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 미국

[주간 프레시안 뷰]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에서 분명히 드러난 한 가지는 '우리는 북한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모든 북한 전문가들이 김정은의 신년사 분석을 통해 '북한이 핵실험 등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했지만 이러한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지난 65년간 미국의 핵위협에 시달려온 북한의 안보 위기의식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북한도 세계도 모른다

또 하나 드러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세계 인식이 지극히 좁거나 잘못돼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이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중국에 대해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며 의리론을 앞세워 대북 압박 동참을 촉구한 것은 한마디로 무지의 소치입니다. 6.25전쟁 당시 건국 1년이 채 안 된 상황에서 수십만의 병사를 보내 북한을 지켜야 했던 중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모른 때문이지요.

당시 중국은 대만 정벌을 포기해야 했고, 마오쩌둥 주석의 큰 아들이 전사하는 등 막대한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 정도로 북한은 중국에게 중요한 지역입니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위안부 타결로 한미일의 대중국 군사포위망이 완성된 현 시점에서 중국이 자신의 보호막인 북한을 압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국제정치의 상식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지도자는 이런 상식조차 모르나 봅니다.

박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북핵 실험은 우리 안보에 대한 중대한 도발이자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며 동북아 지역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용납할 수 없는 도전"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래 미국 핵외교(실상은 핵공갈)의 실상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핵폭탄을 개발했으며, 이를 실제로 사용한 유일한 국가이고, 이후 지금까지도 핵무기를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핵심적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이야말로 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인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

미국의 평화운동가 조셉 거슨 박사는 <제국과 폭탄: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핵무기는 억지를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나라의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1942년 이후 핵무기 개발 단계부터 미래의 적국인 소련 견제를 염두에 두었고, 이후 1946년 이란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핵위협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수십 개 나라에 핵위협을 가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핵개발(맨해튼 프로젝트)은 독일 나치의 핵개발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됐습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저명한 과학자들이 나치의 세계 지배를 막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청원한 때문이지요. 1944년 말, 미국은 히틀러가 이미 (1942년) 핵폭탄 개발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미국 군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딴마음을 먹은 것이죠(이 때문에 훗날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핵개발 청원을 크게 후회했다고 합니다. 그는 3차례나 루즈벨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핵무기가 세계 지배를 위한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원자탄은 소련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

미국의 비판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아메리칸대학 역사학 교수인 피터 커즈닉이 함께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고 나서 러시아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 절대 아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바로 그런 토대 위에서 시작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1944년 3월 원폭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조셉 로트블랫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건 당신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말 소련에 대한 핵 선제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태평양전쟁을 일찍 종결시키기 위한, 그리하여 무고한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도 거짓말입니다. 이는 무수한 연구에서 드러났습니다. 일례로 미국 전쟁부(국방부의 전신)는 1946년 1월 작성된 보고서에서 "(일본의 항복) 결정에 이르는 토론 과정에서 미국의 원자탄 사용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 일본이 러시아의 참전에 직면하자 항복했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결과 원자탄은 관련이 없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인 셈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

원폭 투하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의 실제 위력을 시험,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흘 간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형, 우라늄형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원폭을 투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미국의 텔포드 테일러 검사는 "첫 번째 원폭 투하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습니다(미국의 원폭으로 조선인 4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전후 처리를 미국 마음대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초 소련은 대일전 참전 대가로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공동 점령을 희망했지만, 미국의 핵폭탄에 겁을 먹은 나머지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서둘러 원폭투하를 감행한(첫 원폭 실험이 성공한 후 20일만) 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후 처리 과정에서 미국은 핵무기를 앞세워 소련을 압박했습니다. 예를 들어 1945년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외무장관 회담에서 번스 미 국무장관은 몰로토프 소련 외상에게 다음과 같이 쏘아붙였습니다. 번스가 동유럽 문제에 대해 소련을 압박하자 몰로토프는 "미국도 그리스, 일본, 동남아 등에서 마음대로 하지 않느냐"면서 "당신은 코트 주머니에 원자탄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번스는 "당신은 우리 남부 사람들(번스는 사우스캐롤나이나 출신) 기질을 몰라요. 우리는 주머니에 대포를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이런 식으로 차일피일 하는 것을 당장 집어치우지 않는다면. () 원자탄을 뒷주머니에서 꺼내 바로 당신에게 안겨줄 거요"라고 말했답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핵위협을 받은 소련이 핵개발에 나서지 않았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소련과 중국 등은 바로 미국의 핵위협에 대한 자위의 수단으로 핵개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 국무부 출신의 비판적 안보전문가 윌리엄 블럼에 따르면 2차 대전 후 미국은 57개 국가의 정부를 전복했거나 전복을 시도했습니다. 이 가운데 핵 보유국은 하나도 없습니다. 리비아의 가다피나 이라크 후세인도 핵무기가 없었죠.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의 핵공갈과 정권 전복 위협을 받아온 나라입니다.

(☞관련 기사 : On North Korea’s Nuclear Test)
(☞관련 기사 : North Korea: How Many Wake-Up Calls Will It Take?)

