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캠페인' 아닌 '무브먼트' 할 때다"

[주간 프레시안 뷰] "야당 심판 위해 총선 패배 감수"?…"정말 나쁜 주장!"

"새로운 스타일, 담대한 정책으로 승부해야"

요즘 국회정론관이 '탈당 기자회견장'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권발 정치권의 분열이 점점 가열되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둔 정국을 본의 아니게 야당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달 간 소셜 빅데이터 언급량을 보면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이 나란히 82만 건을 기록해 박근혜 대통령의 62만 건을 큰 차이로 앞질렀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고작 18만 건에 그쳤습니다.

오늘은 '혈혈단신' 광야로 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안철수 의원(이하 직책 생략)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기회가 닿으면 다음엔 더불어민주당 이야기를 할 생각입니다.

저도 이른바 '86세대'인데요, 주변에 안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안철수를 우호적으로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눈총을 받곤 합니다. 소셜미디어 등에서는 강력한 비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철수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미래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이 제약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용기를 내봅니다.

새정치를 향한 '일말의 가능성'

안철수는 제게 여전히 새로운 정치를 향한 '일말의 가능성'입니다. 안철수가 지금까지 뭘 했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는 안철수보다 정치를 훨씬 오래 한 사람들에게 그 질문을 되돌려주곤 합니다. 새로운 시대와의 조우에 실패한 기존 정치권의 낡은 질서가 안철수의 머뭇거림보다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대 양당의 기득권 체제가 안철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죠. 나아가 서울시장, 대선, 당 대표 등 세 번의 커다란 양보와 실패가 정치인 안철수의 성장에 큰 동력이 됐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이번 신당을 통해 스스로 확고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겠지요.

저는 안철수의 새정치연합 탈당을 적극 반대했습니다. 그의 조기전대 요구도 반대했습니다. 동시에 문재인 대표의 백의종군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새누리당의 확장을 막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분열은 패배를 향한 '산수'입니다. 분열을 막기 위해서는 각자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내려놓는 과정을 통해서만 시너지를 일으키는 '문-안 연대'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생기는 의외성과 절실함을 동력삼아 총선에 임한다면 어렵지만 뭔가 기회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습니다.

안철수신당 지지율에 안철수 본인도 깜짝 놀랐을 것

▲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1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식당에서 지역 어르신들에게 떡국을 대접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새정치연합에서 의원 20명이 탈당해도 그것은 탈당이고 안철수 한 명이 탈당하면 그것은 분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인 안철수는 여전히 그만큼의 상징적 가치를 갖고 있었던 셈이죠. 이것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탈당 이후 모두가 놀랐죠. 의외로 안철수의 존재감이 여전했던 것입니다. 만들어지지도 않은 안철수신당 지지율이 20% 가까이 나오는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나중에 물어볼 일이지만 이른바 친노 주류뿐 아니라 안철수 의원 자신도 깜짝 놀라지 않았을까요? 어쨌든 현실은 '1여다야' 구도로 정리됐습니다.

안철수신당은 이제 현실입니다. 그것의 미래는 오직 안철수와 신당 추진 세력 하기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안철수의 주장대로 신당의 출현 가능성만으로도 새누리당의 40% 콘크리트 지지율이 무너졌습니다. 신당 지지율 20%가 탈당 컨벤션 효과든 그렇지 않든 정치적 유동성을 한껏 키우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 지지자들은 불안하기만 하죠. 이러다 새누리당에 개헌선을 넘겨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이 도처에 있습니다. 야권연대론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총선승리를 위해 야권연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옛날 사고방식이다. 저한테는 거대 양당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말로 들린다."

안철수가 최근에 한 말입니다. 그는 "그러면 제가 탈당하기 전에 1:1 상황에서 이길 수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더 간절해졌습니다. 간절합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야권연대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이 모두 이해됩니다. 하지만 지금 신당은 신당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연대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죠. 이번에도 야권이 자신의 정치적 목표와 어젠다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공학적인 연대론에만 매달린다면 더 절망적인 패배를 맛볼 가능성이 큽니다.

안철수신당은 어떻게 해야 신기루를 넘어 강력한 실체가 될 수 있을까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자유입니다. 가령 박영선, 김부겸 같은 참신한 야당 정치인이 합류하고 여기에 유승민, 정의화 등 개혁적 보수가 힘을 합치면 보다 강력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 같은 것입니다. 상상은 짜릿하지만 지금은 공허한 얘기죠. 가능성도 낮거니와 무엇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이민자들만으론 실패, 전혀 다른 새로움 필요

안철수신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현가능한 새로움을 찾아야 합니다. 안철수를 비롯해 핵심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찾아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근본적인 혁신 없이 명망가 영입에만 올인한다면 그저그런 정치세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 성공 가능성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캠페인(campaign)이 아니라 무브먼트(movement)가 필요합니다. 200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오바마가 캠프 구성원들을 깜짝 놀라게 한 말이기도 하죠. 총선 전에 안철수신당이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캠페인을 넘어서는 무브먼트가 필요합니다. 의외성과 강인함, 피부에 와닿는 강력한 메시지로 국민들의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확장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시작하는 스타일이 달라야 합니다.

