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성공단 포기한 마당에 평화협정은?

[인터뷰] 전 통일부 개성공단지원단장 고경빈 평화재단 이사

북한의 '수소탄'시험과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 4호' 발사를 두고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야말로 북한의 행동을 바꿔보겠다며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임금이 핵과 미사일을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정부는 명확한 증거를 밝히지 못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한 말 바꾸기를 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특히 주무부처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본인이 했던 말을 뒤집으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5년 개성공단에서 첫 상품이 나온 직후 통일부 개성공단지원단장을 맡으며 공단 초기 기틀을 잡았던 고경빈 평화재단 이사는 이에 대해 "개성공단 임금이 대량살상무기의 자금줄이 됐다는 정부의 판단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의혹을 충분히 가질 수는 있지만 이를 확대해석한,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고 이사는 북한 당국이 남한 기업으로부터 받은 돈은 근로자 1인당 10~15만 원에 해당하는데, 그 돈으로 공단 근로자들의 의식주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일부 금액을 가져간다고 해도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닐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남한 기업들은 근로자들에게 직접 임금을 주는 시스템을 관철하려 했으나, 1980년대 남한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 역시 외환 집중 관리제를 도입하고 있어, 근로자들 임금을 미국 달러로 줄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 이사는 임금이 어떻게 쓰였느냐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멘텀을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를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재 정도로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제의 숨은 의도나 위험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왜 평화협정 카드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옵션에 올려놓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개성공단까지 희생시킨 마당에, 모든 카드를 놓고 북핵을 저지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고 이사는 "설사 북한이 평화협정의 숨은 의도로 주한미군 철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그러한 요구는 걷어내면 되는 문제"라면서 "우리가 원하는 평화협정 체제로 북한을 이끌고 가면 된다. 평화협정 논의 자체를 '선(先) 비핵화'라는 조건으로 방치해 놓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터뷰는 지난 26일 서울 양재동에 위치한 평화재단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고경빈 평화재단 이사 ⓒ평화재단

프레시안 : 정부가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임금이 대량살상무기(WMD)에 쓰였다면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개초창기에 공단을 지원하는 개성공단 지원단장을 맡으신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실제 개성공단 근로자들 임금은 어떤 방식으로 지급되나?

고경빈 : 북한 근로자 임금 중에 30% 정도는 사회보장비와 문화시책비로 원천 징수된다. 우리로 치면 일종의 세금과 근로자가 부담하는 4대 보험 비용이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제외하고 나머지 70%는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 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을 통해 북한 당국이 가져가는데 이게 근로자들에게 들어가는 임금이다.

이 임금을 근로자들이 달러로 직접 받지 않기 때문에 논쟁이 생기는 측면이 있는데, 문제는 근로자들이 달러로 받아 봐야 소용이 없다. 달러를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암시장에 가서 달러를 북한 원화로 바꾼다면 모르겠지만, 북한 체제가 북한 화폐만 통용이 되고 달러나 외화는 집중 관리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달러를 사용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근로자들에게 달러를 주겠나?

물론 달러를 원화로 바꿔줄 때의 공식 환율과 암시장에서의 환율이 워낙 차이가 나니까 남한 기업이 주는 달러가 근로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러면 북한 당국이 달러를 가져가서 암시장 환율로 계산해서 근로자들에게 주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건 궤변이다. 어떻게 북한 당국이 암시장 환율로 달러를 계산하겠나? 이건 우리가 1980년대 중반까지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1980년대 외환자유화를 단계적으로 하기 전까지 남한은 북한과 유사한 방식으로 외화를 관리했다. 예를 들어 월남이나 중동에 있는 노동자가 돈을 벌어서 이를 은행에 송금하면,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이 돈을 달러로 찾지 못했다. 은행이 자동적으로 이 달러를 원화로 바꿨기 때문에 원화로 찾게 되는 것이다. 은행에서 이 돈을 암달러 환율로 계산해 줬겠나? 우리도 외환 집중제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식 환율과 암달러 환율이 차이가 컸다.

그래서 해외여행이나 출장이 굉장히 제한됐던 1980년대 초에는 해외 출장을 가는 사람 중에 몰래 암달러상을 통해 돈을 바꿔서 차익을 노리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북한 돈은 북한 당국이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남한 기업이 준 달러를 북한 당국이 다 가져간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짚어봐야 할 것은 북한 당국은 어쨌든 남한 기업이 준 돈으로 개성공단에 있는 근로자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점이다. 그 비용을 생각해보면 북한 당국이 근로자들 임금에서 일부를 가져간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닐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우리 돈으로 10~15만 원 범위에서 북한근로자들이 생활을 해야 하는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2006년 개성공단 임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국계 호주인 송용등 씨가 통일부에 이와 관련해 자료를 제공해준 적이 있다. 송 씨는 생필품을 수입해서 개성공단 근로자에게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근로자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납품해서 그 대가를 달러로 가져갔다. 송 씨에 따르면, 북한 당국이 개성공단 임금을 통해 소위 '재미를 볼 만큼' 그렇게 많이 가져가지는 못한다고 했다.

