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삼촌, 큰엄마랑 사는 그룹홈을 아시나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학대 피해 아동 품기에 역부족인 아동보호체계

"7년 전 학대로 입소한 아이가 이제 커서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데, 그동안 아이에 대해 관심도 없고 연락도 없더니 갑자기 아이를 데려가겠다는데…. 어쩌죠?"

갑자기 아이를 데려가겠다는 아빠

설 연휴가 지나고 한 그룹홈 사회복지사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 통의 내용이다. 학대 가해자였던 아버지가 어디서 들은 모양이다. 아이가 시설에서 자립하면 자립 정착금과 임대 주택을 아이 이름으로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동 보호 체계에서 친권이 우선이다. 이 경우도 아버지가 데려갈 수 있고 임대 주택의 경우 아이가 거주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아버지가 와서 같이 살아도, 아니, 아버지만 그 집에서 산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자립 시기를 앞두고 다시 부모가 자립 정착금(지자체 예산으로 서울의 경우 500만원~일부 도는 300만 원)이나 아동 발달 지원 계좌 적립금(CDA, Child Development Account : 저소득층 아동이 매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에서 1:1 매칭 지원금으로 월 3만 원까지 적립해주는 사업)을 챙기고 다시 아이는 나이만 성인이 된 채 길거리로 고시원 방 한 구석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룹홈을 아시나요?

그룹홈(Group Home)은 아동 복지법상으로 아동 공동 생활 가정이다. 1970년대에 우리나라의 요보호 아동 보호 형태가 대형 시설형밖에 없자 이를 비판하며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되었다. 1997년에는 시범 사업이 실시되었고 2004년 아동 복지법에 소규모 가정형 시설로 법제화되었다. 그룹홈은 현재 일반적인 주택에서 2명의 시설장, 보육사가 5~7명의 아동들을 24시간 365일 양육하고 있다.

2015년 기준 그룹홈은 전국에 476개소가 있다. 18세 이하 2588명의 아동들이 여기서 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학대, 부모 사망, 이혼, 질환, 수감 등으로 인해 사회적 양육과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이다. 최근에는 약 38%가 학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장애가 있거나 유기된 베이비 박스 아동, 탈북 청소년들까지 함께 가족을 이루며 살고 있다.

그룸홈의 특징은 아이들에게 낙인감이 생기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대형 시설과 달리 5~7명의 아동들을 돌보기 때문에 아이들이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그룹홈 안에서 형제자매처럼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식판이 아닌 식탁에서 다 같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정과 같은 포근함과 편안함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집, 가족이 생기게 된다.

심각해져가는 아동 학대 사건

최근 몇 년간 끔찍한 아동 학대 사건이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이에 아동 학대 관련 사건의 처벌 강화 및 예방과 대책들의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아동 학대의 심각성은 오히려 더해져 가는 상황이다. 아동 학대 가해자들의 대부분 부모와 가족, 가까운 지인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학대 행위 자체에만 집중된 대책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그동안 발생한 아동 학대 사건을 보면, 사건 발생 이전에 이미 가족 구성원들은 더 이상 가족으로서 역할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최근 경기도 야산에서 발견한 9세 여아도 이혼으로 주거와 직업이 불안정했던 엄마가 지인의 집에 머물며 사건이 발생했다.

만약 이 엄마가 이혼 후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그리고 양육에 대한 사회적 도움이 있었다면 이 아이는 그렇게 매 맞고 굶다 끔찍하게 야산에 묻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동"의 문제는 "가족"의 문제이기에 그 가족이 아동을 잘 양육할 수 있는 복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맨 위 사례처럼 그룹홈이나 시설에서 보호하고 있더라도, 사회적 보호 체계가 친권을 박탈하기 어렵고 혈연이라는 끈은 쉽게 놓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학대가 발생해 경찰과 함께 아동 보호 전문기관의 상담자가 아동을 분리한다 해도,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공간 확보도 어려운 학대 피해 아동 쉼터

