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굴욕 협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

[정욱식 칼럼] 누구를, 무엇을 위한 위안부 협상 타결인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위안부 협상 타결인가? 미국을, 한-미-일 삼각동맹을 위한 야합이다.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50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미국은 한-일 양국에게 관계 정상화를 독촉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구축해 아시아에서 반공 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 때문이었다. 그 결과 한-일 협정은 위안부를 포함한 일제 시대 피해자들의 고통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말았다. 첫 단추를 잘못 꿴 한-일 관계는 이후 50년간 부침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의도는 충족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진 닉슨 행정부는 '아시아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취지로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뒤이어 미국과 중국은 '공동의 적'인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전략적 제휴를 맺었고, 이에 놀란 일본은 베이징으로 날아가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미-중 데탕트의 압력에 밀려 남북한도 7.4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소련도 전략 무기 제한 협정을 맺는 등 데탕트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한-미-일 삼각동맹을 밀어붙일 전략적 동기도 약화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삼각동맹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G2로 성장한 중국을 의식한 전략이다.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선언한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군사적으로는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를 핵심적인 두 축으로 삼아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14년 3월 한-미-일 정상 회담을 주도하면서 "3국 간의 군사적 결속"을 촉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걸림돌은 한-일 관계였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미국에겐 '앓던 이'였다. 그래서 미국은 한-일 양국을 동시에 압박했다. 한발씩 양보해 조속히 위안부 문제를 타결 지으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 "최종적이고도 불가역적인" 합의가 나왔다. 외교에는 완승이 없다지만, 미국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는 '명분'과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에 일대 진전을 가져왔다는 '실리'를 모두 갖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그 동조자들이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아직 이르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 가운데 상당수는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도 이번 합의를 결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치적 목적에 따라 피해자들의 호소를 외면한 한-미-일 정부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 한일 외교 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28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기자 회견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결코 최종적일 수도, 불가역적일 수도 없는 합의를 해놓고 한-미-일 정상은 '미래로 가자'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 미래란 과연 무엇인가? 위안부는 일본 군국주의의 야만적인 전쟁 범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일본이 평화헌법을 준수하면서 그 정신을 아시아와 세계로 확대시키는 것이 진정한 과거사 청산일 게다. 하지만 이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 일본은 이번 합의를 거치면서 군사 대국화를 향해 더욱 매진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부각된 데에는 한국의 민주화와 더불어 세계적 수준의 탈냉전이 진행된 배경도 크게 작용했다. 탈냉전은 제국주의와 냉전 시대를 인권 중심의 시각으로 재조명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위안부 합의는 이미 그 기운이 싹트고 있는 동아시아 신냉전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앓던 이'를 뺀 미국은 본격적으로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진할 것이고, 북한, 중국, 러시아도 맞대응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바마는 내년 3월 미국에서 열리는 핵 안보 정상 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자 정상 회담을 개최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오바마-아베는 한-미-일이 새로운 미래를 열게 되었다고 선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새로움이란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들이 아시아를 분단시키는 평화가 없는 냉전으로의 회귀'를 알리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남북한을 가르는 휴전선은 동북아의 세력 균형 선으로서의 성격이 더욱 강해지면서 통일은 더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정학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미래를 거부하고자 하는 한국 국민들의 의지가 결연하게 모이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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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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