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노조가 아니라 경영을 잘못해서 망하죠"

[드라마 <송곳>에서 말하지 못한 이야기 ⑪]

'드라마 <송곳>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총 10화로 마무리됐습니다. 많은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연재 제목이 '미처 못한 이야기'라서 였을까요? 연재를 마치고 나니 뭔가 허전합니다. 연재에서도 미처 못한 이야기가 있는 듯했습니다. 저만 그런 걸까요. 추가로 인터뷰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김경욱 씨에게 전달했습니다. '인터뷰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이야기' 정도가 되겠죠. 김경욱 씨도 저처럼 뭔가 허전했던 듯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 다시 생각나는 이야기도 있는 법이죠.

연재가 끝날 즈음 서울 모처에서 김경욱 씨를 만났습니다. 편한 자리였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래 그와 나눈 이야기를 편집 없이 풀어보겠습니다.

프레시안 :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은 김경욱 씨에게 '노조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주었던 인물, 즉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으로 통칭되는 인물들은 '현재 어떻게 지내는가' 였습니다.

김경욱 : 다들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어요. 법률 자문을 해주었던 김재광 노무사는 여전히 노조를 대상으로 노무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와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제가 이랜드 파업 뒤, 오랫동안 해고자로 지내다 일반 회사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때 들어간 회사 전 대표이사와 현 대표이사 간 법률문제가 생겼습니다. 관련해서 김 노무사에게 도움을 얻고자 연락을 했습니다. 회사 쪽 입장에서 법률 담당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습니다. 원칙은 여전했습니다. '회사 쪽 일은 하지 않는다'. 전 대표이사를 상대로 하는 것임에도 원칙은 명확했습니다. 확고하게 노동자 일만 하는 사람이었죠. 그 정체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김경욱 씨에게 ‘노조란 무엇인가’ 강연을 해주었던 분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김경욱 : 또 다른 '구고신'인 이은영 민주노총 부천지역협의회 국장은 사무처장으로 '승진'했다고 합니다. 노동판에서 승진이 무슨 의미인가 싶지만, 그래도 그의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은 거겠죠. 박양희 부의장은 노동자교육센터를 만들고 그곳에서 강사로 활동한다고 합니다. 노동자교육센터는 조합원, 노조간부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곳입니다. 일하는 장소만 바뀌었지 하는 일은 여전합니다.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모두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죠.

프레시안 : 드라마 <송곳> 방영 이후, 김경욱 씨 삶에서 달라진 점은 없나요?

김경욱 : 달라진 거는 없죠. 대신 여러 사람에게 연락을 받았죠. 대다수가 육군사관학교 선배와 후배들이었습니다. 20년 만에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드라마 <송곳>에서 나오는 소대원에게도 연락이 왔어요. 병사들을 괴롭히던 고참들과 대립하던 상병이었죠. <송곳>을 보면서 작가의 상상으로는 그릴 수 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저를 찾았던 모양이에요. 그 사람은 군대 시절, 고참들과 갈등을 겪으며 힘든 상황에서 타협하지 않고 버티던 저의 모습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다지 좋은 소대장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찾아주니 고마웠죠.

프레시안 : 연재 기사 댓글에는 김경욱 씨와 같은 시기에 까르푸에서 근무한 분이 쓴 글도 있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라 차마 김경욱 씨의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까르푸 때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는 연락 온 적이 없나요?

김경욱 : 며칠 전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악수를 청하더라고요. 2007년 제가 홈에버 상암점에서 점거 파업할 때 자기가 대체근무자로 투입되었다고 '고백'하더군요. 그 사람은 당시에 이랜드라는 회사에 문제가 많았다면서 대체근무자로 투입되었을 때 마음이 편치 않았었다고 했어요.

사실 그 사람 마음이 편치 않을 게 뭐가 있나 싶었습니다. 노동자로서 피치 못 할 선택이지 않았겠어요? 그 친구는 그 상황에서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자리에 섰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때 파업을 벌인 우리도 마찬가지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그 자리에 섰죠. 서로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죠. 노동자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회사가 문제죠.

