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4.19, 5.18 평가 이견 없어"…6.15는?

민주당 "6.15 계승이 소모적 이념논쟁? 그게 새정치냐" 발칵

야권의 통합 신당 창당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측이 '정강정책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6.15 선언 등 구체적 사건에 대한 언급은 빼자'는 제안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민주당 내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의원은 입장을 내어 '4.19와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고 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햇볕정책'의 성과인 6.15 및 10.4 선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안철수 의원은 18일 오후 해당 논란이 불거지자 "4.19와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는 전혀 이견이 없고 그 정신을 당연히 계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당연히 (정강정책) 전문에 넣기로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새정치연합 금태섭 대변인이 전했다. 금 대변인은 기자들이 '그럼 6.15는?'이라고 묻자 "나머지 부분은 더 논의하기로 했다"고만 했다.

금 대변인은 앞서 '새정치연합이 6.15와 10.4 선언을 정강정책에서 빼자고 했다'는 보도가 나온 데 대해 "회고적으로 특정 사건을 나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해서 6.15와 10.4가 안 들어간 것이지, 그 정신을 계승하지 않겠다거나 남북 대화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관련기사 보기), 이후 안 의원이 일껏 입장을 내면서도 굳이 6.15 선언을 뺀 것이 오히려 논란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금 대변인은 해명 당시엔 4.19, 5.18 등에 대해서도 새정치연합 측이 같은 입장이라고 했다.

새정치연합 측이 '구체적 사건에 대한 언급은 모두 빼자'고 제안했다는 소식과 금 대변인의 해명 내용이 알려지면서 SNS 등 온라인에서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한 새정치연합 핵심 관계자는 "페이스북 친구들이 다 끊기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구체적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단순한 예시가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에 대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들어 있으며, 실제로 현행 헌법 전문에도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돼 있다는 점 등이 지적된다. 안 의원의 입장은 이에 대한 답변성으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정강정책분과 위원으로서 안 의원 측과의 협상 당사자인 홍익표 의원은 이에 대해 "역사적 맥락에 대한 감각이 아닐까"라며 "역사적 맥락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관련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정쟁의 대상'이라고 하는데 정치권은 늘 일정한 정쟁이 있다"고 했다. "논쟁과 대결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위축적·소극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쉽다"는 것이다.

홍 의원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저쪽(새정치연합)도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사실이나 의미를 축소하려는 것 같지는 않으면서도 '정쟁의 빌미가 될 수 있지 않냐'고 하는데, 역사적 정통성과 맥락은 정쟁의 대상과는 분리해서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새정치연합 측이 "정쟁이나 논란 자체에 대단히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대화와 타협은 충분한 논쟁 이후에 이뤄지는 것이다. 중요한 사안은 치열하게 정쟁을 하는 게 정당 본연의 임무이고, 마이클 샌들 교수의 말처럼 그런 논쟁·정쟁이 없었다면 아직도 노예 해방이 안 이뤄졌을 것"이라고 했다.

홍 의원은 협상 과정에 대해 "그쪽(새정치연합)이 6.15와 10.4 선언을 빼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곤란하다. 어렵다'고 했다"며 "우리는 '역사적 맥락이 있지 않느냐, 다음 모임을 할 때까지 자체적으로 협의하고 모이자'며 '당신들 생각을 알았으니 우리도 협의해서 정리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홍 의원은 "우리는 7.4 공동성명부터 1991년 기본합의서, 6.15, 10.4를 다 병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인데 그 쪽은 '그걸 뭐 다 하냐'는 것"이라며 "아직 서로 간에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새정치연합 측도 6.15와 10.4 선언을 완강히 부인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대화의 성과 자체를 폄하하거나 부인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 "더구나 윤영관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외교부 장관이었고, 안 의원도 여러 차례 6.15 기념행사에 참석해 '6.15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발칵…김기식 "이게 새 정치냐", 박지원 "강령 전문에 명시해야"

민주당에서는 벌써부터 격한 반발이 터져나온다. 민주당 내 최강경파로 평가받는 '더 좋은 미래' 모임의 김기식 의원은 이날 오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역사인식을 표현하는 것을 회고적인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점잖게 말해도 매우 부적절하다"고 금 대변인의 해명을 정면 재반박했다.

김 의원은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인식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현재와 미래의 문제인지를 확인하고 있지 않느냐"며 "역사인식은 현재의 진정성, 지향하는 미래 가치와 직결된 문제"라고 했다. 그는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6.15, 10.4 선언 계승으로 합의하지 않을까 싶다"고 예측하면서도 "산업화와 민주화 모두를 긍정적인 역사로 평가하자면서, 남북화해와 교류협력,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이정표가 된 역사적인 6.15, 10.4 선언을 계승하자는 것을 '낡은 것'이라고 치부하는 게 새 정치냐"고 했다.

김 의원은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차별화의 강박관념이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하다"며 "6.15, 10.4 선언을 계승한다는 것이 소모적 이념 논쟁의 대상이냐. 그건 새누리당의 입장"이라고 했다. "민생을 강조하기 위해 삭제한다는 말은 무슨 궤변인가"라고도 했다.

역시 '더 좋은 미래' 소속인 은수미 의원도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항쟁 삭제하고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한 역사'만으로 충분하다? 그것이 새 정치?"라고 물으며 "새 정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닐 터, 과거 삭제를 원하는 이유는 듣고 싶다"고 꼬집었다. 은 의원은 "(6.15 선언 등은) 논쟁적이며 구체적 사건이니 빼 달라는 입장을 (새정치연합 측으로부터) 재확인했다"며 "'사건'이 아니라 평화·민주공화국을 만들어온 '역사'이지만 이제 논의 시작이니까, 더 소통해야겠다"고 했다.

2001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대북특사로 활약했던 박지원 의원도 "논쟁을 피하려고 좋은 역사, 업적을 포기하면 안 된다"며 "새정치민주연합 정강정책에는 6.15, 10.4 선언을 계승발전시키는 명문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6.15는 7.4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출발했고, 10.4는 6.15에서 출발했다. 남북 정부 간 합의는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시민사회 출신인 이학영 의원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조차 '통일 대박'을 외치는 마당에,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룩한 통일을 위한 남북합의의 기본정신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방기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청래 의원은 "정권이 바뀌어도 전임 대통령의 남북 합의 정신을 승계해야 하거늘 하물며 같은 당에서 이래도 되는가?"라고 했다.

안철수, 논란 커지자 "역사인식 반영할 것" 물러서

결국 논란이 커지자 안 의원은 이날 민주당 상임고문단과의 만찬 회동 후에는 "지금은 서로 초안 수준으로 협의하고 있다"며 "우리들이 갖고 있는 역사 인식은 분명하다. 역사적 인식이 꼭 필요한 부분은 다 반영될 예정"이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안 의원은 "서로 간에 초안을 비교하면서 서로가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여러 가지 협의가 끝나면 공동위원장단에서 보고 심사하기로 돼 있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뉴시스>가 전했다. 만찬은 현역의원이 아닌 권노갑, 정대철, 정동영, 이부영 고문 등과 이뤄졌으며, 민주당 고문들은 안 의원에게 해당 논란에 대해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의원과 함께 만찬에 참석한 김효석 공동위원장도 "(민주당 상임고문들이) 상당히 우려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인식은 전혀 차이가 없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6.15나 10.4는 특정 사건이 아니고 우리의 역사"라며 "개인적으로는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이것은 명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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