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 한방에 훅 간다!

[한반도 브리핑] 안보는 이념 아닌 실력의 문제

'안보는 보수적으로'. 선거가 다가오니 다시 이런 말이 떠돈다. 자신들의 기준으로 이념지도를 그리고, 정치 공학적으로 위치를 정하는 일종의 '포지션 전략'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전략이다. 참사로 끝난 한상진 교수의 '이승만 국부' 발언도 포지션 전략일 것이다.

포지션 전략은 이제 곧 역사인식에서 안보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 4차 북핵 실험이후 100일도 안 돼 치를 20대 총선에서 가장 우려할 만한 일이다. 과연 '안보는 보수적으로'라는 포지션 전략은 성공할 수 있을까?

외교안보 분야, 잘못하면 한 방에 훅 간다

선거에서 외교안보는 점수를 따는 분야가 아니라, 점수를 잃지 않아야 하는 분야다. 유권자들은 대외정책을 직접적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계 어떤 나라의 선거에서도 대외정책을 중요한 공약으로 앞세우지 않는다. 그러면 무시해도 좋을까? 그렇지 않다. 이 분야는 잘못하면 한방에 훅 갈 정도로 치명적인 요소가 있다. 국가운영의 능력이나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의 야권 단일화 과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결정적 장면은 TV토론에서 금강산 관광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 당시의 국면에서 그 말이 갖는 파괴력은 결코 적지 않았다. 그 순간 승부가 결정되었다. 일부러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안철수 후보의 발언은 금강산 관광 재개에 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과 같았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한 과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해의 부족은 포지션 전략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안 후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중간위치를 고수하려했다. 대선과정에서 북방한계선 문제는 사실의 문제였지만 안철수 후보는 중립을 표방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도 안철수 후보는 이념의 차이로 해석했다.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진 후 사람들은 안철수 후보의 외교안보 공약을 주목하지 않았다. 아마 한번 쯤 읽어보면 경악할 것이다. 국방 분야는 박근혜 후보보다 훨씬 오른쪽에 있다. 'NLL 사수와 영토주권 수호'와 같은 공약도 있다. 대한민국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부정하는 반헌법적 개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들어지고 정강정책의 작성 과정에서 '6.15 공동선언'을 삭제하려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민의 당은 다시 외교안보 분야에서 '중도보수 포지션 전략'을 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학습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호남의 지지를 포기해야 하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하겠는가?

▲ 안철수(오른쪽) 의원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마포 신당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첫 영입을 한 3명의 인사에 대한 입당을 취소하는 발표를 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안보는 보수라는 포지션 전략의 문제점은 논리적이지 않고, 다른 공약과 상충된다는 데 있다. 대북정책과 국방정책의 공약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사회경제적 공약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복지 예산의 확충이다. 재정은 제한적인데 국방비를 유지 혹은 확대해야 한다면 결국 어디에서 지출을 줄이겠는가?

끊이지 않는 방산비리를 보면서 국민이 군대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에서 무조건 국방비를 늘리자는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사회경제 분야는 진보적으로, 안보는 보수적으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안보는 '보수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튼튼하게' 해야 한다. 비효율을 제거하고 부패를 막고 효율적인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지, 아무런 정책 내용에 대한 고민 없이 포지션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보수화 경향에 대한 오해

포지션 전략의 또 다른 문제점은 보수화 경향을 매우 피상적이고 상투적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북한 관련 여론은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인식의 영역과 그런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대응의 영역이다. 인식은 대체로 보수적이다. 다만 대응의 영역은 인식의 영역과 좀 다르다. 북한에 대해서 매우 보수적이지만 그렇다고 전쟁을 하자는 여론은 높지 않다. 이 두 가지를 착각하면 안 된다.

국민 다수가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정세관리의 책임에 대해서는 정부의 정책 대응능력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 보수정부에서 남북관계 상황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낭패를 본 것은 이 두 가지의 관계를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 핵실험 직후에는 반북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보수여론에 편승해서 선거에 활용하려 할 경우 국민들은 '정부는 뭐하나'라고 묻는다. 감성적 접근과 이성적 접근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인식의 영역에서 대응의 영역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무능을 효과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야당의 실력이 있어야 한다. 공약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정보실패, 정책실패를 정확하게 비판할 수 있는 실력 말이다.

상투적인 공약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외교안보 분야를 무시해도 좋을까? 최근의 야당은 이 분야를 상투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더불어 민주당의 경제통일론 같은 공약은 하나 마나다. 틀린 말이 아니고 맞는 말이지만, 선거에서 모두에게 좋은 말은 사실 아무의 지지도 얻어내지 못한다. 공간이나 혹은 직업과 같이 구체적인 이해관계로 연결되지 않은 먼 미래의 공약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경제통일론은 기능주의적 접근이다. 기능주의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판들이 이미 존재한다. 박근혜 정부의 '과정이 생략된 결과만 있는 통일대박론'과도 차별성이 크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 공약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대만 총통선거에서 왜 민진당이 승리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대만의 젊은이들은 양안 경제교류가 가져온 제조업 공동화로 임금축소와 좋은 일자리가 감소했음을 비판했다. 경제교류의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한다. 남북경제협력도 마찬가지다. 국내 경제와 남북경제협력의 호혜적 매커니즘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세상은 변하고 세대도 변한다. 공약도 변화하는 현실과 소통해야 한다. 여러 가지 검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지만, 한 가지 예만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 안보가 직면한 문제 중에서 아무도 대비하지 않는 결정적 과제가 있다. 바로 조만간 우리가 직면할 '인구절벽'이다. 이미 대학을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인구절벽에 대비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러나 국방 분야는 아무런 준비가 없다. 병력자원 자체가 급격히 감소하는 시점이 곧 다가오는데, 여전히 병력중심의 전력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인구절벽이 닥치면 어떻게 될까? 복무 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구감소에 따른 국방전략의 재검토가 불가피하다. 이런 문제에 대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안보 분야 중에서 민생과 관계되는 복무제도나 예비군 민방위 제도 등의 개선을 위해서는 연관분야의 개혁까지 모두 검토해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안보는 이념이 아니라 실력

안보는 이념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인 데땅트를 주도한 닉슨 대통령은 한때 반공의 아이콘이었다. 고르바초프와 함께 실질적으로 냉전을 종식시킨 레이건 대통령 역시 원조보수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전두환·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북방정책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그들이 외교정책에서 족적을 남긴 것은 보수적으로 접근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외교안보 정책은 이념이 아니라 실력이 필요하다. 포지션 전략을 추구하는 세력은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정책의 이미지를 추구하기 때문에 실력을 쌓을 수 없다. 무능한 외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로 족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고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검토해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을 마련하고 이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현실은 포지션 전략이나 취할 정도로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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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김연철 인제대학교 통일학부 교수는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연구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활동했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했습니다. 저서로 <냉전의 추억>, <북한경제개혁연구>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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