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다나의원, 시민은 무섭다

[전진한의 알 권리] 반복되는 '참사' 무너지는 정부 신뢰

최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지난 8월에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행한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를 보면, 2014년 기준 한국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34%로 조사 대상 41개국 가운데 하위권인 26위에 머물렀다. 더 이상 시민들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국내에서 반복되고 있는 각종 '참사'와 '사태'가 그 원인으로 보인다. 시민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서 각가지 부작용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2015년 시민들이 경험했던 사태들을 되짚어 보고, 정부의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상적 트라우마

큰 아들(초등5학년)은 올해 유독 학교 등 여러 곳에서 캠프 기회가 많았다. 캠프 전날 들뜬 마음으로 짐을 꾸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트라우마가 내 가슴을 헤집곤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긴 병이다. '캠프 주최는 어디인가. 버스는 신형인가. 숙소 화재 예방 시설은 잘되어 있는가. 물놀이 시설은 안전한가' 온갖 질문과 걱정이 밀려왔다.

수없이 학교에 문의 전화를 하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던 것이 몇 번인지 모른다. 이런 걱정은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계속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부모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 트라우마가 사회를 깊게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프레시안(최형락)

메르스 사태

2015년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보건 당국과 병원들이 방심하는 순간, 메르스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는 메르스 환자가 머물렀던 병원이 어딘지 추리하는 글로 가득 찼다. 정부에서는 쓸데없는 불안감이라며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우리나라 최상층이 살고 있는 강남의 한 초등학교가 휴교령을 내렸다. 타 지역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학부모가 분노했다. 정부에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왜 강남에 있는 학교가 가장 먼저 휴교령을 내리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수많은 항의가 전달된 후 교육 당국은 연쇄 휴교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확진 환자가 경유한 병원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를 반대하는 보건복지부의 갈등은 메르스사태의 정점이었다. 이 갈등 속에서 <프레시안>을 비롯한 독립 언론이 병원 명단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그 명단에는 삼성서울병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강남의 한 초등학교의 휴교령은 매우 정확한 정보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 일로 또 다시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해야 했고, 내 식구들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대가로 메르스는 계속 퍼져나갔다. 그 결과 186명이 감염되었고, 이중 38명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38명의 고인들은 가족들과 작별인사도 장례식도 치루지 못한 채 화장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나의원 사태와 무책임의 반복

서울 양천구의 '다나의원'에서 C형 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2월 현재까지 총 82명의 C형 간염 환자가 '다나의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에서는 이 환자들의 치료비가 4000만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누가 어떤 방법으로 보상해야 할지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이 병원에서 총 진료 받은 환자수가 2000명이 넘는다는 점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장기간 지속된 주사기 재사용과 관련한 혈류 감염으로 C형 감염사태를 유발시켰고, 향후 이를 예방하기 위해 의료면허 신고제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국가의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병원 평가 정보에 따르면, '다나의원'은 2010년~2015년까지 주사제 처방 비율이 최저 83%에서 최고 99%(2013년 상반기)까지 기록하고 있었으나 보건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의원급 평균 주사제 처방 비율 20%). 참고로 아이들이 다니는 송파 방이동 모 소아청소년의원은 주사제 처방비율이 1.47%이다.

결과적으로 심평원은 이런 비정상적인 진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데이터로 알고 있었다. 언론에 공개된 것에 따르면 심평원은 2011년 4분기부터 2015년 3분기까지 총 15회의 분석 정보를 '다나의원' 측에 전달하고 자율 개선을 할 수 있도록 14번에 걸쳐 문서와 전화로 계도를 했다고 밝혔다(<청년의사> 2015년 12월 4일). 하지만 여전히 현장 확인을 포함해 보건복지부 등과 연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심평원 홈페이지에 수치를 공개한 것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에게 정확히 알리지도 않았다. 이번 사태에 심평원과 보건당국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2016년 시민의 알권리와 국가의 책임

최근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태'와 '참사'는 알 권리와 관련되어 있다. 시민의 알 권리는 사태가 터진 이후에야 겨우 확보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시민들도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와 같은 현실이 지속된다면 2016년에는 더 큰 '사태'와 '참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정부는 민간에 각종 인·허가권을 주고 있고, 관리 감독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권한만을 사용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명책임성 등은 무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 청문회에서 수많은 전·현직 공직자들의 뻔뻔한 증언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들은 더 이상 시민들의 눈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정부는 무엇인가. 정부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과 장관, 이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와 사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왜 공직자로 일을 하려고 하는지', '공직자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시민들은 그저 위태위태한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2016년도에도 시민들의 트라우마가 더욱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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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한

2002년부터 알권리운동을 해왔습니다. 주로 정보공개법 및 기록물관리법을 제도화 하고 확산하는데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나 단체들은 정보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햇볕을 비추고 싶은 것이 작은 소망입니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컨텐츠를 쉽고 재밌게 바꾸는 일을 하는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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