원천징수 금액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는데, 북한 당국이 가져가는 30%는 나름의 명분이 있다. 북한은 세금이 없는 곳이다. 북한은 교육을 비롯해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해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개성공단에서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들은 북한 당국이 비용을 부담해서 키워온 인력이다. 그런데 그 근로자들을 남한 기업이 쓰고 있다.

또 공단 근로자들이 산업 재해를 당하더라도 남한 기업들은 이에 대한 비용을 전혀 부담하지 않는다. 인명사고가 일어나면 남한은 기업주들이 책임을 져야 하지만, 북한은 모두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한다. 남한 기업은 근로자가 사망했을 경우 조의금 정도를 지불한다. 그런데 이것도 시간이 가면서 거의 안 받는 추세였다.

물론 개성공단 임금이 대량살상무기로 전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명확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황을 살펴봤을 때 설사 전용됐다고 하더라도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었을 것이라고 추론해볼 수 있다.

▲ 퇴근하는 개성공단 노동자들 ⓒ개성공동취재단

프레시안 : 공단 설립 초기에 임금을 근로자들에게 직접 주는 '직불제' 논의에 착수했다고 하는데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경빈 : 개성공단 착공 당시 남한 기업주는 북한 근로자에게 보수를 직접 주겠다고 했다. 직접 주는 방법은 두 가지다. 달러를 주거나 아니면 북한 돈을 주는 방식이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북한은 외환 집중관리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달러로 지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북한 돈으로 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한 기업이 북한의 은행에 가서 환전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건 남한의 법 체계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직불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외환관리 시스템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는 전체적으로 외환 관리 시스템을 뜯어 고치는 게 쉽지 않다면, 제한적으로 개성 부근만이라도 푸는 방식을 요구했다.

우리가 임금직불제, 인터넷 연결 등을 북한에 요구할 때 가장 주요하게 썼던 카드가 개성공단의 확장 가능성이었다. 우리는 북한에 "너희들이 우리 요구 들어주면 개성공단을 확장할 수 있다"는 카드를 활용했다.

물론 북한은 "우리는 군부 설득해서 (남한이 요구하는) 이런 저런 사항을 다 들어줬는데 너희들은 투자한다고 해봐야 공장 몇 개 세운 것밖에 더 있느냐"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 우리는 단순히 공장 몇 개를 짓는 게 아니고, 공단의 기반 시설을 만드는 데 시간이 소요된 것이며, 북한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보장해주면 공장이 들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북한은 확장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요구를 검토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 진지하게 토의를 하기도 했다.

당시 협의를 하면서 우리의 요구가 관철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선 남한 기업의 수요가 있었기 때문에 개성공단은 확장이 가능했고, 북한 역시 임금직불제가 시행되면 공단이 확장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임금직불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또 북한은 이미 개성이라는 전방을 내어주는, 임금직불제보다 훨씬 어려운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래서 개성지역만 특화해서 임금직불제를 시행하자는 요구 정도는 북한이 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는 개성공단을 확장할 수 없다는 것이 남한의 정책으로 자리잡으면서 북한은 우리 요구를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남한이 먼저 확장 가능성을 닫아버리니까 북한도 남한에 더 기대할 것이 없어졌고, 고로 자신들도 남한에 해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남북관계가 다시 좋아진다면 얼마든지 모멘텀을 살릴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이 모멘텀이 끊어진 상황이다.

사실 현재의 개성공단은 당시 정부가 기대했던 것을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상태다. 현재의 개성공단은 그저 남한의 공장일 뿐이다. 북한 땅과 근로자를 이용한다는 것뿐이지, 북한 경제에 미치는 확산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1980년대 특구를 만들었을 때, 그 특구들은 해외와 거래를 했을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와도 연계망이 있었다. 중간재를 중국 내부에 있는 공장에서 만들어서 특구 공장에서 외국 자본과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 특구가 성장하면 중국 내부의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됐다.

그런데 개성공단은 이러한 과정이 없이 임금만 투입되는 형식이었다. 그 임금이 개성에 있는 소위 '장마당'을 활성화하는 효과 정도만 있었지, 공단과 북한 내부 공장 간에 연계가 없었다. 하다못해 북한 내부 공장에 하청이라도 줘서 물건을 만들어 왔다면, 개성공단이 발전하면 개성을 비롯한 북한 내부에 있는 공장도 발전하는 이른바 '연계효과'를 구현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이조차 전무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개성공단의 위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당장 최근에만 해도 지난 2013년 공단 가동이 잠정 중단되면서 위기를 겪었다. 지난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도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압력이 있었다는데?

