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만' 해결은 불가능하다"

[특별기획 : 코리아, 제2의 핵시대를 묻는다(2)] 북핵 문제, 풀리지 않는 이유

이론적으로 볼 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에는 무력 사용, 정권교체, 강압, 협상 등이 있다. 1994년과 2003년 등 한때 미국에서 대북 선제공격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미 정부 차원에서 이 방법은 더 이상 공개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있다. 북한 정권교체에 대한 미련은 여전히 팽배하지만, 이건 가능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점도 명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년을 훌쩍 넘긴 북핵 대처는 강압과 협상으로 크게 나뉜다. 강압은 '고통의 크기'를 높여 핵 포기를 강제하는 방법이다. 대북 제재와 압박이 주로 여기에 해당된다. 반면 협상은 '인센티브'를 제시해 핵 포기를 설득하는 방법이다. 핵심은 핵 포기에 대가로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주는 것이다. 흔히 이 두 가지는 '채찍론'과 '당근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부터 자제되어야 한다. 북한을 말을 듣지 않는, 그래서 길들여야 하는 '말'(horse)로 비유하는 것이야말로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이한 접근법에는 북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의 차이가 반영되어 있다. 강압적인 방식은 북한의 핵 개발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에는 보상이 없다"고 다짐한다. 대신에 북한에게 고통을 가해 잘못을 깨닫게 하거나 끝까지 잘못된 길을 고집한다면 아예 숨통을 끊으려고 한다.

반면 협상 위주의 접근은 '북핵 불용' 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북한이 핵 개발을 하는 동기와 북한의 요구에도 주목한다. 그래서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한다. 핵심은 북한에게 핵무장을 통한 안보가 아니라 '다른 방식을 통한 안보'를 제시하고 보장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 남한의 흡수통일 시도 배제 등이 포함된다.

▲ 16일 일본 도쿄 리쿠라 게스트화우스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차관 협의회에서 한국 임성남(오른쪽 부터) 외교부 제1차관, 일본 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성 사무차관, 미국 토니 블링큰 국무부 부장관이 북한 4차 핵실험 관련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해 논의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제재 만능주의가 실패하는 이유


북핵 역사를 복기해보면 제재는 길었고 협상은 짧았다. 때로는 두 가지가 병행되기도 했지만, 협상다운 협상은 거의 없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제재 만능주의가 판을 쳐왔다. 미국은 '전략적 인내'라는 무시 전략으로 일관하면서 군비 증강에 몰두해왔고, 한국은 흡수통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양국 모두 대북 제재에 몰두해왔다. 그런데 이 사이에 북한은 세 차례의 핵실험과 세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된 제재라는 수단이 그 목표를 더욱 멀게 만든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제재는 '북한에게 핵개발은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잘하고 있다'거나 '불가피하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대북 제재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북한의 결기 역시 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온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북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라고 본다.

주목해야 할 것은 또 있다. 제재의 강도를 높여 북한의 굴복이나 붕괴를 유도할 수 있는 힘은 중국에게 있다. 그런데 중국은 여기까지 가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 강경한 태도로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의 반항심만 더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탄일성에 힘입어 강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중국이 북한은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북한에게는 '불공정하다'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중국이 북한에게 핵 포기를 압박할수록, 북한에게 핵무기는 '자주의 무기'라는 속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한미일은 대북 제재 강화를 중국 역할론의 핵심으로 삼는다. 그런데 북한이 바라보는 중국 역할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건 바로 중국이 미국을 설득해 중국이 말하는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해소해달라는 것이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평화협상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도 미국을 설득하려고 종종 시도했지만, 우이독경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중국이 미국을 불신하는 본질적인 이유이자, 중국의 대북 발언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반면 인센티브를 제시해 북한과의 대담 판에 나설 수 있는 힘은 미국에게 있다.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북미 관계 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등에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미국도 여기까지 가려 하지 않는다. 협상의 성공을 자신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더 근본적이다.

핵문제라는 존재는 관계의 산물이다. 이에 따라 북핵'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상기한 다른 문제들'도' 해결될 때 비로소 북핵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은 주저하거나 마다한다. 왜? 북핵은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꽃놀이패'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결정체와 인간 의식의 상호 작용

이렇게 놓고 보면 한국이 할 일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 있다. 실제로 한국 독자적으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는 강압적인 수단도,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인센티브의 제시에도 한계는 있다. 제재 위주의 '중국 역할론'도 짝사랑에 불과하다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북핵을 이유로 군사패권주의를 강화하려는 미국을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절망감이 때때로 한국의 핵무장론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이건 '자위'가 아니라 '자해' 행위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녕 없을까? 오히려 상기한 이유 때문에 한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창의적인 해법을 만들어 관련국들의 입장을 조율·중재할 수 있는 당사자가 바로 한국이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는 미국을 설득해 '팀 스피릿' 훈련 중단 선언을 이끌어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를 탄생시켰다. 김대중 정부는 '페리 프로세스'를 주도해 북미 관계를 정상화의 문턱까지 안내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중국과 함께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 채택을 주도한 바 있다.

그 결과가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결국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된 게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을 잘 살펴봐야 한다. ‘팀 스피릿’ 훈련 중단 선언으로 만들어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는 한미 군부가 이 훈련의 재개를 선언하면서 사문화됐다. 문턱까지 갔던 북미 관계 정상화도 미국의 정권교체로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9.19 공동선언이 사문화된 결정적인 이유도 3단계에서 논의키로 했던 북핵 검증을 한미 양국이 2단계로 끌어냈던 데에 있었다. 그리고 2009년부터 협상다운 협상은 사라졌고 한국의 역할도 역방향으로 흘러왔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아니라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협상은 사라지고 북핵 능력은 커지면서 '북한은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론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물리학의 결정체인 핵무기와 변화무쌍한 인간 의식이 만나면 어떤 화학 작용을 일으킬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금까지 김정은과 핵은 부정적인 화학 작용이 주를 이뤘다. 이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김정은 정권에게 핵무장에 의한 안보가 아니라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가 훨씬 이롭다는 점을 확신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평화체제에 대한 능동적인 입장을 갖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평화체제는 그 자체로도 중대한 목적이자 비핵화의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화체제가 한국의 전략적 목표에서 사라진 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나고 있다. 오히려 평화체제를 말하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다며 '종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북핵을 이념 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쁜 버릇 때문이다.

북핵은 이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안목, 문제를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 수 있는 해법, 그리고 기어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다. 안목과 해법 그리고 의지의 삼위일체는 실력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 이런 실력을 갖춘 지도자와 정부를 뽑는 건 결국 국민의 몫이다. 실력 있는 국민이 실력 있는 정부를 만든다. 이것이야말로 '핵무기가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로 향하는 길고도 험한 여정의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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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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