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힐러리에 압승…돌풍 시작?

뉴햄프셔에서 공화당 트럼프 1위…루비오는 5위로 곤두박질

아이오와주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미국 대선 경선에서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큰 격차로 따돌리며 승리를 거머쥐었다. 샌더스 돌풍이 이후 예정된 경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9일(현지 시각)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프라이머리'가 열렸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아이오와주에서 열린 코커스(당원대회)는 당원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지만, 뉴햄프셔주에서 치러진 프라이머리는 당원 외에 일반인도 경선에 참여했다.

이번 프라이머리에서 샌더스 의원은 90% 개표가 이뤄진 현재 60%를 득표해, 39% 지지에 그친 클린턴 전 장관을 20% 넘는 차이로 따돌렸다. 앞서 미국 방송 CNN과 지역방송인 WMUR가 뉴햄프셔 대학에 의뢰해 집계한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의원은 61%의 지지를 얻어 35%를 얻은 클린턴 전 장관을 26% 포인트 앞선 바 있다.

샌더스 의원은 이날 승리 연설에서 "9달 전에 여기서(뉴햄프셔)에서 선거 운동을 시작했는데, 당시 자금도 부족했고 정치적인 강력한 배경도 없었다"면서 "하지만 미국의 일반인들의 지지로 (승리를)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미국이 단순히 1% 특권층이 아니라 모든 국민의 것임을 확인했다"면서 월스트리트를 겨냥했다.

그러면서 샌더스 의원은 "나의 공약이 재원을 마련할 수 없고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투기를 일삼고 경제를 망치고 있는 월스트리트를 개혁하고 이들로부터 세금을 거둘 것"이라고 밝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샌더스 의원은 "오늘 밤에 뉴욕으로 가지만 월스트리트의 펀드 매니저들을 만날 계획은 없다"면서 "네바다와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리고 3월 1일 치러질 슈퍼화요일에 필요한 선거 자금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이는 클린턴 전 장관이 월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무제한적인 선거 자금인 '슈퍼팩'을 받고 있다는 것과 비교하면서, 샌더스 자신은 월가의 특권층이 아니라 미국의 일반 시민들이 지지하는 후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버니 샌더스 민주당 상원의원이 9일(현지시각) 프라이머리가 열린 뉴햄프셔주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화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클린턴 전 장관은 일찌감치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개표 20%가 넘어가는 시점에 패배를 시인하고 샌더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클린턴 전 장관은 투표 이후 가진 연설에서 "여러분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실제적 변화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겠다. 특히 젊은이들과 함께할 일들이 있다"면서 자신이 약세를 보이고 있는 젊은 층의 지지를 호소했다.

샌더스 의원이 클린턴 전 장관에 큰 격차로 승리하면서 본격적인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를 두고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로 표출된 민심이 이번 프라이머리를 통해 '표'로 증명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뉴햄프셔주가 샌더스 의원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버몬트주와 인접해있고 진보적 성향이 강해 일찌감치 샌더스의 강세가 점쳐졌던 지역이라, 이번 승리가 향후 경선에서 바람을 몰고올 시작점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오는 20일(현지 시각)에 치러질 다음 경선지 네바다주의 경우 이번과 같은 프라이머리가 아니라 당원대회로 치러지는 데다가, 시일이 좀 지나긴 했지만 지난해 12월 23~27일 그래비스가 집계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이 50%, 샌더스 의원이 27%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뒤이어 27일(현지 시각)에 열릴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는 이번과 같은 프라이머리로 진행되지만 역시 클린턴 전 장관이 우세한 지역이다. 가장 최근 여론조사인 미국 방송 NBC와 <월스트리트저널>, 그리고 마리스트폴이 지난 1월 17∼23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은 64%의 지지를 받아 27%에 그친 샌더스 의원을 37% 포인트 앞서고 있다.

트럼프 드디어 1위…루비오는 어디에

같은 날 치러진 공화당 프라이머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90% 넘게 개표된 현재 35%를 득표해 1위를 확정 지었다. 지난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게 1위를 뺏기고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에게 1% 차로 턱밑 추격을 허용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프라이머리에서는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9일(현지시각)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지지자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반면 지난 아이오와 당원대회에서 3위를 기록하며 '아이오와의 진정한 승리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루비오 의원은 11%의 지지로 5위에 머물렀다.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는 루비오 의원이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프라이머리에서는 이렇다 할 힘을 발휘하지 못한 셈이다.

루비오 의원의 약세는 지난 6일(현지 시각)열렸던 TV토론 때부터 감지됐다. 초선의원이자 최연소 주자인 그는 자신의 경험 부족을 비판하는 다른 후보들의 매서운 공격에 제대로 반격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토론을 마무리했다. 현지에서는 루비오의 이날 토론이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만든 주요 요인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크루즈 의원 역시 지난 아이오와 당원대회와 비교했을 때 기세가 많이 꺾인 모양새다. 그는 12%를 득표해 가까스로 3위 안에 들었지만 트럼프 후보와는 거의 3배에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크루즈와 루비오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존 케이식 오하이오 주지사였다. 그는 비록 16% 득표에 그쳤지만 트럼프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이번 프라이머리를 통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됐다.

케이식 주지사는 공화당 주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이른바 '주류 아웃사이더'로 불린다. 그는 전반적으로 공화당의 노선과 발을 맞추면서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담장을 쌓자는 강경 보수와는 선을 긋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나 테드 크루즈 후보와는 다른 온건한 보수주의자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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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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