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지도부, 트럼프 버리고 블룸버그 택하나?

[미 대선 전망] 김동석 "힐러리, '2008년 악몽' 재연 가능성은…"

2008년에 이어 대권 재도전에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최근 상승세를 타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제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을까? 각종 막말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의 최종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오는 2월 1일(현지시각) 미국의 제4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첫 관문이 시작된다. 이날 아이오와주에서 열리는 당원대회가 향후 대선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각 후보들은 아이오와주 승리를 위해 지지자 결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선 공화당의 경우 현재로써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가 유력해 보인다. 지난 24일(현지시각) 공개된 미국 방송 폭스뉴스의 조사 결과 트럼프는 아이오와 유권자의 34%의 지지를 받아, 23%의 지지를 받은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11% 포인트 차로 따돌렸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12%에 그쳤다.

오는 2월 9일에 프라이머리(비당원 참여 가능)가 열리는 뉴햄프셔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졌다. 트럼프 후보는 31%의 지지를 얻어 14%의 지지를 얻은 크루즈 후보를 두 배 이상 앞서나갔다.

▲ 썬시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유튜브 갈무리

하지만 트럼프 후보가 최종 후보로 낙점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뉴저지주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재미 한인 민간단체 시민참여센터(KACE)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25일 서울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재 공화당 주류 세력이 트럼프가 후보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고, 이로 인해 공화당이 나뉘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에서 한인 풀뿌리 유권자 운동을 펼치고 있는 김 이사는 지난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였고 2008년에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 캠프에서 '소수계 전략팀'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만큼 미국 정가와 정치 생리에 익숙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공화당 지도부가 '중재 전당대회'(brokered convention)라는 제도를 활용해 트럼프를 낙마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중재 전당대회란 공화당 대의원 2470명 중 과반인 1235명 이상의 지지를 받는 후보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당 지도부가 개입해 후보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공화당에서 중재 전당대회를 열어 후보를 선출한 것은 지난 1948년이 마지막이었다.

실제 공화당은 이러한 방식을 사용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공화당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은 14일(현지시각) 미국 의회 전문지 <더 힐>과 인터뷰에서 중재 전당대회를 언급하는 것은 "웃긴 일"이라면서도 중재 전당대회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누가 알겠나.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고 답했다.

김 이사는 "지금 공화당 지도부는 트럼프를 어떻게 잘라낼 것인지에 몰두하고 있다. 실제 공화당 지도부는 거의 반(半) 공개적으로 트럼프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화당의 의회 의원들과 주요 당직자들로 구성된 당연직 대의원(Super Delegate)들 역시 어떻게 하면 트럼프를 몰아낼 수 있을지 궁리하고 있다"면서 "트럼프나 크루즈 같은 (강경 노선을 걷는) 후보들은 당연직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공화당 지도부는 왜 트럼프나 크루즈 같은 극단적인 후보들을 끌어 내리려고 하는 걸까? 김 이사는 공화당의 분위기가 달라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라크 전쟁 이후 공화당 지도부가 중도 유권자들을 잡기 위해 국내 이슈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고 당의 정강·정책도 이같은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나 크루즈 같이 강경한 입장을 가진 후보가 실제로 표를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것이 공화당의 판단이다. 김 이사는 "공화당 내부에서는 트럼프나 크루즈 같은 후보로는 절대 본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공화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사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유력한 후보였다"며 "힐러리 전 국무장관을 상대로 싸워볼 만한 후보는 루비오였다고 판단했다. 또 본인이 히스패닉이기 때문에 히스패닉계의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내다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화당 당원들은 지도부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이사는 "지금 트럼프는 공화당 지도부를 욕하기만 해도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면서 공화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괴리가 있음을 지적했다.

김 이사는 트럼프가 과반을 달성하지 못하고 지도부가 중재 전당대회를 통해 다른 후보를 내세울 경우 "트럼프가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과 당을 나가서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공화당이 쪼개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고 내다봤다.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 선출 과정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는 가장 많은 대의원을 확보한 후보가 최종 후보로 결정된다. 대의원은 일반 대의원과 각 정당의 상·하원 의원과 중앙 및 지역 당직자 등으로 구성된 당연직 대의원(Super Delegate)으로 나뉜다.