따라서 최소한 학대 경험이 있거나 학대로 인한 상처를 충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주어야 한다. 2014년 말 전국에 476개소의 그룹홈이 있다. 이중 36개에 학대 피해 아동 쉼터도 포함되어 있다. 학대 피해 아동 쉼터는 학대 정도가 심하거나 긴급하게 보호가 필요한 아동들을 6개월 내외로 보호한다. 일반 그룹홈과 달리 치료사가 상주하고 별도의 치료실이 있어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살펴보고 치료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쉼터에서 일정 기간 지낸 뒤 아동 보호 전문 기관과 공무원, 아동 관련 시설과 협의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인근 그룹홈 또는 위탁 가정, 양육 시설로 옮겨 간다. 학대 피해 아동 쉼터는 학대 아동에게는 응급실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학대 피해 아동 쉼터 증설이 시급함에도 그 중요성에 비해 속도가 더디다. 2015년에 학대 피해 아동 쉼터 22개 증설을 위한 예산을 보건복지부에서 확보하였으나, 이 중 6개소는 연말까지 개소를 못해 2016년도로 사업을 넘겨야 했다.

서울의 경우 100제곱미터(=31평) 이상의 주거형 공간 확보를 위해 3억 원의 매입비를 지원했으나, 방4개 화장실 2개의 실 평수 31평 이상 되는 아파트를 구하지 못해 연말이 되어서야 겨우 공간을 마련했다. 부여에선 동일 조건의 대형 아파트가 없어서 설치를 미뤄야 했으며, 용인시의 경우 위탁 운영 기관을 찾지 못해 쉼터를 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연일 아동 학대 사건은 많아지고 학대 피해 아동 쉼터에서 보호하고 치료해야 하는 아동들은 넘치는데, 아이들이 갈 임시 시설이 없어 바로 그룹홈(아동공동생활가정)으로 입소되는 건수도 늘어났다.

학대 피해 아동 쉼터에 대한 정부 예산이 부족하고, 특히 이들을 양육하는 종사자들의 처우가 열악해서 대부분 치료(상담)사는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학대 피해 아동 쉼터가 있는 곳은 그곳을 거쳐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그룹홈으로 재입소되면 다행인데, 대부분은 한 밤 중에 갑자기 경찰이나 공무원이 전화해서 어떤 상황인지 알려주지도 않은 채 아이를 두고 가버리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의 한 그룹홈 시설장의 경우, 아파트 복도에 버려진 3일된 아기를 보호할 곳이 없어 바로 산부인과에서 데려와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반나절 만에 기저귀, 분유, 내복만 급하게 마련하고 아기를 키우기도 한다.

아동들을 키우다보면 친부모가 아니고 친권도 가지고 있지 않기에 통장 개설, 여권, 휴대폰 개통 등을 하지 못해 겪는 행정적 재정적 어려움도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 거래법 강화로 통장 개설이 어려워져 수급비를 받지 못하거나 친부모가 아동 명의의 통장 비밀번호를 바꿔 써버리거나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룹홈에 있는 아동들은 양육 시설과 같은 보장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아동들이 개별적으로 수급자로 지정된다. 그룹홈은 월 24만 원의 운영비와 2명의 인건비만을 보조받고 있기에 아동들에게 들어가는 식비, 피복비, 교육비, 용돈, 생활비 등은 수급비에서 충당할 수밖에 없다.

특히 학대나 유기로 긴급하게 그룹홈으로 입소되는 경우 부모의 협조를 받을 수 없어 사회적으로 지원 체계가 강화돼야 한다. 정부에서 후견인 제도를 만들었지만 법적으로 고아가 아닌 경우는 법원 재판을 통해야 하기에 절차상의 어려움이 크다. 게다가 언제 다시 아이가 원 가족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고, 법적 그리고 재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커 사회복지사들이 선뜻 후견인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어렵게 몇 년을 키워도 아이를 학대를 가했던 혹은 버렸던 가족이 나타나 아이를 찾아가버리면 그저 보낼 수밖에 없는 것도 아동 복지 현장이다. 다시 데려가서 잘 키우면 문제가 아닌데, 대부분 다시 그룹홈이나 시설로 돌려보낸다. "내가 생각했던 그때 그 아이가 아니예요"가 대부분 이유이다. 아이는 당연히 성장해버렸는데 부모는 그 아이를 다시 받을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적어도 부모 교육 한번 받지 않은 채 데려가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특히 아동 학대 가해자의 경우 원 가족 복귀가 꼭 필요할까 의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아무리 자신을 때렸던 부모라 하더라도 늘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고 다시 만나고 찾아가고 싶어 한다. 대부분 마음에 더 큰 상처만 받고 돌아서는 경우가 더 많고 오히려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역으로 늙고 병들어 다시 부양을 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 키웠던 그룹홈의 종사자들도 상처받고, 아이들은 더욱 큰 멍울을 남기게 된다.

