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진짜 범인은 국가다"

[나는 어린이집 교사입니다③] 한 선생님이 보내는 편지

두 차례의 기사가 나간 이후, 여러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학부모, 교사, 원장님 등등 각계의 의견을 많이 들었습니다. 응원의 의견보다는, 비판의 글이 더 많았습니다. 어린이집 문제가 여러 관계가 중첩되고 여러 문제가 복합된 실타래 같구나,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통의 메일은 두 번째 기사가 나간 날 자정 가까운 시간에 왔습니다. 보육노조의 비리고발고충상담센터장인 김호연(41) 선생님이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 20년 째 보육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호연 선생님은 "오늘 기사까지 쏟아지는 비난을 보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2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통화에서도 김호연 선생님은 "요즘 잠이 안 온다"며 울먹였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계획했던 이야기를 잠시 미뤄두고, 김호연 선생님의 목소리를 전해볼까 합니다.

"꽃 같은 분들이 지금 다 어린이집을 떠나고 있어요"

▲김호연 보육노조 비리고발고충상담센터장.ⓒ프레시안(최형락)
"우리 교사들이 사고만 생기면, 한꺼번에 따가운 시선을 받고 했지만, 그래도 경력 교사들은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8년 차 이상 되는 교사들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애들만 보고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어려운 보육 현장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거든요. 그런데 그분들이 지금 다 현장을 떠나고 있어요."

김호연 선생님은 "경력 교사들 가운데 자기 원(어린이집)을 차리지 않은 교사들은 정말 꽃 중에 꽃인 사람들"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이집 개원의 유혹 물리치고 현장에 있는 거예요. 월급 150만~200만 원 받으면서. 자기 자식은 제대로 보육도 못 하고, 자기 아이 입학식·졸업식은 가보지도 못하는 엄마가 그보다 어린아이들과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살고 있는 거죠. 그럼 너희들 잘한다, 잘한다는 못 해줘도 그 사람들이 현장에 있게 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건데…."

김호연 선생님은 말을 채 잊지 못했습니다. 전화기 선을 타고 꽤 긴 침묵과 목멤이 전해져 왔습니다.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쏟아지는 세상의 비난, 자신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시선들 속에서 어린이집 교사들이 많이들 그만둔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뉴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순간에도 어느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돌보고 있고, 우리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으며, 우리 아이를 웃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호연 선생님은 그들을 보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김호연 선생님은 "묵묵히 아이들을 지켜 온 선생님들에게 제발 떠나지 말라고, 같이 보육현장을 지키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의 삶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교사가 불행하다면…"

"나는 보육교사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직업이 보육교사 말고 또 어디 있어요."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이, 엄마 아빠 외에 처음 만나는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은 그런 존재입니다. 김호연 선생님의 말대로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통해 세상을 봅니다." 엄마와 아빠도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지만,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어린이집에서 보냅니다.

"그 교사가 사는 모습으로 아이들이 크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이 사회가 정말 제대로 된 것일까요?"

행복하지 않은 선생님들을 통해 아이들은 어떤 세상을 만날까요?

선생님들을 힘겹게 하는 요인은 많습니다. 김호연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기 전에 3회에서 하려던 이야기도 그것이었습니다.

10년째 변하지 않는 교사 대 아동 비율, 휴식시간은커녕 마음 편히 화장실 가기도, 점심을 먹기도 힘든 어린이집 교사의 노동 현실, 유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하는 시간과 강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 서류 더미와 화장실 청소, 설거지 등 아이들을 돌보는 것 외에도 ‘넘쳐나는’ 할 일. 평가인증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해가 되면 교사들을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한다고 합니다. 전날 새벽까지 야근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없이 여유로울 수 있을까요?

내 몸이 아프면 내 아이 하나 돌보는 것도 벅찬 것은 아이 가진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아파도 휴가를 낼 수도 없습니다. 그런 교사들에게 오직 '천사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돌봐 달라 부탁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요구일까요?

더욱이 이런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것은 정부입니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사실상 거의 전부 민간에 위탁한 것도, 민간 어린이집을 대폭 늘려 '원아 유치 경쟁'을 하게 만든 것도, 1년 동안 인터넷으로 강의를 들었다는 것만 확인되면 교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자격을 준 것도 모두 정부입니다.