ⓒJTBC

프레시안 : 연재 기사에 노조를 비판하고 혐오하는 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렸습니다. '까르푸, 이랜드 두 회사를 망하게 한 게 노조가 아니냐. 김경욱이 노조활동 열심히 해서 결국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김경욱 : 노조가 회사를 망하게 했다고요? 정말 그랬다면 제가 엄청난 힘이 있었다는 건데 오히려 영광이죠.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에요. 당시 한국까르푸노조의 조직률은 1~2%에 불과했어요. 그 정도의 조합원 수로 회사에 무슨 타격을 가할 수 있겠어요. 노조 가입하고 처음 해 본 70일 파업 이후로는 하루 이상 진짜 파업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니 못했죠. 노조위원장 하면서 매년 파업을 선포하고 쟁의에 돌입했었죠. 하지만 집회를 위한 파업이었지 매장을 멈춘 적은 단 하루도 없었어요. 그걸 '뻥파업'이라고 하죠.

그런데 그 정도 조합 활동으로 회사를 매각한다? 말이 안 돼요. 당시 까르푸는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에 밀리고 있었죠. 한국에서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불모지인 중국 시장에 집중하려고 한국에서 철수했죠. 만약 까르푸가 힘없는 노조 때문에 철수했다면 그건 진짜 노조 혐오죠. 노조가 회사 운영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어요. 노조의 힘은 노조원을 구제하는 정도에 그쳤어요. '민원처리조직'이라고 해야 할까요? 까르푸가 노조 때문에 철수했다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하겠습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노조가 생긴 이후, 임금 인상과 복지 문제에서 회사가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나요?

김경욱 : 임금은 형식적으로 노조와의 협약으로 인상됩니다. 하지만 노조는 회사가 결정한 임금 인상안에서 단 1%도 올릴 힘이 없었어요. 조직력이 없었죠. 매장을 멈출 수 있는 파업도 할 수 없는 빈약한 노조였어요. 그래서 저는 임금인상보다 복지혜택 확대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에 집중했어요. 이 때문에 매년 단체보험 등 복지 혜택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노조 성과로 선전할 수 있었죠. 특히 비정규직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죠. 사실 당시 노조 힘으로는 그 정도 싸움도 버거웠어요.

프레시안 : 그렇게 빈약한 조직이었지만 이후 이랜드로 매각된 뒤, 일찍이 보기 어려운 대규모 파업을 주도했습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라고 이야기되는 이랜드 싸움입니다. 그렇게 조직을 키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김경욱 : 노조는 회사가 키운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잘하면 노조가 살아남지 못하죠.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차별 받는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합니다. 그게 시작이고 까르푸 노조원이 급격하게 늘어난 계기가 있었어요. 비정규직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건과 이랜드가 까르푸를 인수하고 직원들을 대량 해고한 사건, 이 두 가지 때문에 조합원이 급격하게 늘어났죠.

프레시안 : 노조운동을 하면서 이것은 꼭 지켰다는 원칙이나 기준 같은 게 있었나요?

김경욱 : 제가 노조위원장으로 있을 때, 몇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첫째, '조합원은 절대 해고되지 않는다. 해고되면 반드시 복직시킨다'였어요. 실제로 2008년 마지막 파업 협상 때 간부 9명이 권고사직을 한 것을 빼고 그 전까지 조합원 중 해고된 사람은 없었어요. 해고된 조합원이 있으면 무슨 수를 쓰든 복직시켰죠. 둘째는 '연대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였어요. 한 예로 조합비가 1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10%는 투쟁하는 노조에 후원했어요. 마지막으로 셋째는 '고공농성이나 단식농성 등 위험하거나 자해하는 투쟁은 하지 않는다'였어요.

ⓒ프레시안

프레시안 : '자해하는 투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셋째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김경욱 : 드라마 <송곳>에서는 주인공 이수인이 단식투쟁을 하지만 저는 노조활동을 하면서 단 한 차례도 단식을 한 적이 없어요. 고공농성도 마찬가지죠.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싸움은 하지 말자는 주의였죠. '잘 먹고 잘 싸우자'가 제 신조였어요.