▲ 그룹홈 아동 자립캠프. ⓒ최선숙

그룹홈 종사자들의 열악한 현실

현재 아동 복지 현장에서 가장 소외되고 어려운 아이들을 곁을 지켜주고 있는 그룹홈에는 전국에 약 1200명이 일하고 있다. 그룹홈이 소규모 가정형 시설이다 보니 호칭도 대부분 이모, 엄마, 삼촌, 큰엄마라고 많이 부른다. 간판도 없기에 일반 주민이 봤을 때 그저 그 집에 애들이 좀 많이 살고, 성이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이상한 여자가 되기도 한다.

5살 때 입소한 아이가 이번에 Y대에 입학하게 되어 뿌듯함을 느끼는 그룹홈 시설장도, 3형제를 5년 키웠는데 엄마가 다시 데려가 속상하다 말하는 시설장도, 그룹홈 아이들 돌보다 뇌경색으로 돌아가신 7명 그룹홈 아이들의 이모 등이 흔한 그룹홈 종사자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그룹홈(학대 피해 아동 쉼터도 법적으로 그룹홈이기에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단일 임금인 연 2191만 원을 받는다. 그나마도 기관 및 본인 사회보험료, 퇴직금을 보조금에서 제하고 받는 월 급여는 약 150만 원 내외에 머문다. 24시간 365일 교대로 아이들을 밤낮없이 돌봐도 이들에게 돌아가는 급여에는 호봉도 직급도 시간 외 근무 수당도 없는 정부 보조금뿐이다.

그나마 2014년 보건복지부 일반 예산에서 예산을 증액하기 용이하고 복권 기금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금 예산으로 이관시켰으나 2년이 지난 지금 크게 증액되지는 못했으며,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본 예산으로 재편성할 것으로 결의하였으나 아동 복지 예산이 워낙 적어 그나마도 실현가능할지 미지수이다.

시설 마련도 운영자의 몫이고,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해서 보조 인력이 필요해도 운영자의 몫이고, 아이들이 대학 진학할 때 입학금과 기숙사비가 모자라도 마련해야하는 사람은 그룹홈 엄마이자 이모, 삼촌이다.

▲ 그룹홈 종사자 인권 교육. ⓒ최선숙

아동 보호의 질은 아동 복지 종사자의 질이다

백일이 지나자마자 그룹홈에 입소한 아이가 처음으로 겪는 트라우마는 자신이 엄마라고 불렀던 이가 친엄마가 아닌 그룹홈 종사자라는 사실, 자신이 버려진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룹홈 아이들 특히 학대나 유기되었던 아동들은 아동기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정서적인 상처가 크기에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지켜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어른"이다. 아이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첫 어른이 부모는 아니지만 부모처럼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은 이 사회에서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복지계에서 가장 열악한 아동 복지 종사자들에 대한 낮은 처우는 이 어른들에게 잦은 이직, 높은 스트레스와 소진을 가져오게 한다는 점에서 진지하게 점검해야 할 과제이다.

소명을 가지고 아동 복지 현장에 일하고 있는, 이 아이들의 이모와 삼촌들이 자주 바뀌지 않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갈 수 있기 위해서는 그룹홈 종사자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이들을 위한 호봉제 실시, 한 달 공과금 내기도 벅찬 월 24만 원 운영비의 현실화, 아이들의 집이 좀 더 따뜻하고 쾌적할 수 있도록 시설 개·보수비 지원, 집 주인 눈치 보지 않고 그룹홈 아동들이 살 수 있는 안정적인 LH 임대주택 지원 등 필요한 과제가 한 둘이 아니다.

우리사회 곳곳에 버림받고 학대받는 아이들이 있고, 이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룹홈에 사는 아이들과 이모, 큰엄마들이 흘리는 눈물과 상처가 헛되지 말아야 한다. 이 아이들 역시 우리나라의 미래이자 희망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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