그런데 인천 어린이집 학대 사건 이후 쏟아지는 각종 이야기 속 어디에도,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오직, 감시와 처벌을 위한 CCTV 설치뿐입니다. 정치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사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현실을 개선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수면 아래로 들어가고, 2월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도 CCTV 설치 의무화뿐입니다.

김호연 선생님이 지난 23일 보육 관련 여러 단체와 함께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이유입니다. 김호연 선생님은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육의 질을, 보육교사의 질을 떨어뜨린 장본인은 정부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김호연 선생님이 세상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보내 왔습니다. 이 편지글의 일부는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도 김호연 선생님이 낭독했습니다. 글 전문을 소개합니다.

▲지난 23일 보육 관련 단체들이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프레시안(최형락)


"보육 현장의 모든 문제 종식할 유일한 대안은 보육 공공성입니다"

이 땅의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고 함께 있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느끼며 이 길에 접어든 지 20년 차 보육교사입니다. 어린이집 교사로 15년, 보육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5년을 보냈습니다.

평생 가도 대단한 지위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남을 부리는 권력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 이 길을 오래도록 지켜 온 보육교사로서 무엇으로 지탱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생애 첫 아이들의 첫 선생님으로서 타인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는 보육교사로서의 소명감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자라 날 세상과 부모님들이 사는 세상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 직업군도 드문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랄 세상과 우리 부모님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은 현실에서 각박하기만 합니다. 모든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닙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아이들과 함께 실컷 놀 수 있는 권리와 아동 인권이 지켜지는 현장을 위해 공부하고 좋은 모델이 되려 살고 있습니다.

점점 더 영리해지는 아이들에, 아이들 교육이라면 목숨 걸고 뛰어드는 부모들에, 그 틈바구니에서 장사를 해대는 교육 현실에 몸서리치면서 좌절과 힘겨움에도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살인적인 교사 대 아동 비율 속에서 하루하루 안전사고 안 나게 지켜내는 것만으로는 내 아이들이 사는 세상의 보육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보육교사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직 보육의 공공성만이 이 모든 현장의 문제들을 종식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보육 돌봄 노동자로서 이제는 한마디 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국공립 시설 확충·살인적인 보육 현실 외면하고 CCTV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까요?"

우리가 사는 현실은 느림보다는 빠르고 효과적인 효율성만을 강조합니다.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된 이래 24년입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지만, 정책입안자들이 내는 보육정책 안에는 우리 아이들과 교사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당연한 권리들은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2014년 국감자료에 따르면 국공립 어린이집은 4072곳입니다. 국공립 신축 예산은 국회에서 매년 삭감되기 일쑤입니다. 현재 국공립시설의 비율은 5.1%밖에 안 되며 이마저도 개인이나 법인에 위탁을 하는 형태이니 대한민국에 국가가 직접 관리 감독하고 책임지는 국공립시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임신과 출산의 문제가 국가적 문제로 대두하는 현실에서 이는 국가가 보육의 공공성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보육의 공공성은 국가가 주도하는 보육정책의 장기적 계획 속에 가능합니다. 이미 시장화되어버린 보육현장에서 시장견제 기능을 하는 국공립시설 확충의 의지로 반영될 거라 믿습니다. 그런 기본적 전제 속에서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와 교사들의 8시간 2교대제가 도입되어야, 보육현장의 공공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신 무상보육예산 9조에 대한 효율성은 세금이 누수 되지 않는 보육 인프라의 구축과 관리 감독기관들의 예산편성으로 강화되었을 때 완성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아동복지 예산은 OECD 다른 회원국(GDP 대비 2.3%)의 절반 정도인 1%대입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보육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하고 실행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보육에 대한 국가재정 투입 의지인 '국공립 시설 확충'의 명백한 대안을 제쳐 놓고 보육현장이 달라지겠습니까? 표심만을 의식해 지급하는 개별 보육료 지원 정책과 민간 어린이집 지원 정책으로 보육현장이 달라지겠습니까? 전국의 25만 보육 교사들도 이 대한민국의 유권자이며 딸이자 어머니입니다. 이 사람들이 안심하고 아이들을 낳고 기를 수 있을 때 저출산 캠페인 사업보다는 효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초등학교도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27으로 OECD 국가 중 최대인데, 어린이집 만 5세(7세) 아이들의 경우 23명을 한 교사가 돌봅니다. 이런 살인적인 보육 현실 자체가 아동학대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현실에서 교사 대 아동 비율의 축소 없이 CCTV의 효율성만을 이야기합니다. 연일 터지는 보육현장의 폭력과 학대의 책임을 보육교사의 자질로 몰아갑니다. 이것이 진정 현장에서 일하는 보육 교사들의 품성만의 문제입니까? 보육의 3주체인 아이, 부모, 교사 모두를 기만하는 일입니다.