고경빈 :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개성공단을 닫으라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국 정부에 요구한 것 같지는 않지만, 미국 쪽에서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특히 초대 북한 인권 대사였던 제이 레프코비치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노예 노동을 하고 있고 인권 착취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이게 참 터무니없게 들렸다. 남한이 북한 주민들을 노예로 부려먹으면서 착취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레프코비치의 논리는 이랬다. 개성공단의 초창기 임금이 50달러였는데, 그걸 한 달로 나누면 하루 임금이 고작 1~2달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성공단 임금은 북한의 다른 지역 임금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또 근로 환경 등은 '국제 스탠더드'에 맞춘 공단이었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레프코비치 대사를 개성공단에 초대했다. 직접 눈으로 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해 비판적인 인사의 출입을 허가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초대장을 받아냈다. 그런데 레프코비치 대사는 결국 오지 않았다.
개성공단을 둘러싸고 이렇듯 한미 간에 조금 껄끄러운 여론들이 있었다. 그러다 한미 FTA 추진 과정에서 정부 간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개성공단 지원단장이었던 저는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개성공단은 비록 북한 땅에 있지만, 전부 우리 공장이고 원자재도 남쪽에서 올라가며, 제품도 모두 남쪽으로 온다는 이유였다. 북한은 임금만 받고 있기 때문에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물건은 사실상 한국의 공장에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 인권과 핵 문제 등 여러 상황들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면서 이 문제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개성공단 제품과 관련한 협상팀을 돕기 위해 미국 수도인 워싱턴에서 개성공단 설명회를 하기로 결정했다. 저와 개성공단 관리워원장을 비롯해 전문가, 관계자들이 팀을 짜서 한 달을 준비했다. 설명자료와 보도자료, Q&A 자료 등을 잔뜩 가져가서 공개 세미나도 하고 미국의 국무부와 상무부, 국방부 관리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과정에서 개성공단의 유익한 점들을 많이 강조했다.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안보적으로도 상당한 이점이 있음을 설명했다. 한국전쟁 때 개성을 뺏겨서 휴전선이 상당히 남쪽으로 내려와 있고, 이 때문에 수도권 안보에 취약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지역을 산업단지로 만든 것은 수도권 방위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 개성공단 전경 ⓒ개성공동취재단

북한 근로자들의 노동 환경과 관련, 좋은 근로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남북 주민이 직접 접촉을 통해 상호 적대감도 낮추는 장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또 북한이 개성공단 운영을 통해 자본주의 운영 방식을 학습하는 장이라는 측면도 강조했다.

이렇게 설명하는 과정에서 개성공단은 좋은 모델이다, 핵이나 미사일과 상관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설사 핵과 미사일로 인해 북한에 제재가 필요하더라도, 제재라는 것이 북한의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기위한 목적이라면 북한의 좋은 행동에 대해서는 격려하고 나쁜 행동을 제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 좋은 행동, 나쁜 행동 모두 제재하면 북한이 막다른 골목에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식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그렇지만 정부는 북한의 행동을 바꿔야 한다면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양자 제재를 선택했다.

고경빈 : 개성공단 임금이 대량살상무기의 자금줄이 됐다는 정부의 판단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의혹을 충분히 가질 수는 있지만 이를 확대해석한, 현명하지 못한 판단이었다고 본다.

북한 주민과 당국을 분리하자고 하지만, 주민이 언제든지 군복을 입고 군인이 될 수 있다. 임금뿐만 아니라 쌀을 줘도 군량미로 전용될 수 있는거고 신발을 줘도 군화로 전용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이 합법적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제재해서는 안 된다. 곧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나올텐데, 제재의 대상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불법 행위에 국한된다. 북한이 정당하게 돈을 버는 것까지 제재 대상에 올리지는 않는다. 북한이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정당하게 돈을 버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 북한이 나쁜 방식으로 돈을 벌지 않을 것 아닌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20년 만에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가 나왔다고 하는데 아무리 들여다봐도 개성공단은 해당이 안 된다. 그래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 비핵화 위해 쓸 수 있는 카드 다 쥐고 있어야

프레시안 : 어쨌든 개성공단 가동은 전면 중단됐다. 지난 2013년과는 다르게 정부가 전기도 끊어버리면서 사실상 폐쇄 수순으로 가고 있는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재가동 될 수 있을까?

