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통일' 하더니…북한 주민 버린 박근혜

개성공단 가동 중단, 북한 태도 바꿀 수 있나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실제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바꿀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0일 정부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된 현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쓰일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되었고, 작년에만도 1320억 원이 유입됐으며,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는데,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현금이 정말 북한의 무기를 만드는데 전용되고 있는 것일까? 개성공단에 유입되고 있는 현금이 핵과 대량 살상무기 개발에 쓰인 것으로 확인이 됐느냐는 질문에 정부 고위 당국자는 "그런 우려가 있었다. 얼마나 (현금이 무기 개발에) 들어갔다고 확인된 부분은 없다"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그런 우려가 있어 왔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도발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남북 경협이나 대북지원 등에서 북한에 들어가는 현금이 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근본적으로 대북 제재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북한이 대량 살상무기를 개발하는데 (현금이) 쓰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일부 쓰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은 북측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관리하는 '인민 경제' 부문"이라며 기본적으로 이 자금이 무기를 만드는 데 투입되는 자본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장 선임연구원은 오히려 이번 조치로 인해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내 노동자들을 포함, 약 20만 명에 달하는 개성 주민들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통일'을 그렇게 강조했는데, 통일이라는 미래 전략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상당한 실책"이라며 "통일의 열쇠는 남이든 북이든 일반 주민들이 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 시민들을 한국 정부가 모두 버린 셈인데, 북한을 아프게 한다는 '상징적 조치'를 위해 스스로 가지고 있는 자산을 유실시킨 전략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 지난 2013년 9월, 조업이 중단된지 5개월 만에 다시 가동에 들어간 개성공단의 한 공장 ⓒ개성공동취재단

한편으로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세컨더리 보이콧'을 선제적으로 시행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란, 핵 활동과 관련 없는 경제 활동이라도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모든 기업이나 금융회사를 제재하겠다는 방침이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이 조치는 우리가 세컨더리 보이콧을 하고 있으니 중국도 여기에 참여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인데, 중국이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반문했다.

중국의 참여를 사실상 이끌어 내기도 어렵고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현금과 핵·미사일의 직접적인 관련도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이러한 조치를 꺼낸 것에 대해 백 수석연구위원은 "결국 현 집권 세력이 개성공단 유지에 적극적인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개성공단이 유지되면서 남북관계 협력의 끈이 존재했고, 이를 통해 전쟁의 위협을 낮출 수 있는데, 지금 집권 세력은 이러한 가치를 중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 북한에게 얼마나 아플까?

홍용표 장관은 이날 정부 성명에서 "기존의 대응방식으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계획을 꺾을 수 없다. 북한이 잘못된 행동에 대해 반드시 대가를 치르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히 대응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특단의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특단'의 조치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과연 북한에게 이번 가동 중단 조치는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만큼 아픈 조치일까?

개성공단에는 북한 노동자 5만 4000여 명이 고용돼있고, 20여만 명이 개성 시민들 역시 일정 부분 공단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실제 정부의 설명대로 임금 명목으로 지난해에만 1300억 원의 돈이 북한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는 북한의 연간 무역 규모와 비교했을 때 1%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북한의 연간 대외 무역 규모는 70억에서 80억 달러, 한화로 약 8조 3000억 원에서 9조 5000억 원에 이른다.

또 현재 개성공단 노동자 중에는 숙련된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에, 가동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북한 당국은 이들을 북중 국경 지역에 위치한 공단으로 뺄 가능성도 있다. 중국 공단의 임금이 개성공단의 임금보다 1.5~2배 정도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고강도의 제재는 하지 않을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북한이 이들 나라에 노동자들을 파견한다고 해도 정부로서는 딱히 막을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핵이나 미사일에 쓰일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현금이 남한이 아닌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들어갈 가능성은 충분한 셈이다.

물론 북한이 당분간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은 "당장 노동자들을 중국으로 빼면 북한에게 금전적인 도움은 될 수 있지만, 대외 관계에서 개성공단이 갖는 상징적 가치가 있고 이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방치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노동자 임금을 받지 못해 겪는 고통보다 남한의 기업들이 조업 활동을 하지 못해 생기는 손해가 훨씬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인제대학교 김연철 교수는 "북한은 중국이라는 대체재가 있기 때문에 손실을 크게 보지 않을 수 있다"며 "북한이 임금으로 얻는 이익이 1이라면, 기업이 가동 중단으로 얻는 피해는 최소 10 정도다. 간접적인 경제 효과를 따지면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개성공단 기업들이 올리는 매출은 연간 72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공단이 가동을 중단하면 당장 이 정도의 매출은 포기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반 시설 및 공장 건축 등 투자 손실만 1조 원을 떠안게 될 수 있다.

금전적인 손실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리스크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이 폐쇄 수순을 밟으면 남북 긴장이 고조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불안과 긴장'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코리아 리스크'가 다시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개성공단이 들어서면서 후방으로 빠진 군 부대가 다시 전방으로 배치될 경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뿐만 아니라 여기에 대비하기 위한 국방 비용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남북이 '평화'를 통해 얻었던 금전적인 이익이 고스란히 서로를 없애려는 무기 경쟁 비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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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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