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한-일 청구권 협정, 위헌 심판 대상 아냐"

"한일관계 고려한 결정"…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은 계속 진행

헌법재판소가 지난 1965년 한-일 간 맺어진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 위헌 여부 판단을 하지 않았다.

23일 헌법재판소는 강제징용 피해자의 딸 이윤재 씨가 한-일 청구권 협정 제2조 1항에 대해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을 각하 결정했다. 각하란 헌재의 심판대상이 아니라는 판단 아래 본안 심리를 하지 않고 내리는 처분이다.

헌재는 '재판의 전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번 헌법 소원은 이 씨가 부친의 보상금을 정당하게 지급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고 이 과정에서 제기된 것인데, 헌재는 한-일 청구권 협정의 위헌 여부가 행정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즉, 협정의 위헌 여부가 행정 소송을 함에 있어 반드시 짚어야 할 쟁점이 아니라는 뜻이다.

헌재는 "한-일 청구권 협정은 이 소송에서 다투는 처분의 근거조항이 아니어서 당해 사건에 적용되는 법률조항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위헌 여부에 따라 재판의 주문이나 이유가 달라지는 경우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청구권 협정의 위헌 여부와 관계 없이 행정소송을 진행하면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씨의 소송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피해자들의 소송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앞서 이 씨는 2009년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가 부친의 미수금 5828엔을 1엔당 2000원으로 계산해 1165만6000원을 지급하겠다는 결정과 관련, 현재 가치를 반영하지 않은 지원금 규정 때문에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행정 소송을 냈다.

또 협정이 개인의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이 협정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해 이에 대한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까지 가게 된 상황에 주목해야


헌재가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김창록 교수는 "헌재는 50년 전 한-일 간 맺었던 합의를 전면적으로 문제 삼을 만큼 이번 헌법 소원이 행정소송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안은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헌재 결정 여부를 떠나서 헌법소원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한-일 양국 정부의 해석이 다르다. 이 부분은 헌재 결정 여부를 떠나 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챙겨야 할 과제임은 변함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해 일제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은 소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12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손해 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피해 배상을 회피하는 도구로 여전히 한-일 청구권 협정을 이용하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강제징용에 대해서도 협정으로 모두 종결된 문제라는 논리를 펴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헌재의 이번 판결이 한-일 관계를 고려한 결과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기본적으로 헌법 자체가 정치적인 맥락이 작동한 결과이고, 따라서 이를 다루는 헌법재판소 역시 일반 법원보다는 정치적인 부분을 포함해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각종 요소들을 참작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헌재는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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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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