일반 대의원은 아이오와주를 시작으로 주별로 당원대회 및 프라이머리 (비당원도 참여 가능)를 통해 선출된다. 이 때 대의원들은 오는 7월 열릴 전당대회에 어느 후보에 투표할지를 밝힌다. 당원이나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대의원에게 투표한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들은 오는 7월에 있을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투표하기로 약속한 후보에 표를 던진다. 지지후보를 약속하고 대의원에 선출됐기 때문에 전당대회는 사실상 후보를 결정하는 축제같은 분위기 속에 치러진다.

당연직 대의원은 핵심 당직자와 의회 의원들로, 민주당의 경우 이번 후보 경선 때 총 4764명의 대의원 중 713명이, 공화당의 경우 2470명이 대의원 중 437명이 당연직 대의원이다.

힐러리의 '2008년 악몽', 한 번 더?

힐러리 전 국무장관은 2008년, 첫 경선이었던 아이오와주에서 당시 초선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에게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했다. 이후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가 이어졌지만 힐러리는 결국 오바마의 돌풍을 잠재우지 못하고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런데 이같은 시나리오가 올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번 상대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 17일(현지시각) NBC 주관으로 열린 민주당 대선후보 4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왼쪽)후보와 버니 샌더스 후보 ⓒAP=연합뉴스

지난해만해도 힐러리 전 장관은 5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해 여야를 통틀어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며 '대세론'을 굳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샌더스 의원이 출마 선언 이후 진보적인 어젠다를 쏟아 내면서 순식간에 힐러리를 위협하는 대항마로 부상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힐러리와 샌더스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각) 미국 방송 CNN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이오와 주에서 샌더스가 51%의 지지를 얻어 43%에 그친 힐러리 후보를 오차 범위 밖에서 따돌렸다. 하지만 24일(현지시각) 미국 방송 CBS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샌더스 47%, 힐러리 46%로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보였다.

조사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아이오와주에서는 힐러리가 샌더스에게 다소 밀리는 양상이다. 이를 두고 김동석 상임이사는 힐러리가 민주당 주류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빌 클린턴은 표만 얻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었다. 우파적인 어젠다도 많았다. 그렇게 1990년대가 지나가 버리니까 민주당의 정체성이 없어져 버렸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금과옥조로 여기던 미국 동북부 지역의 엘리트들이 불만이 커졌다. 이에 민주당의 정체성을 살려보겠다고 나왔던 후보가 2000년 빌 브레들리 전 상원의원, 2004년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이후 2008년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최종 대선 후보로 결정되면서 잃어버렸던 민주당의 정체성이 확립됐다"

이같은 성향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 주류 세력이 있기 때문에 힐러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이사는 "민주당의 주류는 샌더스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또 엘리자베스 워렌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에서 힐러리가 샌더스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결국 힐러리가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특히 경선에서 1위가 해당 주의 모든 대의원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방식을 택하고 있는 공화당과는 달리, 민주당은 득표 비율에 따라 대의원 수를 확보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힐러리가 아이오와와 뉴햄프셔에서 근소하게 패배한다면 예상보다 샌더스의 돌풍이 거세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 이사는 "4000명이 넘는 대의원 중에 자기편을 확보하는 과정에서는 객관적인 지표에서 유리한 힐러리가 (최종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 전 시장 출마, 대선 최대 변수되나

민주·공화당의 최종 후보가 누구로 결정될지 여전히 안갯속인 가운데 지난 2001년부터 2013년까지 12년 동안 뉴욕 시장에 재임했던 마이클 블룸버그가 대선 출마를 검토하면서 미국 대선판에 또 하나의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 뉴욕시장에 당선됐고, 이후 2009년 뉴욕시장 3선 도전 당시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된 바 있다.

김동석 이사는 "블룸버그 입장에서 보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극과 극에 있는 사람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선거에 이기려면 중간 지대에 어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가 최종 후보로 결정될 경우,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중도에 가까운 블룸버그가 더 많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이사는 블룸버그 전 시장이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보다는, 공화당의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가 공화당의 최종 후보가 된다면 공화당 지도부는 후보를 블룸버그로 교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며 "공화당은 내부 분열을 수습하고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고 싶을 텐데, 여기에 블룸버그가 안성맞춤"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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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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