세계에서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 북한

우선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은 북한에 63만5000톤의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4년간 사용된 폭탄보다도 많습니다. 또 치명적 피해를 일으키는 네이팜탄을 3만2000톤이나 투하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네이팜탄 사용은 세계적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사용된 양보다도 많습니다.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말처럼 한국전쟁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격 피해자들이었던 북한 주민들은 당연히 그 끔찍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수력 댐이나 저수지를 폭파해 수많은 인명을 수장시켰습니다.

당시 북한 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전략공군사령관은 1984년 미 공군역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3년 동안 북한 인구의 20%를 없앴다"고 자랑했습니다. 북한 폭격을 지지했던 국무부 관리 딘 러스크는 "북한의 움직이는 모든 것, 땅 위에 서있는 모든 건축물을 파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야말로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은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을 시작으로, 중공군에 밀려 미군이 퇴각하던 12월, 한강 이남에서 전선이 교착됐던 51년 4월, 휴전협상 중이던 5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위협을 가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에 따르면, 1945~80년 35년 동안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 구상, 협박, 준비한 일이 26회인데 이 중 한반도가 핵폭탄 사용의 목표로 정해진 것은 5회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아온 나라인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1976년 시작된 팀스피리트 한미 합동 군사훈련입니다. 이 훈련은 북한을 겨냥한 핵공격 및 상륙작전 훈련으로 미 동맹국과의 합동 군사훈련 중 최대, 최상급이며 실제 전쟁을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핵 합동 군사훈련입니다. 미국이 1976년 한반도에서 팀스피리트를 시작한 이유는 1975년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동맹 35개국이 동서 군사대결 체제의 해체를 약속한 헬싱키선언으로 유럽에서 1개 사단 이상을 동원하는 군사훈련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핵 합동 군사훈련의 무대를 한반도로 옮긴 것이죠.

팀스피리트 훈련에는 미국의 핵항공모함 두 척, 20여 척의 핵장비 함대, B-52 핵폭격기 편대, 평균 20만의 한미 지상 병력이 참여합니다. 가히 세계 최대, 최강의 군사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훈련기간이 60-90일이나 됩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 북한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모든 기관들이 국토방위태세에 들어갑니다. 매년 2, 3개월간 북한은 전시체제에 돌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팀스피리트 훈련에 따르는 미국의 핵위협을 북한은 지난 40년간, 1992년 단 한 해를 빼고, 매년 겪어왔습니다(1991년, 다음 해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이 결정되면서 남북 기본합의가 타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당시 딕 체니 국방 장관이 미 국무부 및 그레그 당시 주한 미 대사와 일체의 상의 없이 훈련 재개를 결정하자 북한은 1993년 3월 NPT 탈퇴를 선언합니다. 이로써 북핵 위기가 본격화된 것이죠). 팀스피리트 훈련에 대해 리영희 선생은 "지구상의 어느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미국이 감행하지 않은, 오로지 북한에 대해서만 계속해온 핵공격 협박"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핵위협을 받고도 핵개발을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지도자는 제 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1972년 닉슨이 남한에서 고작 미군 1개 사단을 감축하려 하자 박정희 대통령이 자체 핵개발을 시도했던 전례를 상기해보시기 바랍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약속을 위반한 오바마

북한의 4차 핵실험 엿새 후인 1월 12일, 미국은 네바다 사막에서 전술핵무기 B61-12 실험을 했습니다. 적국의 지하 핵무기 창고 또는 핵실험장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미국은 또한 300억 달러를 들여 핵탄두 탑재 순항미사일 등 1천개의 신형 핵무기 개발 계획을 밝혔습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약속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의 심각한 약속 위반 행위입니다.

그는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주제의 연설을 한 대가로 그해 12월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그는 "미국의 안보전략에서 핵무기의 역할을 줄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010년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New START) 협상에서도 "미국은 새로운 핵탄두를 개발하거나 핵무기의 새로운 군사적 역할, 능력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재차 약속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2015년 9월 향후 30년간 1조 달러를 들여 핵무기 현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기에는 핵무기를 이용한 패권 유지 외에 다른 동기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군산복합체의 이윤 추구입니다.

(☞관련 기사 : 오바마, 북한에 '스마트 핵폭탄' 타격하려나? )

