번 정상 외교에서 획기적인 돌파구를 열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초청에 뜸을 들여 미국의 애를 태웠던 시진핑 주석은 '대결에서 대화로의 전환'을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협정을 동시에 논의하자는 제안은 이를 위한 회심의 카드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미국의 태도이다. 2월 하순 존 케리 국무장관과 왕이 외교부장의 회담에서도 잘 드러난 것처럼, 미국은 중국과의 협의에선 중국의 제안에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케리가 대북 제재의 목적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서 비핵화를 협상한다면, 북한은 결국 한반도에 미해결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미국과의 평화 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다가 한국과의 협의 과정에선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는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다. 미국 측 6자 회담 수석대표를 맡고 있는 성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우리의 '넘버 원' 정책 목표는 비핵화"라며, 비핵화 협상과 평화협정 논의를 동시에 추진하자는 중국의 '병행' 제안에 선을 긋고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청자에 따라 화자의 화법이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북핵 문제를 마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고심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회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박근혜 정부가 비핵화와 평화 협정을 논의할 대화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면 미국도 동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북핵을 머리 위에 얹고 살게 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하지만 현 정부 임기 동안 북핵은 눈덩이처럼 커져 왔다. 북한을 악마화하면서 그 책임을 모면하려고 해왔지만, 대북 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다. "통일이 북핵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이라는 엉뚱한 집착에 사로잡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문제를 이용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던 탓이 컸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곧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해줬으면 한다. 그래서 반전은 사라진 채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한반도 드라마에 반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핵 안보 정상회의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의 업적입니다. 하지만 북핵 문제의 악화로 이 업적의 빛이 바래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고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에서부터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여정을 다시 떠나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우리 임기 내에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후임자들이 보다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그 여정에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다간 6자회담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우리 임기를 마치게 생겼습니다. 더 늦기 전에 협상다운 협상을 한번쯤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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