단식이나 고공농성은 노조간부가 나서서 선도적으로 이끄는 노조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간부가 나서서 이 정도 하니 평조합원들도 간부 뒤를 따르라는 식이죠. 저는 그런 싸움도 의미는 있지만,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처음 노조를 시작할 때, 무척 많은 노동자가 죽는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많은 고민을 했어요. 노조 간부들이 선두에 설 수밖에 없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거나 밥을 굶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조합원들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고민 끝에 그런 싸움은 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그게 노조 활동의 원칙이 됐고요.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는 조합원들에게 전태일 평전을 권하지 않았어요. 전태일 평전은 다시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프레시안 : 전태일 평전이 다시 쓰여야 한다니요?

김경욱 : 제가 전태일 평전을 읽고 죽음을 고민한 적이 있었어요. 까르푸 70일 파업 이후 천막 농성을 할 때였습니다. 누군가 천막 농성장에 그 책을 놓고 갔습니다. 무심코 그 책을 농성장에서 보면서 펑펑 울었어요. 사실 농성하는 사람치고 그 책을 보고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나요? 그런데 그 책을 보면 전태일이 분신자살하고, 세상에 알려지면서 노동운동이 급격히 변화합니다. 마치 세상이 변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사실 파업을 해본 분들은 알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는 대화조차 하지 않고 지친 노조원들은 파업에서 이탈해요. 그렇다 보니 투쟁은 끝이 보이지 않죠. 그때 투쟁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 죽음을 고민하게 됩니다. 내 한 몸 바친다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제가 죽음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회사로부터 교섭하자는 연락이 왔어요. 그때 생각했죠. 끝까지 살아서 싸우자.

전태일 평전을 읽는 조합원들이 전태일 삶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아니라 죽음에 포커스를 맞출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저는 전태일 평전이 전태일의 삶에 초점을 맞춰 다시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세상에는 전태일처럼 사는 사람이 매우 많다는 사실을 노조활동 하면서 알았어요. 그 사람들이 다 오래 살아서 좋은 일도 많이 하길 바랍니다. 노조든 운동이든 다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프레시안 : 노조활동은 살자고 하는 짓이라고 했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김경욱 : 어차피 노조활동을 하는 것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나요? 그게 아니면 왜 노조활동을 하나요? 사회정의구현?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의 밥그릇을 잘 챙기는 사회가 정의사회라고 생각해요. 밥그릇을 누군가 빼앗아 가려고 하니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조라는 조직을 만들고 대항하는 게 아닌가요? 밥그릇을 빼앗기면 자기만 죽나요? 자기 처자식도 같이 죽어요.

노조활동을 하는 이들이 자기 몸을 상해가며, 심지어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물론, 노동자를 벼랑으로 내모는 자본이나 사회의 부조리함이 가장 큰 문제지요. 현장에서 싸우다 보면 경찰이나 용역의 폭력에 의해 다치기도 하고 심지어 죽기도 해요. 그럴수록 기어이 살아남아서 힘을 모아 반격해야죠. 힘이 없으면 끈질기게 버티고 싸워야죠. 제가 노조활동하면서 지키려 했던 원칙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칙들은 다 노조 활동할 때 지켰던 옛날이야기입니다.

프레시안 : 과거의 원칙이었다고 하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는 원칙인 듯합니다. 어려운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드라마 <송곳>이 끝나고 ‘스토리펀딩’에서 준비한 '드라마 <송곳>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도 이것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아직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은 정주행 중입니다. 추후 <송곳>은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입니다. 그만큼 <송곳> 스토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는 방증이겠죠. 앞으로도 <송곳>, 그리고 <송곳>에서 그려나가는 '시시한 사람들‘을 위해 벌이는 '시시한 싸움'을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 이 기획은 현재 미디어 다음 '스토리펀딩'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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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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