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아버지'는 이재명 편?

[기본 소득 뜯어보기] 로봇 시대의 기본 소득

"시간 파리는 화살을 좋아한다."

무슨 뜻일까. 20여 년 전, 한 번역 소프트웨어가 "Time flies like an arrow(시간은 화살처럼 흐른다)"라는 영어 문장을 번역한 결과다. 문법적으론 큰 오류가 없지만, 당연히 잘못된 번역이다. 어쩌면 창의적이다. "시간 파리"라는 우리말 표현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기계니까 가능했던 번역이다.

자동번역은 바벨탑 건설?


자동번역의 이론적 가능성이 제기된 게 1940년대다. IBM은 1954년 러시아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인간의 언어를 컴퓨터로 다루는 '자연어 처리'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그럼에도 1990년대 초의 번역 소프트웨어는 "Time flies"를 "시간 파리"로 옮겼다.

이는 인문학자들이 자동번역의 가능성을 비웃는 근거로 종종 인용됐다. 문장의 맥락, 뉘앙스 등을 파악하는 건 오로지 사람만 할 수 있다는 게다. "Time flies"를 "시간 파리"로 번역하는 오류는 그래서 생겨났다고 했다. 외국어를 모국어로 옮기는, 고도의 인문 활동을 기계로 대체하려는 시도는 성서에 나오는 '바벨탑 건설'과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공학자들의 오만이 빚어낸 환상이라는 게다.

그리고 지금, 구글 번역기에 "Time flies like an arrow"라는 문장을 입력했다.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라고, 제대로 번역한다. 여전히 오류가 많다. 하지만 개선 속도가 눈부시다.

컴퓨터가 상당히 깔끔한 번역을 할 날이 임박했다고 믿는 인문학자들이 이제는 꽤 늘었다. 20여 년 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요약' 잘하면 출세했는데


구글에 따르면, 번역 서비스 개발팀 안에 언어학자는 한 명도 없다. "통계적 기계번역(statistical machine translation; SMT)" 방식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뜻을 지닌 문장을 다양한 언어로 옮긴 사례를 온라인에서 검색한 뒤, 이를 근거로 번역어를 고르는 방식이다. "Time flies"를 "시간 파리"로도, "시간이 흐른다"로도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온라인 공간에서 전자는 드물고 후자는 흔하다. 그러니까 컴퓨터는 통계적으로 후자를 고른다. 따라서 온라인 문서의 양과 질이 확대될수록 좋은 번역이 이뤄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구글 번역 서비스의 질이 빠르게 나아지는 배경이다. 서로 다른 어족임에도, 영어-중국어 번역이 매끄러운 건 그래서다. 이들 언어로 작성된 온라인 문서가 워낙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공들여 쓴 글을 인터넷에 띄운다. 자동번역의 질도 그에 비례해서 나아진다.

여기서 핵심은 '자동'이다. 기존 번역 서비스를 그대로 둬도, 온라인 문서가 쌓이면서 자동으로 번역의 질이 나아진다. 한걸음 떨어져서 보면, 번역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학습'해서 능력을 키우는 듯하다.

인간의 지적 활동을 기계가 대체하는 사례는 번역 말고도 흔하다. 두꺼운 책을 읽고, 그걸 요약하는 과제를 했던 경험. 대개 갖고 있을 게다. 방대한 자료를 잘 요약하는 능력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기업이나 관공서의 수장이 받는 보고서는 '요약' 능력의 결정체다. '요약'을 잘 하는 사람은 학위도 빨리 받았고, 승진에도 유리했다.

그런데 '요약'도 이제는 컴퓨터가 한다. 이미 네이버가 자동요약 베타 서비스를 제공한다. 백과사전의 일부 항목을 요약해주는데, 원문보다 읽기 편하다.

'온라인 뉴스팀' 기자들의 고용 위기

요약과 번역이 가능하니까, 당연히 '글쓰기'도 된다. 외국 언론은 이미 컴퓨터가 쓴 기사를 싣고 있다. 국내에선 <파이낸셜 뉴스>가 처음으로 로봇 바이라인을 단 기사를 선보였다. 'IamFNBOT' 기자가 지난 21일부터 증시 시황 기사를 쓰고 있다. 읽어보면 사람이 쓴 기사와 별 차이가 없다.

'온라인 뉴스팀' 등의 바이라인으로 내보내는 온갖 '베껴 쓰기 기사'를 컴퓨터가 대체할 날이 가까워졌다. 연예계 가십, 증권 정보, 스포츠 경기 결과 등을 그저 전달하는 짧은 기사는 컴퓨터에게 맡기고, '사람 기자'는 보다 긴 호흡의 분석 기사를 쓰자.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지간한 해설 기사 역시 컴퓨터가 쓸 수 있다. 해설 기사란, 중요 사건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갖 전문가들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의견을 쏟아낸다. 이들 전문가들의 인적 사항을 미리 등록해두면, 중요 사건이 터졌을 때 이들의 의견을 자동으로 옮길 수 있다. 외국 언론과 정부의 반응도 마찬가지로 처리할 수 있다. 그렇게 작성한 기사를 사람이 조금만 손질하면, 괜찮은 해설 기사가 된다.