▲ B61-12의 낙하 장면 ⓒnytimes.com


핵무기 생산은 미 군산복합체의 황금 알

2015년 9월 핵무기 현대화 계획이 발표된 직후인 9월 22일 조나선 킹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 평화운동가들은 진보매체 <톰디스패치>에 기고한 글 "파멸의 사유화(Privatizing the Apocalypse): 핵무기산업은 어떻게 미 국민의 세금을 착취하는가"라는 글을 통해 핵무기가 미 군산복합체의 엄청난 이윤의 원천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미국에서 핵무기 등 군사무기는 정부가 아닌 민간기업이 생산합니다. 그리고 무기를 정부에 납품하면서 엄청난 이윤을 보장받습니다. 경쟁 입찰이 아니라 생산 비용에 일정 규모의 이윤을 얹어서 정부가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개발, 제작 과정에서 비용이 아무리 늘어나도 정부가 모두 감당합니다. 수억 달러를 들인 개발이 실패해도 모든 개발 비용을 정부가 부담합니다. 당연히 핵무기 개발, 유지, 보수 등은 엄청난 이윤이 남는 사업입니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 하는 장사가 바로 미국의 군수산업입니다. 특히 핵무기가 그러합니다. 그런 만큼 그 실상은 일반에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록히드 마틴, 보잉, 노스럽 그루먼, 제네럴 다이내믹스 등 미국 핵무기 기업의 목표는 딱 한 가지입니다. 계속해서 핵무기를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막대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이란, 북한 등의 핵위협을 엄청나게 과장해서 미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합니다. 그래야 핵무기를 계속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란은 단 한 차례도 핵무기 실험을 하지 않았고, 북한은 고작 4차례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위협인 양 과장합니다. 미국은 그동안 1000회 이상의 핵실험을 했고, 지금도 임계점 이하의 핵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하지 않았는데도 미국의 책임은 모른 체 합니다.

(☞관련 기사 : Does North Korea Need Nukes to Deter US Aggression?)


미국 핵무기 기업의 장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미 의회예산처(CBO)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2015-2024년 10년간 348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연간 350억 달러(약 42조 원) 쯤 됩니다. 핵무기는 그야말로 미 군산복합체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셈입니다. 당연히 의회 등에 대해 막강한 로비를 합니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총선에서 14개 군수기업이 의원에게 뿌린 정치자금이 300만 달러 정도입니다. 2015년에는 718명의 군수산업 로비스트가 6700만 달러의 정치자금을 살포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핵무기를 생산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통해 돈벌이를 하기 위해 엄청난 돈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핵무기는 21세기 지구 현안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의 핵무기는 지구의 온갖 문제들을 해결할 수단이 될 수 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지난 2012년 제임스 카트라이트 전 합참 부의장을 위원장으로 한 정부 고위 위원회는 핵무기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깡패국가, 실패국가, 핵확산, 지역 갈등, 테러리즘, 사이버전쟁, 조직범죄, 지역갈등에 따른 대규모 난민, 전염병, 기후 변화 등 21세기의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미국의) 핵무기가 쓸모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 핵무기는 문제의 해결책이기보다는 그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관련 기사 : Tomgram: Krushnic and King, The Corporate Nuclear Complex)

결국 미국의 패권 유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미 국민이 희생되는 것은 물론 인류 전체가 파멸할 수도 있는 미국의 핵무기 생산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계속된다. 집단안보만이 해결책"

호주의 핵안보전문가 피터 헤이스 노틸러스연구소 소장은 지난 11일 <글로벌 아시아> 기고문(North Korean Power and Kim Jong Un’s Smaller H-Bomb)을 통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습니다.

'첫째, 이번 핵실험은 군사적이기보다는 심리적 의미가 있다. 북한이 아직 장거리 탄도 미사일 등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운반수단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북한의 자위력 과시, 대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사기 앙양에 이용될 것이다.

둘째, 북한 신년사를 분석한 결과 김정은은 앞으로 청년세대들을 새로운 정치 주역으로 내세울 것이며 핵개발과 경제 발전의 병진 노선을 계속할 것이다.

셋째, 북한이 군사적으로 의미 있는 핵운반 수단을 확보하려면 앞으로 5~15년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 등은 동북아 집단 안보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가 이런 길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관련 기사 : North Korean Power and Kim Jong Un’s Smaller H-Bomb)

결국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최악의 경우 남북은 물론 미중 간 군사 대결이 현실화될지도 모릅니다. 1950년의 한국전쟁은 북한의 선공으로 남북 대결로 시작했지만, 결국 미중 군사 대결로 비화됐고 이 때문에 미중 관계는 20년간 군사 대결 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베트남전쟁도 사실은 중국의 팽창을 막겠다는 미국의 잘못된 상황 판단에서 30년이나 계속됐습니다. 1972년 미중 화해 이후 30년간 불안하게 지속됐던 동아시아의 평화는 이제 북한 붕괴를 노리는 한미의 압력과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일로 매진하는 북한의 대결 속에 새로운 전쟁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의 위기 상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은 누구나 알듯이 북미 관계 정상화입니다. 이를 위해 앞장 서야 할 나라는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이 나서서 남북 관계를 개선하고 북미 화해를 중재해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지금처럼 한국이 미국의 대중 군사 대결 노선을 추종하다가는 한국의 미중 군사 대결의 선봉장으로 떠밀려 한반도는 또 다시 전쟁의 참화에 휘말릴 수도 있습니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각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인규

서울대학교를 나와 경향신문에서 워싱턴 특파원, 국제부 차장을 지내다 2001년 프레시안을 창간했다. 편집국장을 거쳐 2003년부터 대표이사로 재직했고, 2013년 프레시안이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이사장을 맡았다. 남북관계 및 국제정세에 대한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연재를 계속하고 있다. 현재 프레시안 상임고문을 맡고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