흔히 시작할 때가 제일 어렵다고 하는데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지금이 가장 좋은 조건일 수 있습니다. 앞으론 더 큰 어려움들에 직면할 것입니다. 시작이 달라야 흐름을 탈 수 있습니다.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는 "시작을 시작한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죠. '강철수' 이미지를 쌓고 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최근의 모습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국민적 열정을 쓸어담기엔 아직 한참 모자라죠.

20대에게 "안철수가 어떻게 하면 관심을 끌겠나"라고 물어봤더니 "일단 후드티를 입은 안철수를 보고싶다"고 했습니다. 또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일정한 시간에 실시간으로 연결돼 있었으면 한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제안이죠. 제3당으로 출발한 캐나다 자유당이 총선에서 야권연대 없이 압승을 거둔 첫 번째 요인이 트뤼도의 시작이 기존 정치인들과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태도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트뤼도는 기존 정치의 오소독스(orthodox, 정통파) 이미지를 과감히 뛰어넘어 국민 속으로 돌진했습니다. 트뤼도의 11주 캠페인 랠리의 첫 시작은 게이 퍼레이드 참가였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활기찬 모습으로 군중 속에 점프했습니다. 의상도 캐주얼했죠. 기존 정치와 다르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첫 번째 메시지는 다르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적어도 지루한 것은 낡게 느껴지니까요.

둘째, 담대하고 용감한 정책을 말해야 합니다.

도전자는 '볼드(Bold)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담대해져야죠. 이것은 단순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깜짝 놀랄만한 정책으로 어젠다를 선점하고 프레임을 주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정성장론' 같은 이야기는 뭔가 지루하고 복잡한 학문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안에 아무리 좋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해도 그렇습니다. 무엇을 할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캐나다 주류 언론의 트뤼도 승리원인 분석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제성장과 실업 해결을 위해 적자재정으로 투자를 하겠다는 임팩트 있고 이해하기 쉬운 정책에 국민들이 적극 호응했다. 이것이 신민주당의 기운빠지고 몸사리는 듯한 정책과 뚜렷한 차별점을 이뤘다."

캐나다 자유당은 열에 아홉 가정이 혜택을 입는 자녀 양육비지원 정책, 상위 1% 부자증세로 중산층 소득세 감면 등 담대하면서도 심플한 정책 메시지로 '진짜 변화'를 역설했습니다. 심지어 중산층 소득세 감면 공약은 취임 후 100일 안에 이행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은 실제로 지켜졌습니다. 한국의 오래된 학자들의 숲에서 이런 어젠다들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셋째, 박근혜 정부에 대해 무례하진 않지만 충분히 불편할 정도의 날선 비판을 가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안철수에게 가장 부족한 지점이기도 하고 진보 진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핵심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최근 슬로건 정치라는 새누리당의 비판에 대해 안철수는 "새누리당에서 하실 말씀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난 8년간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이면 거기에 대해서 정말로 사죄하고 실사구시적인 정책을 말씀을 해 주셔야 합니다"라고 강하게 대응했죠. 더 자주, 더 강하게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총선은 집권당의 실패를 심판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넷째, 자신에게 비판적인 '86운동권' 정서도 껴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현명한 정치지도자라면 정치인과 지지자를 분리해 생각하고 대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운동권 정서를 갖고 있는 40~50대의 많은 유권자들은 민주주의 헌신 과정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그들의 노력이 있기 전에 우리는 대통령조차 내 손으로 뽑지 못하는 정치 상황에 있었습니다. 정치인이라면 그 누구도 민주주의를 위한 위대한 헌신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둔 2017년 6월은 86들의 자랑스런 역사인 6월민주항쟁 30돌이기도 합니다. 낡은 패권주의 문화를 비판하는 것과 유권자들의 헌신을 존중하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다섯째, 참신한 뉴미디어 전략으로 정치 문화의 신기원을 열어야 합니다.

새로움은 말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문화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가 되려면 새로운 미디어 환경을 무기로 풀뿌리조직이 성장해야 합니다. 당위가 아니라 존재로서의 새정치가 시작되는 시점은 바로 이 지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뉴미디어 캠페인 전략에 대해서는 다음 번 칼럼 주제로 다뤄볼 생각입니다.

당분간 탈당은 계속 이어지겠죠? 하지만 정치적 이민자들을 수용하는 것만으로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길을 가야 합니다. 실패의 길은 넓고 성공의 길은 좁습니다. 더 어려운 것은 실패를 각오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창의적인 선거연합의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연대의 꿈을 미리 포기하지는 말기 바랍니다. "야당(더불어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 총선 패배를 감수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은 매우 기계론적인 패배주의입니다. 정말 나쁜 주장입니다.

선거는 전부 아니면 전무인 가혹한 승부입니다. 부디 야권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기 바랍니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결코 다음으로 미룰 수 없는 정치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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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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