물론, 영혼에 자국을 새기는 좋은 글은 앞으로도 사람이 써야 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번역 역시 기계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문제는, 일자리다. 똑같은 기사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쏟아내는 '온라인 뉴스팀' 기자들이 당장 위태로워졌다. 포털 검색어를 따라다니는, 이런 기사가 조롱거리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런 역할을 컴퓨터에게 맡긴다고 해서, 큰 불만이 생길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고용 문제가 있을 뿐이다.

학습하는 로봇, 일자리를 깨부순다

세계경제포럼(WEF), 이른바 '다보스 포럼'이 지난 23일 막을 내렸다. '4차 산업혁명'이 포럼 주제였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을 이용한 기계화였다. 2차는 전기를 활용한 대량생산, 3차는 정보기술을 이용한 자동화를 뜻한다. '4차 산업혁명'은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이 가져온 변화다.

'4차 산업혁명'은 3차와 어떻게 다른가. 둘 다 정보기술이 낳은 변화다. 다만 '3차 산업혁명'은 컴퓨터로 정보를 계산하고 분류해서 저장하며, 검색해서 보여주는 수준에 그쳤다. '4차 산업혁명'에선 여기에 '학습'이 추가됐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자동번역이 대표적인 사례다.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학습해서 번역 능력을 키워간다. 로봇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머리 쓰는 일 가운데 상당수가 기계로 대체된다.

이번 포럼에서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기존 일자리를 깨부순다. 남성 일자리 세 개를 없애서 한 개를 만든다. 여성 일자리는 다섯 개를 없애서 한 개를 만든다. 여성은 수학, 공학 교육에서 소외돼 있던 탓에 피해가 크다.

감기인가, 난치병인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인들의 잔치인 다보스 포럼에서 일자리 대책까지 논의되지는 않았다. 일자리 파괴의 수준을 둘러싼 대화만 오갔다. 잠깐 앓고 끝나는 감기 수준이냐, 평생 고생하는 난치병이냐. 이런 논쟁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과거 일자리는 대부분 농민이었다. 농업 관련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었는데, 식량 생산은 오히려 늘어났으며 과거의 농민은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다. 이런 논리가 '4차 산업혁명'에도 적용되리라는 게 빌 게이츠의 생각이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예컨대 돌봄 노동 등이 대폭 늘어나리라는 것.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은 반대편에 섰다. "4차 산업혁명은 자본과 재능, 최고의 지식을 가진 이들에게 유리하다. 그러나 하위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불리하다. 장기적으로 중산층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 매우 심각한 위협 요소가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신노동을 기계에게 내준 뒤, 우리가 할 일은 어떤 대접 받을까

이번 포럼을 중계한 언론은 대부분 후자에 가까운 논조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일자리 파괴 후유증이 쉽게 가시지 않으리라는 게다. 감기가 아닌 난치병이라는 뜻. 이런 목소리가 돋보인 건, 빌 게이츠의 주장이 너무 허술했던 탓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수입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그러니까 기계가 사람을 완벽하게 대체해도, 사람들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할 게다. 기술 혁신이 반드시 실업 증가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빌 게이츠의 지적은 일단 옳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정신노동을 기계에게 내준 뒤, 사람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하는 노동은 어떤 대접을 받게 될까. 빌 게이츠의 주장대로라면, 앞으로 돌봄 노동 종사자는 대폭 늘어날 텐데 그들의 처우는 어떻게 될까. 이런 전망이 우울하므로, "민주주의에 매우 심각한 위협 요소"라는 진단까지 나왔다.

정말 대안이 없나. 우리 자식 세대는,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데 지식과 돈을 대는 소수 엘리트와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아무 일이나 하는 다수로 갈라진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걸까.


▲ 일본의 거대 무장로봇 구라타스. ⓒ연합뉴스

기술 전문가가 '기본 소득' 검토한 까닭?