고경빈 :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다시 개성공단과 비슷한 것을 운영한다고 하면 완전히 새로운 체제와 조건 하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설사 재가동한다고 해도 북한이 지금과 같은 임금 구조를 그대로 둘리가 없다. 분명히 임금을 높여 부를 것이다. 그런 조건이라면 개성공단에 들어가려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 산업구조도 바뀌고 있고 국제 경제 역시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많지 않을 것이다.

벌써 두 차례나 휘청거린 개성공단이 장기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유인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은 더 많은 요구 조건을 내놓을 것이다. 법률 체계마저 달라진 상황에서 기존과 같은 방식은 어려워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 정책에 대해 찬성하거나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이 현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의 핵 문제다. 북한의 핵 문제 때문에 개성공단을 폐쇄한 것이기도 하고, 거꾸로 공단 폐쇄의 정당성을 얻으려면 북한 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 개성공단 남한 인원들이 11일 밤 도라산 출입사무소를 통과해 남한으로 들어오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런데 북핵 문제를 해결을 위해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과 같은 제재로 가능할지 의문이다.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북핵 문제는 2008년 이후 모두 손 놓고 있는 사안 아닌가? 제재만 해놓고 대화니 뭐니 아무것도 없이 방치해 놓았던 지난 7년 동안 북한은 3번의 핵 실험을 추가로 실시했다. 게다가 헌법까지 개정해서 핵 보유국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정부가 개성공단을 희생해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멘텀을 만들 생각이라면, 그런 모멘텀을 이어갈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 제재 정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면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별로 높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평화협정 체제의 숨은 의도나 위험성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왜 평화협정 카드는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옵션에 올려놓지 않는지 모르겠다. 개성공단까지 희생시킨 마당에, 모든 카드를 다 놓고 북핵을 저지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설사 북한이 평화협정의 숨은 의도로 주한미군 철수를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그러한 요구는 걷어내면 되는 문제다. 우리가 원하는 평화협정 체제로 북한을 이끌고 가면 된다. 평화협정 논의 자체를 '선(先) 비핵화'라는 조건으로 방치해 놓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결국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6자회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고경빈 : 형식이나 절차가 중요한 문제긴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개성공단을 폐쇄한 이유가 북한의 핵 때문이었다면, 북한이 핵을 가지는 원인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래서 북한의 안보 위협이나 우려를 그냥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전제하에 이를 진지하게 검토해보고 적극적으로 접점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6자회담 이상 더 좋았던 대안이 없긴 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가까웠던 '접점'이었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멀리 나간 것이 9.19 공동성명이었다. 그래서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도 좋지만, 그 사이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둬야 할 필요가 있다. '평화협정은 북한의 의도가 있으니까 안돼'라는 생각으로 아예 가능성을 덮어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 남북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남북관계는 한동안 활발했지만 지난 7~8년 동안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와중에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라고 이야기하는 개성공단마저 폐쇄될 상황에 놓였다. 앞으로 어떤 패러다임으로 남북관계를 가져가야 한다고 보나?

고경빈 : 어떤 경우라도 평화통일을 포기해서는 안 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한 창의적인 노력들을 많이 해야 한다. 남북관계에 대해 식상하고 지쳤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급격하게 해버리자는 인식은 위험하다. 북한 주민들이 "전쟁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북한이 내전이라도 일어나서 난리가 나든 어쨌든 간에 북한 체제가 빨리 무너지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급작스러운 상황들은 심각한 후과를 가져올 수 있다.

남북은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상당부분 손상된 상태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복원된다고 해도 새로운 시각에서 상대를 보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북은 지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부터 2007년 남북 정상회담까지 공존과 평화통일을 이야기하면서 동질성과 공통 부문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동시에 상대방이 조금만 맘에 안드는 행동을 하면 '합의했는데, 공통 부분 겨우 찾았는데 왜 또 저래?' 라면서 서로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고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잘해보려고 했는데 또 핵실험이야' 라는 식의 생각들이 하나둘 씩 쌓이면서 지금에까지 오게 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남북이 그동안 공통 부분 몇 가지를 찾은 것을 가지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확대해석한 경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재개된다면 공통부분보다는 차이점에 주목해서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노력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신뢰의 기반이 너무 많이 상실됐기 때문에 이제는 동질성, 공감대, 공통점 등에 대해 또 한 번 기대를 걸 수 있는 동력이 떨어진 상태다.

정치·군사적인 차원에서는 어려울 수 있지만 민간 차원의 비정치적인 사회·문화적인 교류에서는 서로의 차이점을 보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화교류를 하더라도 예전에는 전통 예술을 공연하고 아리랑을 부르며 손을 잡았다면, 이제는 남한의 K-pop을 북한에서 부르고, 북한의 가요를 남한에서 부르는 '차이점 보기'가 필요하다. 남북한이 서로가 정말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걸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재개되더라도 오래 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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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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