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주변국과 '친구' 되기 위해 핵실험 했다?

[글로벌 아시아] 북한은 왜 핵실험을 선택했나

다음 글은 지난 18일 <글로벌 아시아>에 실린 레온 V. 시걸의 기고문(영문 번역)입니다. 시걸은 뉴욕에 위치한 미국 사회과학연구위원회 동북아협력안보프로젝트 책임자이며, <Disarming Strangers: Nuclear Diplomacy with North Korea>(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원문 보기)

북한의 4차 핵실험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소탄이나 일종의 에너지 강화장치가 아닐지라도, 이번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소형핵탄두 개발 노력에 진전을 보았다.

여기서 의문점은 왜 지금 핵실험을 했느냐이다. 언제나 안보가 최우선사항인 북한에게 기술적인 문제가 핵실험의 동기가 된 적은 없었고, 이번 핵실험도 같은 맥락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5월 30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최소한의 신뢰조차 부재하며 오랜 불신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온 북한과 미국 간의 전쟁을 막을 유일한 길은 북한이 국방능력을 강화해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향후 북한의 핵 개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협상을 통한 불신과 적대관계 완화이다.

▲ 지난 6일 북한은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를 통해 정부성명을 발표하고,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리춘희 아나운서 ⓒAP=연합뉴스

북한의 제안

최근까지 북한의 핵무장 중단 가능성은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안보에 대한 대가로 핵실험 중단에 더해 그 이상을 약속했던 북한의 제안을 오바마 정부가 고려했다면 이번 핵실험은 1년 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올해 한국 및 주변국과의 합동군사훈련을 일시적으로 중단"할 경우 "미국이 우려하는 핵실험을 임시 중단하겠다"는 2015년 1월 9일 북한 제안의 요지였다.

협상에서 내놓는 대부분의 공개 제안들이 그렇듯이, 이 제안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제안을 더 따져보지도 않고, "무언의 협박"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단 몇 시간 만에 거절해 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의 비공식 소식통에 의하면, 북한은 미국이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 중단이 아닌 조절하는 수준에서 합의를 보고, 이른바 미국의 "적대 외교"에 종지부를 찍는 수순 밟기를 통해, 6.25전쟁을 끝내는 평화 조약을 이끌어내는 작업에 착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대가로 북한은 핵실험뿐만 아니라 미사일 및 위성 발사, 영변에서의 핵분열물질 생산을 중단할 준비가 되어있던 듯했다.

이러한 접촉을 통해 2015년 1월에 미국과 북한은 비공식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었으나, 미국 측에 의해 이 구상은 무산되고 말았다. 미 정부 당국은 북한에게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보여주는 일방적 조치를 취할 것을 계속 요구했고, 거기에 대한 미국의 호혜적 조치를 배제했다. 2월 4일 다니엘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말한 바와 같이 "북한은 국제법 준수 여부를 두고 거래를 하려고 하거나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북한이 과거 협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 주장의 전제인데, 미국과 그 동맹국들 역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회피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은 또한 거의 30년간 북한이 한미·일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고자 노력해왔다는 사실, 혹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말하는 “정치적·경제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 추진”도 간과하고 있다. 북한은 이를 위해 무기 개발을 중단하거나, 합의 사항 이행이 무산될 경우 무기 개발을 재개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북한의 벼랑 끝 핵·미사일 정책은 기존의 문서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으나, 1991년에서 2003년 사이 핵분열 물질 재처리를 중단했고,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2007년에서 2009년 초까지 무기개발을 중단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김정은은 다시 한 번 관계 개선을 꾀했던 것인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과 미국 내 일각에서 생각하는 극심한 경제난이 그 이유는 아닐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지난 10년간 북한 경제는 성장해왔다. 김정은은 인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군사 부문에 투입되던 자원 및 투자를 민간 부문으로 옮겨야 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군비 지출을 감축하는 데 있어 국제안보환경이 필요했다.

그러한 정책이 실패하자, 김정은은 "억지력 강화"를 통해 재래식 병력의 군비 지출 증가 필요성을 낮추고자 했을 것이다.

이것이 "현 상황에서 경제 건설과 핵전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 이른바 병진 노선의 기반이 된 것이다. 여기서 '현 상황'이란 미국의 적대 정책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말한 "bigger bang for a buck"(지출 대비 효과가 높다는 뜻으로, 재래식 무기 대신 핵무기로 구소련을 견제하는 정책)의 김정은 버전이다.

군비지출 증가에 대한 요구로 인해 김정은이 국방 장관을 처형했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것이 "수소탄" 실험을 이행했다는 그의 과장된 주장을 설명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가 수소탄을 당·정의 공적으로 인정한 이유는 군부를 억누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 공식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은 국방위원장이 아닌 노동당 제1비서로서 핵실험 결단을 내렸고, 국방위원회가 아닌 정부가 핵실험 성공을 선언했다.

평양의 시선은 어디로

미국이 협상 전제조건을 포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김정은은 한국, 중국,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중국은 김정은과 거리를 두고 있었으나, 북한이 또 한 번의 위성 발사를 시도할 것임을 감지한 이후 골치 아픈 이웃 국가인 북한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포용을 통한 진화 작업에 나섰다. 북중 관계 냉각 심화를 바라던 한국과 미국 내 일각의 기대를 저버리고, 지난해 10월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중국 정부 고위 관료가 전달한 서한을 통해 김정은에게 "보다 긴밀한 의사소통과 협력을 추구하여 장기적으로 건실하고 안정적인 중북 관계 발전"을 모색할 것임을 전달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이 약속을 한반도 평화 안정과 6자 회담의 조속한 재개라는 중국의 이해 관계에 연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만약 김정은이 위성 발사와 핵실험을 자제했더라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성사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북중 관계는 다시 냉각되었다. 지난해 12월 10일 김정은은 공개적으로 북한이 수소탄을 보유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바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김정은이 좋아하는 모란봉악단 베이징 공연에 참석 예정이던 중국의 고위 관료들이 갑작스레 불참을 통보했고 이에 따라 모란봉 악단도 공연을 취소하고 본국으로 귀환했다.

북일, 남북 관계 또한 나을 것이 없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수십 년간 미해결로 남아 있는 일본인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보도를 통해 경제 지원 제공까지 거론됐지만 2002년 평양 선언을 통해 제시한 북한과의 근본적인 관계 개선 노력은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북한 또한 일본인 납치문제 재수사 약속을 진전시키지 못했다. 결국 북일 대화 역시 시들해졌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접촉 노력을 거듭해왔지만 박 대통령은 장단을 맞추지 못했다.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결국 벼랑 끝 전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고 지난해 8월 위기를 조장하여 대화 재개와 긴장 완화라는 결과를 끌어냈다. 하지만 이후 지난해 12월 12~13일에 걸친 후속 대화는 성과 없이 표류 상태가 되었다.

모든 외교적인 노력에도 얻을 것이 없었던 김정은은 3일 뒤에 제4차 핵실험을 준비하기로 했다. 김정은은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이웃 국가들과의 대치를 통해 강제로 이들을 친구로 만들려 할 것이다.

현재 워싱턴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제재 조치 일색이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면 결국 추가적인 핵실험만 부추기게 될 것이다. 북한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몇 개의 핵무기를 포기하길 거부한다 하더라도 북한의 핵무장 중단 의지를 점검해 본다는 의미에서 협상의 가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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