조금 엉뚱해 보일 수 있는 대안이 거론된다. 기본 소득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돈을 나눠주는 것. 일종의 시민 배당 개념이다. 주식회사의 주주는,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한 배당을 받는다. 공동체의 주권자인 시민 역시 마찬가지 권리를 누린다는 뜻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추진하는 '청년 배당' 정책이 이런 개념이다. 역사적 뿌리가 깊은 아이디어지만, 아직은 변방이다

흥미로운 건, 이번 세계경제포럼 주제를 오랫동안 다뤘던 연구자들이 이미 기본 소득을 거론했다는 점이다. 기본 소득 주장이 녹색당 등 생태주의 진영, 또는 흑인 차별에 맞섰던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사회운동 진영에서 주로 나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례적이다. 기본 소득이 주류 엘리트의 관심사가 됐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에릭 브린욜프슨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슬론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술 변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이런 주제에 대해선 권위자로 꼽힌다. 같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앤드루 맥아피 교수는 공학자 출신이다.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기술과 운영관리학' 박사가 됐다. 우리로 치면, 산업공학의 한 분야쯤 된다.

이들 두 학자는 다양한 저술을 통해 기술 진화에 대한 기존 주류 경제학의 시각을 비판해 왔다. 기존 경제학자들은 대개 기술을 이렇게 이해했다. 'A 산업에서 기술 혁신이 일어났다. A 산업의 생산성이 B였다면, 기술 혁신 이후엔 생산성이 B 곱하기 C가 된다. 여기서 C는 상수이거나 그리 복잡하지 않은 변수다.'

이들 두 학자의 생각은 다르다. 기술 혁신은 전체 생산성에 특정 값을 곱하는 효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편향적 기술 변화'가 생겨난다. 특정 산업이나 국가 전체에 일괄적인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지식, 기술, 자본 등을 보유한 정도에 따라 각각 다른 영향을 준다.

'편향적 기술 변화'의 혜택은 지식, 기술, 자본 등을 많이 보유한 이들에게 집중된다. 기존 경제학 방법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강한 경향성이다. 따라서 이렇게 생겨난 불평등은 전통적인 거시경제학 처방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산층의 몰락은 구조적인 필연이다. 이번 세계경제포럼은 이런 시각을 공인하는 자리였다. 다만 이번 포럼에 모인 기업인들은 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 교수 등이 검토한 여러 대안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이들 두 학자는 기술이 낳은 변화를 해석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수단을 검토한다. 기술 진화라는 구조적인 이유로 생겨난 불평등이니까, 대안 역시 근본적인 성격을 띤다. 이들이 쓴 <제2의 기계시대>에서 상당한 비중을 할애해서 기본 소득을 거론한 것 역시 그래서다.

'편향적 기술 변화'와 '마이너스 소득세'

다만 이들은 기본 소득 도입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않는다. 이들이 이해하는 기본 소득은, 생존을 위한 최소 비용을 제공하는 개념인데, 인간은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이 무게를 싣는 대안은 '마이너스 소득세'(역소득세, 음의 소득세)다. 소수가 아주 높은 소득을 얻는 사회에선 다수가 평균치보다 소득이 낮다. 평균치보다 소득이 높은 소수에게 누진적으로 세금을 거둬서, 평균치보다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지급한다. 소득과 평균치의 차액에 비례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받는 돈이 '마이너스 소득세'다.

이런 방식을 완벽하게 시행하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소득이 같아진다. 그 정도가 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노동 의욕을 꺾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소득세' 주장의 목표는 소득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유지되게끔 하자는 게다.


이는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이 제안한 것과 거의 같은 개념이다. 밀튼 프리드먼? 맞다. 자유방임을 주장한 통화주의자인 밀튼 프리드먼도 '마이너스 소득세'를 주장했었다. 정부 기구를 지나치게 키우지 않고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방법이라고 본 것이다.

일각에선 밀튼 프리드먼의 구상 역시 기본 소득 개념으로 본다.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똑같은 돈을 준다"라는 원론적 개념은 아니지만, 노동 성과와 관계없이 기본적인 생계는 보장 받는다는 점에선 기본 소득의 취지와 맞닿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의 주장도 기본 소득 진영으로 볼 수 있다.

관성에 갇힌 변방 엘리트, 미국이 부러운 까닭

정부의 역할을 극도로 불신하고 자유방임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였던 밀튼 프리드먼, 기술 진화에 따른 일자리 파괴에 일찍 눈 떴던 MIT 경영대학원 교수들이 모두 기본 소득과 유사한 생각을 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시장주의 성향의 주류 엘리트가 기본 소득을 검토하거나 주장한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마케팅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 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역시 <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및 기본 소득 지급을 제안했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눈앞에 벌어지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다보니, 때론 진보적인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들이 목격한 현실, 예컨대 기술 진화에 따른 일자리 파괴에서 한국은 자유로울까. 그럴 리 없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 엘리트가 기존 관성에서 벗어나는 대안을 찾는 모습은 영 보기 힘들다. 스스로 대안을 만든 경험이 없는 변방 엘리트의 한계인 걸까. 기본 소득 논의 그 자체보다, 진보적 대안도 스스럼없이 검토하는 미국 주류 지식인들의 태도가 더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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