12시간의 노동과 살인적인 교사 대 아동 비율 속에서 보육의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입니까? CCTV의 효율성이 보육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과 학대 사태들을 방지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라면, 왜 우리는 하루에 80여 회나 노출되는 CCTV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살인과 납치 폭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김호연 선생님이 직접 쓴 편지글을 읽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매년 학기 초가 되면 대부분의 교사는 보육현장의 불합리한 현실들은 최대한 참으며, 올해는 좀 더 괜찮은 어린이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직을 하고 있습니다. 25만 보육 교사 중 매년 8만여 명이 새로운 어린이집을 찾아 옮겨 갑니다.

보육 노동자들은 보육교사라는 직종의 이익만을 대변하기 위해서 단순히 임금을 올려 달라, 현실화해 달라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육 현장에서 사랑과 헌신으로 묵묵히 지켜 온 우리 아이들의 돌봄이 대형 매장에 즐비해 있는 물건들처럼 현란한 포장으로 상품화되어 버린 현실에서, 보육의 온전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외침입니다. 소신 있게 관성과 타협으로부터 이 길을 오래도록 지키고 노력하는 최소한의 목소리입니다.

정부의 민간 자본 유치를 통한 보육시설 확충 계획에 의해 민간 어린이집이 난립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국공립 시설 확충은 저버린 채 시설기준만 완화해 늘어난 보육시설은, 이미 제대로 된 보육을 하기 어려운 구조를 낳았습니다.

이렇듯 보육의 질을 떨어뜨린 장본인은 정부이고 그 일선에 안일한 보건복지부가 있습니다. 보육교사들은 개별 어린이집의 사례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보육 시장화를 만든 정부가 이제라도 의지를 갖고 제대로 된 보육의 공공성을 위한 제고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했으면 그 일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입니다. 우리 보육교사들의 현재 모습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기에, 보육의 질은 보육교사의 질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고 있습니다. 열악한 처우와 사회적 홀대 속에서도 노동조합 가입을 죄악시하는 우리 현장의 교사들이 떠난다면, 이들을 보육현장에서 놓친다면, 보육현장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정부와 국회는 보육교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보육교사를 보육교직원으로 명칭 한다고 해서 처우가 바뀌지 않습니다. 우리 현장의 보육교사들은 아동 인권과 보육 인권이 지켜지는 현장에서 아이들을 볼 수 있는 그 날까지 보육의 공공성을 외칠 것입니다. 아이들의 권리는 표심도 없어 제외되고, 아이가 크면서 점점 부모들의 관심이 사라진다 해도 말입니다.

부모와 교사를 서로 적으로 만들지 말아 주세요. 우리 부모와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부모와 교사, 아동 모두가 행복한 열린 어린이집입니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가가 책임지고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서, 지나가는 ‘쬐그만 것들’만 봐도 미소가 생기는 ‘오지랖쟁이’ 현장의 선생님들 떠나지 마세요. 아이들의 생애 첫 교사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의 인권과 놀 권리를 알려 줘야죠. 아무도 우리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지만 보육의 질이 교사의 질이기에, 당당히 일할 권리를 쟁취해,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엄마처럼 언니처럼 이모처럼 보육교사를 하겠다는 이들에게 물러줘야 하지 않을까요.

보육교사들이 행복하게 일할 권리와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권리, 그리고 부모들이 행복하게 맡길 권리가 지켜지는 보육 현장은 내가 우리가 함께 만드는 길입니다. 보육교사, 아이들의 생애 첫 선생님, 당신의 자리가 곱고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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